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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60호(5월)

[독계비] 저자: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讀.啓.肥(독. 계. 비)]는  ‘독서로 계명을 살찌우자’라는 목표로 릴레이 독서 추천 형식으로 꾸며가는 코너입니다. 책을 읽고 그에 대한 소감과 함께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해 주고, 그 사람은 추천받은 책을 읽고 난 후 또 다른 책을 본인이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이창주(행정학전공)에게서 군주론를  추천받은 정휘(언론영상학전공)이지원(법학과)양에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추천합니다.  

    “인간의 본성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기쁨과 슬픔, 고통 모두 어느 정도까지는 견딜 수 있지만 그 한계를 넘어서면 파멸해 버리고 말죠. 이건 사람이 약하다, 강하다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어느 한계까지 견딜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자신 있게 말하건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을 비겁하다 한다면 악성의 열병에 걸려 죽어 가는 사람은 겁쟁이라 할 수 있겠군요.”

  1771년 8월 12일, 로테의 약혼자인 알베르토와 베르테르가 자살에 대한 논쟁을 펼친 부분이다. 이 책은 워낙 유명해서 책을 읽지 않아도 결말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베스트셀러이다. 나 또한 책을 읽은 적이 없었지만 내용을 얼추 알고 있는 상태였다. 나는 이 부분에서 베르테르의 삶에 대한 가치관을 알 수 있었고 누가 봐도 본인이 자살할 거라는 복선임을 느낄 수 있었다. 시한부라는 말이 있다. 예정된 죽음을 선고 받은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는 더 사는 게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어차피 죽을 건데 남은 기간 왜 질병의 고통을 느껴야 할까? 육체의 고통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은 더 아플 이유가 없다. 그럼 육체의 한계는 내 몸이 버티는 한 살아남는 것이 된다. 하지만 베르테르는 정신적 고통을 이에 비유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정말 터무니없는 궤변이라고 나 또한 알베르토처럼, 아니 더 심하게 말했을 것이다. 그럼 정신적 고통의 한계는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현생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빚을 진 사람, 좋지 않은 일을 겪어 트라우마가 생긴 사람 등 도무지 스스로는 상황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다.

  뉴스를 보면 학교폭력을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청소년들이 종종 나온다. 그럼 사람들은 “불쌍하다. 자살할 만 했다.”, “나였어도 자살했을 것 같다.”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방금 육체의 한계는 내 몸이 버티는 한 살아남는 것이라고 했다. 아무리 극심한 고통이 있어도 죽을 때까지 산다는 것이다. 물론 자살할 만큼이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자살만이 정답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베르테르는 더더욱 자살에 대해 신중해야 했다. 그는 평민이지만 유복했고 큰 어려움 없이 살았다. 하지만 매우 감성적이고 예민한 그의 성격 때문에 한 여자에 대한 사랑에 실패했을 뿐인데 자살한 것이다. 나는 그의 행동을 그저 ‘쇼맨십’이라고 칭하고 싶다. 베르테르는 총구를 자신의 머리에 겨누면서 ‘내 사랑은 죽음보다 고귀하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베르테르의 주장은 그저 자신의 자살에 대한 예고와 합리화에 불과했다고 본다. 사실 더 나아가 죽음의 가치를 훼손했다고까지 느껴진다.

  결론적으로 ‘베르테르 효과’라는 것이 실제로 발생했고 현재에도 발생하고 있다. 나는 실제가 아닌 문학소설이라 더 사람들이 베르테르라는 캐릭터에 빠져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 사람들에겐 그의 가치관과 행동이 보편적인 가치관과 달라서 신선하게 다가왔을 것이고 현재에는 자신의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하던 유명인의 죽음에 동조하는 경우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한편, 이 책의 독자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이 책을 접하라고 말한다. ‘너무 오글거리고 속칭 변태 같아서 나이가 들어서 읽으면 전혀 감흥이 없다’라는 의견도 있지만 나는 이 젊은 베르테르의 열정적인 사랑에서 젊을 때만 할 수 있는 이 ‘열정’을 높이 산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나도 이 ‘열정’에는 동감하는 바이다.

 

출처: 책 표지-교보문고, 사진-정휘

편집위원: 박경희(학술정보서비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