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분류 전체보기 (671)
2017 (36)
2016 (73)
2015 (71)
2014 (72)
2013 (72)
2012 (88)
2011 (57)
2010 (10)
~ 2009 (192)

Tistory Cumulus Flash tag cloud by BLUEnLIVE requires Flash Player 9 or better.

surviving military deployments..
surviving military deployments..
keeping your feet healthy on t..
keeping your feet healthy on t..
website
website
structured wiring
structured wiring
network wiring
network wiring
508,696 Visitors up to today!
Today 25 hit, Yesterday 50 hit
rss
'독후감'에 해당되는 글 8건
2012.07.13 14:10

[내가 쓰는 독후감] 2012학년도 1학기에 활동한 6기 독서토론클럽 학생들의 독후감을 선별하여 싣습니다.  [조용수 jys0110@gw.kmu.ac.kr ] 

 

「서울대 명품강의」를 읽고

경영학과 강준욱

 

  서울대 명품강의라는 다소 경망스럽고 자극적인 제목을 가진 이 책은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강의한 교양 강좌들을 책으로 엮어서 출판한 것이다. 사람은 첫인상에 좌우되는 동물이라던가?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제목을 보고는,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를 서울대라는 지명도를 가지고 포장한 흔하디흔한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A 정도의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내용에도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읽고 난 뒤의 감상은 역시 명불허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18명의 저자가 있어 전체적으로 모두 만족스러운 내용은 아니지만 적어도 독자에게 지식을 전달하고 영감을 줄 만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저자들인 서울대학교 교수들이 우리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다양한 시각에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그러한 연결성을 인식하고 여러 차례 생각한 후에 깨닫고 실천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전부 관심 가지기도 힘들 정도의 다양한 분야의 내용을 이해하고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조금 이야기의 방향을 돌려서, 문명도 문화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원시인 남자의 삶을 상상해보자. 이 원시인 A는 살아감에 현대인에 비해 극히 단순한 형태를 보이고 있을 것이다. 요컨대 그의 삶은 사회성에 있어서 상하관계에서는 족장이나 샤먼에 대한 관계만 설정해두면 될 것이고, 수평적인 관계에서는 자신과 같이 생활하는 부족원들과의 관계 말고는 다른 관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유재산이나 현대의 가족제도가 성립되기 전이므로 부족은 있을지언정 가족개념 또한 희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속한 사회는 아주 원시적인 사회이며 생존 지향적 가치를 중시하고 있으므로 현대적인 이데올로기나 사상은 존재하지도, 필요하지도 않다. 문자가 없었으므로 역사도 없었고 역사의식도 필요치 않다. 그는 벌판을 뛰어다니고 외치고 돌도끼를 휘두르고 돌창을 던질 수 있는 힘, 그리고 자식을 생산하고 부족의 일을 눈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힘만 가지고 있으면 충분하다. 그러므로 원시인A가 원시사회에서 나름의 주체적 삶을 살기 위해서는 본능적 힘과 감정적 친화력에 충실하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 속한 우리의 삶은 어떤가? 우리가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할 정도로 엄청난 양의 기술, 문화적 생산물이 존재한다. 무수히 많은 이데올로기와 사상은 이해하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또한 우리는 더는 주변의 가족이나 부족만 알고 사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부류의 지인 혹은 이해관계자와 교류해야 하며, 세계화를 통하여 우리가 사는 지역 외의 외부 집단으로부터도 엄청난 영향을 받고 있다. 우리는 원시인이 아니라 국가의 주체로서 국민이고, 노동으로 삶을 영위하는 경제인이며, 자기 정체성을 표현하는 개인이다. 이렇게 현대의 복잡한 사회에서 우리의 정체성은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복잡한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즉 우리가 우리답게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원시인의 그것보다는 훨씬 많은 지식과 생각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도 말하듯이 우리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이 책은 본능과 감정에만 충실하기보다는 이성적으로 사유하기를 요구하고 있으며, 책이 담고 있는 다양한 내용을 이해함으로써 우리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정확히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에 대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자면, 여러 가지 다양한 주제들을 사회라는 키워드와 엮고 있는데 그 주제들은 과학, 한국사, 철학, 역사, 생명, 가족, 민족, 감정, 민주주의, 공동체, 소수자, 이념, 세계화, 정치, 양극화, 환경, 경제, 지리의 18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 특히 인상적인 주제는 5강의 ‘삶의 주체로서의 생명’에서 생명의 정의에 대한 것이다.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생명체가 반복을 통하여 차이를 이끌어내는 창발적 삶을 산다는 것과 생명은 관계 맺음을 통하여 진화해간다는 내용을 복합했을 때 인생의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는 무수히 반복되는 하나의 생명체일 뿐이지만, 그 과정에서 차이를 추구함으로써 진보적이고 창조적인 가치를 생산해내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생명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생명체로서 타자와 관계하면서 다채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자신만의 아집에 갇혀서는 우리는 어떤 진보로 이룩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끊임없이 소통하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만이 개인과 사회가 진정으로 발전하는 ‘생태적 진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독서토론클럽에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면서 서로 토론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것도 그러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에 실린 18개 주제 중 이 부분이 전체 주제를 관통하는 키워드라고 생각하며, 몇 번이고 읽으면서 곱씹어볼만한 통찰이 있는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여러 명의 저자의 글을 모아놓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부분인데, 책을 연속해서 읽을 경우 저자가 서술한 단어의 함의를 잘 생각하며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7강에서는 ‘민족주의’라는 단어에 대해 보편적이지 못한 다소 부정적인 뜻을 담고 있는데, 12강에서는 ‘민족주의’가 통일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민족적 정체성으로 정의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13강에서는 다소 가치중립적으로 과도한 민족주의는 주의해야 하지만 현 한국사회의 민족주의의 결여 또한 지적하고 있다. 이런 부분들은 주의해서 세심하게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글의 내용에서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가령 17강의 ‘경제와 사회’에 대한 부분에서는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사례와 다른 여러 나라의 예를 들어 ‘개혁과 개방’에 대한 예찬을 하고 있다. 저자가 경제학자이기 때문에 자유 시장에서의 자유경쟁이 경제 질서가 보전되고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이끌어낸다고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개방에 대해서는 조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바로 제도 개혁과 시장 개방을 표방한 신자유주의적 가치관에 의해서 실질적으로 경제 주체의 ‘자유’가 침해된다는 시각 또한 존재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신자유주의적 입장에서 FTA를 시행하여 농축산물 시장을 개방한다면, 그로 인해서 국내의 농축산물 시장에 종사하는 농민 중 누군가는 경쟁에서 도태되어 ‘농업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침해받게 되는 것이다. 물론 저자는 국가가 적절히 개입한다면 시장실패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지만 시장 개방을 통해 국가 간 거래가 활성화되는 상황이라면 세계무역기구의 간섭 혹은 상호간 FTA 조약에 의한 제한 등으로 국가 개입이 적절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 책을 다 읽고 내가 든 생각은 우리 20대가 이 책에서 과연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었다. 물론 앞서 이 책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어느 정도 서술하였고, 또 이 책의 저자들은 여하한 의도를 가지고 이 다양한 주제들을 묶어 책으로 출판했겠지만, 젊은 독자들에게는 특별하게 다가오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대해 나 자신이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이렇다. ‘이 책은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 웬 뜬금없는 사랑론이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스위스의 화학자 파라켈수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는 아무것도 사랑할 수 없다…” 나는 이 말이 진실로 옳다고 생각한다. 원시인은 본능과 감정만으로도 사랑이 가능했겠으나, 현대의 우리는 상대방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진실로 사랑을 느낀다고 할 수 있다. 상대방을 모르는 데서 적대감이 생기고, 상대방을 알아감으로써 포용과 사랑이 생겨난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우리 젊은 세대들은 과연 자신 주변의 사회의 모든 것들을 진정으로 알아나가고 있는가? 나는 거기에 대해서는 조금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경쟁사회에서 우리는 스펙경쟁, 취업준비 등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쌓아가지만 그 지식과 경험들은 제한된 범위에서 피상적인 수준에 그쳐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자신의 전공, 직장에 편중된 관련 지식 이상의 것을 얻기는 힘든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젊은 세대가 세상의 모습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알아간다면, 그러고자 한다면 그것이 바로 세상을 점점 사랑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이 든 학자들에게 ‘88만원 세대’로 멋대로 정의되고, 20대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이 세상을 진실로 사랑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앞서서 협력하고 관용의 미덕을 실천하며 완성된 인간이 된다면 그것만큼 멋진 일이 또 있을까? 그러므로 사회의 여러 속성을 구분하여 설명해 놓은 이 책은 진정한 ‘앎’을 위한 초석이 될 만하다고 생각된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지식을 나열해놓은 어려운 책이 될 수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세상을 사랑하기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는 책. ‘서울대 명품강의’에 대한 짧은 서평을 남기며 글을 마무리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고

뮤직프로덕션과 김준남

 

  “좋은 선생이란 학생들을 꿈꾸게 만들고, 그 꿈을 이루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라고 말한 저자 김난도 씨. 그가 쓴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은 불안한 미래와 외로운 청춘을 보내고 있는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편지이자 격려 메시지이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힘들고 외롭고 지친 삶, 방향을 잡지 못한 삶 등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힘들어하는 수많은 이들이 스스로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대 눈동자 속이 아니면 답은 어디에도 없다’ 이 부분을 읽을 때 가장 큰 공감을 받았던 것 같다. ‘인생시계’라는 주제로 글이 시작된다. '당신의 인생시계는 몇 시인가?' 라는 물음을 던지며 인생시계 계산법을 알려준다. 계산해 봤을 때 20세는 오전 6시, 29세는 오전 8시 42분이란다. 지금 나의 인생시계는 오전 7시 20분쯤 되었을 것이다. 평소에 오전 7시 20분이라면 나는 샤워를 마치고 아침 식사를 하고 있을 시간이다. 즉, 아직 제대로 된 일과를 시작하지도 않은 나이이다. 또 바꿔 말하자면, 아직 내 인생은 제대로 된 시작을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아침 식사를 얼마만큼 든든하게 했고 일과 준비를 얼마만큼 철저하게 했느냐에 따라 그날 하루가 달라지듯, 지금 내 나이에 얼마만큼 삶에 대한 준비를 하느냐에 따라서 나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시기이다. 아직 지나온 시간 보다 지나가야 할 시간이 더 많기에 조급해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저자는 먼저 피는 매화도 훌륭하지만 가장 늦게 피는 동백 역시도 충분히 훌륭하다는 말을 전했다. 개인적으로 해석해 보자면, ‘누가 먼저 꽃을 피웠다고 해서 초조해하거나 불안해 하지 마라. 나의 꽃은 피는 시기가 다를 뿐이다. 다만, 내가 꽃을 피우기 전에 절대 매서운 바람에, 추운 눈보라에, 무더운 더위에 쓰러지지 않는 강인함이 필요하다. 열심히 노력해서 아름다운 꽃을 피워라.’ 이렇게 생각이 되었다. 나를 비롯해 20대들에게 큰 용기와 힘이 되는 저자의 전달이었다.

  바닥은 생각보다 깊지 않다. 저자 왈, ‘사람이 인생을 살다 보면 종종 우물에 빠진 듯한 상황에 처했을 때, 출구도 비상구도 보이지 않는 진퇴양난의 위기일 때,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던지면서 이렇게 답한다.  ’줄을 놓는다.’ 이 대답의 의미는 우물 속으로, 다시 말해 인생의 바닥으로 떨어져 보란 얘기다. 떨어졌을 때 그 결과는 죽거나 다치지 않는다. 인생의 바닥이란 그리 깊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줄을 놓고 바닥에 떨어져 보면 그리 깊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그것이 탈출하고자 하는 용기를 줄 것이라고 얘기 한다. 이 말에 큰 공감을 받았다. 나 역시도 조금 이른 나이에 남들이 겪지 못할 수많은 일을 많이 겪었다. 그러고도 남들보다 더 열심히 더 밝게 지낸다. 이유는 아마도 인생의 바닥이란 부분에 떨어져 봤고 그것을 탈출해 봤기에 다시 바닥으로 떨어져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과 모든 일에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아닐까 싶다. 저자가 쓴 이 부분 때문에 다시금 나의 마음에 확신과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일단 기차에 올라타라. 저자는 ‘겸손하게 사회에 발을  디뎌라’ 라고 말하고 있으며, ‘비록 입석 3등칸 일지라도 일단 기차에 올라타라. 그리고 천천히 1등 칸을 향해 움직여라 그것이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기차의 1등 칸으로 단번에 뛰어오르는 것보다 쉬울 테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 사회는 학생이 쌓아온 수많은 스펙과 잠재력보다는 검증되어있는 경력을 필요로 한다. 대학 졸업 후 첫 발걸음부터 대기업과 연봉 높은 직장을 찾아 헤매는 것보다 크고 작은 여러 회사에서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쌓으면서 얼마나 다양한 업무처리 ‘경력’을 쌓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성공이란 허울에 취해 겸손 아닌 경솔을 범하는 오류를 행해서는 안 된다. 앞서 말했듯이 나의 꽃은 피는 시기가 정해져 있다. 그 시기가 될 때까지 많은 지식과 경험을 쌓아서 그것이 훗날 꽃을 피울 수 있게 해야 한다. 나를 뒤돌아보자. 나도 혹여나 성공이란 허울에 취하여 경솔을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지금의 그대는 미래의 그대에게 얼마나 당당할 수 있는가?' 저자가 이 책의 끝부분에 남긴 말이다. 나의 좌우명 ‘후회 없는 삶을 살자’와 비슷하다. 오늘의 하루가 미래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하루가 될 수 있게 행동하자는 것이다. 미래에 부끄럽지 않은 하루를 사는 방법을 생각해 봤다. 하루의 목표를 정해서 매일매일 목표를 달성해 나간다면 의미 없는 하루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이는 곧 성취했을 때의 보람과 뿌듯함을 느끼게 할 것이고, 그것이 나아가 더 큰 목표로 향하게 하며 결과적으로 먼 훗날 인생을 되돌아 봤을 때 보람과 뿌듯함을 느끼게 할 것 같다. 이것이 바로 미래의 나를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지 않나 생각한다.

  이렇게 책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얻었다. 나를 되돌아보는 좋은 시간이었고 그것으로 인해 내 삶의 방향을 다시 생각해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시작하는 모든 존재는 늘 아프고 불안하다. 하지만 기억하라, 그대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그렇다. 나는 아름답다. 시작은 불안하기 마련이다. 도전은 망설이기 마련이다. 나는 아름답다. 아름다운 내가 되려면 시작의 불안함을 극복하고 도전의 망설임을 딛고 일어설 때 비로소 아름답다. 나는 아름답다.

 <사진출처: 교보문고>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12.06.11 16:12

[내가 쓰는 독후감] 2012학년도 봄페스티벌 책에 미친 비사夜2부: 밤샘 책 읽기의 수상작을 싣습니다.  [조용수 jys0110@gw.kmu.ac.kr ]

 

감시와 처벌: 감옥의 역사

언론영상학과 곽정애

  '책에 미친 비사야’를 신청하면서 신청 동기에 “책을 좋아하지만 밤을 새워 읽어본 기억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첫째로 밤새워 책을 읽는다는 그 자체에 호기심이, 둘째로 그렇게 읽은 책을 과연 어떻게 독후감으로 만들어 낼지 자신에게 궁금”하기 때문이라고 썼다. 자신에게 부여했던 두 가지 임무 중에 첫 번째는 반의 성공과 반의 실패를 이뤄낸 것 같다. 10시부터 5시 30분까지 8시간 남짓 한 번도 안 졸고 책을 읽는 첫 경험을 했기 때문이고 반의 실패라고 한 이유는 그럼에도 책을 다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부랴부랴 챙기고 입에 빵 한 조각을 집어넣으면서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책을 고르려고 놓은 책들 앞에 섰을 때, 아뿔싸, ‘아르바이트가 있건 없건 그건 네 사정이지’라는 것 같이 무심하게도 그렇게 당연하게도 원래 책에서 참가인원 수만큼이 빠져있었다. 평소에 소설책보다는 철학이나 사회과학책을 주로 읽었기 때문에 오늘 만은 문학을 읽으리라 했건만 놓여 있는 선택지 중에서 나는 또 역시나 관성처럼 푸코의 책을 골랐다. 주어진 시간 동안 읽고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저번 학기 사회철학 수업을 들으면서 푸코를 공부하기도 했기 때문에 배경지식이 조금 있으니 쉽겠다고 생각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8시간은 짧게만 느껴졌고 책은 무심하게도 두껍기만 했다.

 미시권력과 계보학적 연구방법
   푸코는 ‘미시권력’을 말하는 철학자로 유명하다. 국가나 자본과 같이 거대한 권력이 개인 혹은 소집단에 미치는 거대한 권력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어떤 관계에서나 존재하는 정치에서 나타나는 미시권력 관계를 분석하는 것을 말한다. 이 책도 물론 그 미시권력 연구의 일종이자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 「감시와 처벌」에는 부제가 딸려 있는데 바로 ‘감옥의 역사’이다.

   그렇지만 앞서 말한 푸코의 특성과 같이 이 책은 감옥에 관한 역사도, 감옥 그 자체에 관한 연구도 아니며 범죄와 처벌에 관한 범죄학적 연구와는 거리가 멀다. 푸코 스스로 말하고 있듯이 이 책은 “근대정신과 새로운 재판 권력의 역사”이다. 다시 말해서 재판 권력과 감옥 안에서 죄수를 다루는 기술을 학교·공장·군대 등 소단위의 권력체제를 통해서 어떻게 확산해 가는가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밝혀내기 위해서 푸코는 ‘계보학적’이라는 틀을 통해 분석한다. 계보학적 연구방법은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기본 개념들에 대한 역사를 파헤친다는 점에서 역사학과 혼동되기 쉽지만 그 기본 개념들이 만고불변의 사실 혹은 경험이 아니라 우발적이고 가변적인 역사적 구성물들임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분명히 역사학적이라는 말과 구분되어야 한다.

   즉 광기나 범죄성 같은 개념들은 결국 근대적인 경험이고 권력과 주체화의 관점에서 논의되기 때문에 자연스레 주어진 개념이 아니라 곧 우발적인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철학적 개념들을 푸코의 말에 의하면 “그간 역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고 또한 아무런 도덕적, 미학적, 정치적 또는 역사적으로 가치가 없다고 간주하여 왔던” 자료들로 책을 꾸려가고 있다. 거대권력이 아니라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회적인 관행들에 나타난 인간 행위의 통제를 위한 미시권력, 처벌 방식을 바로 ‘감옥’이라는 수단으로 밝혀내어, 역설적으로 거시권력관계까지 확산된다고 볼 수 있다.

  신체형과 규율
   18세기 프랑스에서는 공개 고문이나 처형이 당연시되었다. 당시 군주적 권력은 범죄자들을 공개 처형시킴으로써 자신의 힘을 노출하고 피지배자들의 복종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처형장에서의 민중의 저항과 반론들은 이를 위기에 봉착하게 했다. 따라서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는데 이것이 바로 육체적 형벌(공개처형)이 아닌 형벌의 표상(감옥에 갇힌다는 그 사실)을 통한 이데올로기적 통제가 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감옥이 가지는 의미는 처벌 그 자체는 물론이지만 ‘범죄를 지으면 저렇게 되기 때문에 범죄를 지으면 안 돼’라는 예방적 차원의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공개처형은 예방적 성격보다는 축제의 성격을 띠었다는 게 영어 ‘carnival'의 어원이 이 공개처형에서 왔다는 걸 통해 볼 수 있다.)

   현대사회로 넘어와 새로운 처벌 양식으로서의 ‘규율’이 등장한다. 푸코는 규율이 확산될 수 있었던 이유로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본다. 공장에서나 학교에서는 이 ‘규율’을 통해서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이 되는 ‘효율성’(적은 비용으로 육체의 힘을 유용한 힘으로 극대화 시키는 것)을 확대시킬수 있었다. 앞 단락에서 언급되었듯 ‘감옥은 단순히 제도적 또는 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의 처벌이나 범죄억제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통제 및 통치의 차원’이라는 것에 맥락을 부여하기 위함인 것이다.

 이 장에서 푸코와 관련된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판옵티콘’이 나온다. 18세기 말 벤담이 고안한 ‘판옵티콘’은 원형감옥으로서 동그랗게 지은 감옥 가운데에는 건물 전체를 볼 수 있게끔 디자인되어 있다. 이는 정교하게 분할된 시간(규율)과 공간 틀 안에 개인들을 분배하고 감시, 관찰, 기록 및 평가 아래 놓이게 함으로써 그들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건축학적 구현이다.

   푸코의 판옵티콘은 이런 육체적 예술일 뿐만 아니라 조지오웰의 「1984」속 ‘빅브라더’를 연상케 한다. 이러한 요소들로 둘러싸인 현대사회를 두고 ‘감시사회’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그렇지만 감시 그 자체를 떠나 더 무서운 적은 바로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에서 오는 자발적인 행동양식의 검열이다. 예컨대, 편의점 아르바이트 시절, 사자님이 늘 내가 일하는 걸 지켜보는 것도 아니었지만 24시간 돌아가고 있는 CCTV는 나를 보고 있을 거라는 압박을 느껴 스트레스였고, 혹시나 범죄 현장을 잡기 위한 도구가 결국에는 종업원의 행동을 조절하게 하는 도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손님이 없어서 편히 앉고 싶지만 그랬다가 사장님이 안 좋게 볼까 늘 긴장하는 모습 등) 이처럼 실제로 지켜보고 있느냐를 떠나 어떻게 감시사회가 작동하고 있는지 또 그간의 권력작용은 무엇인지 잘 설명해주는 부분으로 보인다.

  고전으로서의「감시와 처벌」
   음악과 마찬가지로 책도 그 책이 언제 쓰였든 상관없이 우리에게 ‘고전(classic)'으로 남아있는 것들이 많다. 아직 고전으로 불리기에는 1975년은 그다지 멀지 않은 시대이지만 그 사회가 지금 사회와 똑같을 수 없는 역사적 거리가 있는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 읽히면서 또 새롭게 이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을 제공한다는 것은 이 책이 우리 사회 속에 시사되는 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책이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것은 아직 학생들에게 철학책은 어렵기만 하고 그래서 읽고 싶지 않은 책이라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철학은 사고의 넓이와 깊이를 확장시키면서 내 사유의 경계를 허무는 일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문득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것, 끊임없이 생각함으로써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국 철학이라는 학문 분과를 넘어서서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적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작업의 일종으로서 이 책은 ‘권력’과 ‘저항’이라는 역학관계를 나에게 과제로 던져주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하필 지금 읽게 되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과 마주하게 되었기도 한다. 지금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이 학원이다. 만약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그냥 넘겨버렸겠지만 학교-학원-더 나아가 감옥 간의 관계가 ‘규율’이라는 것을 통해서 어떻게 권력화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였다. 낮 기온이 30도 가까이 올라가더라도 아직은 하복을 입을 ‘날짜’가 되지 않았으므로 하복을 입고 온 학생들을 처벌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규율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학교권력은 아직도 ‘공부’만이 살길이다라는 이데올로기와 연결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1975년 프랑스에서 쓰인 이 책이 2012년 대한민국에서도 유효하다고 진단되는 이유이다. 

    그렇지만 과연, 모든 권력에는 저항해야 하는가, 아니면 효율성을 위해 복종해야 하는가, 더 나아가 불쾌한 복종을 희석할 수 있는 착한 권력은 있을 수 있는가? 물론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지금 여기에 쓰자면 한도 끝도 없는 횡설수설일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사회권력 관계의 세부성과 그 기원으로서의 감옥, 또 그 속에서의 저항의 의미를 묻게 해주었고 이 모든 걸 깨닫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나에게 이 책은 하나의 고전으로 남게 될 것 같다.

 마치면서
   430쪽에 담긴 어려운 단어와 난해한 사상, 그 해석을 이해하면 읽기에는 8시간이 짧았기 때문에 마지막 4부에 대한 정리는 하지 못한 미흡한 감상평은 여기서 마친다. 마치면서 ‘책에 미친 비사야’에 대한 소회와 짧은 감사인사를 덧붙이고 싶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졸린 눈을 비빌 수 있도록 끝없이 제공되는 간식과 선생님들의 격려는 왜 이 행사가 계속될 수 있는지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같이 밤새웠던 학우 분들께는 수고했다는 말을 마지막에 찍은 기념사진과 함께 남기고 싶고, 책과 밤샘이라는 듣기만 해도 힘든 조합에 긴장을 풀어주시려고 다가와주시는 선생님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드린다. 4학년이라 다음번 ‘책에 미친 비사야’에는 함께 할 수 없겠지만 학교생활 끝자락에서 행사가 끝나고 마주한 새벽 푸름과 같은 추억을 만들 수 있어 행복했다. 

 

싯다르타를 읽고

경영학과 강준욱

 

   우리는 보통 자기 자신이 좋은 책을 찾아서 읽고 좋은 지식을 얻는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사람과 책의 관계는 분명히 사람이 주도하는 관계인 것이다. 그런데 때로는 좋은 책이 사람을 찾아오는 일도 있다고 한다. 가령 이런 식의 예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도서관 행사에 참석해서 별 생각 없이 집어든 책이 자신이 고민하던 문제를 다루고 있다면? 또 그와 관련해서 인생을 성찰할 기회를 얻게 된다면? 그렇다면 정말로 책이 자신을 찾아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 ‘싯다르타’가 그런 책이었다. 저녁까지 이어지는 수업으로 피곤한 와중에 참가한 행사 때문에 읽은 책이지만 읽으면서 전혀 졸리지 않았다. 오히려 몰입에 몰입을 더해서 잠이 깨고 영감이 솟아나는 책이었다. 자아의 문제라는 끝날 것 같아 보이지 않은 여정에서 어떤 이정표를 발견한 느낌이라고 할까. 내용이 심오한 만큼 다 읽었음에도 내용에 대해서 함부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쉽지 않은 책이었다. 그렇더라도 나는 이 책이 나에게 찾아온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싯다르타라는 선물을 다시금 음미하면서 책의 내용을 다시금 회상해본다.

   싯다르타는 존경받는 브라만의 아들로서 뛰어난 지성과 빼어난 기품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청년이었다. 하지만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싯다르타의 가슴 속에는 공허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가장 현명한 스승들에게서 사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진리로 향하는 길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싯다르타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이자 추종자인 고빈다와 함께 귀족을 삶을 버리고 사문(沙門)이 되기 위해 출가한다. 초반부의 내용을 보고 실제의 부처를 모티브로 삼은 소설이라 그런지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이 부처의 출가와 비슷하게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4대 성인으로 일컬어지는 부처가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출가했다는 설화보다는 소설 싯다르타의 자기 고뇌는 대다수 사람이 겪는 청소년기의 고민, 즉 현실과 자아 사이의 문제와 겹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때문에 그의 고민이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오고 인간 싯다르타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아에 대한 고민 끝에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레일에서 이탈하여 다른 세상에 발을 내 딛은 많은 청소년이 그러하듯 싯다르타는 사문에 들어 수행하지만 생각했던 것과는 뭔가 다르다는 것은 거짓에 불과하다는 생각으로 자기 자신을 죽이고 자아를 벗어나는 길로서 진리를 찾는 것이다. 사문의 길에 들어선 싯다르타는 세상을 보고 쓰디쓰고 또 악취가 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만물이 헛되고 자신 또한 죽임으로써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다니 세상이 정말 악취 나는 불결한 장소처럼 보일 법도 하다. 그러나 실제의 부처도 지나친 고행과 염세주의를 경계하고 고행자의 무리에서 벗어났듯, 소설의 싯다르타 또한 사문의 길은 단지 자아에서 도피하는 것과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염증을 느낀다. 그러던 중 열반자로 일컬어지는 고타마의 소문이 싯다르타의 귀에 닿는다. 그 소문을 듣고 싯다르타와 고빈다는 사문에서 벗어나 고타마에게 당도한다. 거기서 고빈다는 고타마에게 귀의하기로 결정하지만 싯다르타는 고타마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이유로서 싯다르타는 말한다. 고타마는 스스로 구도에 의해 완전자에 올랐으며 누군가의 설법을 들어서 그리된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가르침으로도 해탈에 이르는 길을 찾을 수 없다. 여기서 싯다르타는 깨닫고 만다. 최고의 스승인 고타마의 가르침으로도 해탈에 이르는 길을 찾을 수 없다. ‘자아’는 누구도 가르쳐 줄 수 없다. 그리하여 싯다르타는 친구인 고빈다와 결별하고 스스로 힘으로 자기 자신을 알고자 하기로 마음 먹는다. 사문의 길이 자기 자신의 자아를 기만하고, 또 도피하는 길이었다면 지금의 싯다르타가 걷기로 한 자신을 아는 길이야 말고 자신을 독대하고 극복하는 길인 것이다. 이 시점에서 싯다르타는 세상을 아름답다고 표현한다. 악취나는 세상에서 아름다운 세상이 된 것이다. 물론 세상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다. 싯다르타의 마음이 바뀌었을 뿐이다. 사물의 의미와 본질 따위를 구태여 다른데서 찾는 것이 아니라 사물 본연을 보게 된 싯다르타의 각성에서 나는 인간 성장에 대한 감동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자신만의 관념을 덧씌우고 세상을 판단한다. -심지어 자신도 그렇게 판단한다- 이러한 색안경을 끼는 것이 세상을 인식하는데 더 용이해서 일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관념과 사고 또한 자신의 뇌에서 나오는 것이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의 일부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어찌 생각하면 소년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은 자신의 관념을 실제의 현실과 맞추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풍파를 겪으며 자신의 생각과 현실의 균형을 잡아 나가는 것, 그러면서 인간적으로 성숙하는 것이 진정한 어른이 되는 길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자아를 죽이고자 세상과 연을 끊는 엄격한 구도자의 삶에서, 세상을 본연 그대로 보고 자신을 알아가겠다는 싯다르타의 변화는 감동적이다. 엄격한 계율을 따르는 것만으로는 인간의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 진정한 평온도 오지 않는다. 세상과의 관계 안에서만이 내가 생동하고 평온해 질 수 있는 것 아닐까.

   다시 소설의 내용으로 돌아가서, 싯다르타는 세속으로 뛰어들어서 기생 카마라와 상인 카마스바미를 만나고 그들과 교분을 맺게 된다. 카마라에게는 관능과 쾌락을 배우고, 카마스바미에게는 상업과 사교를 배우게 된다. 싯다르타는 많은 사람과 만나고, 돈을 벌고, 육체의 쾌락을 느끼지만 그것은 일종의 유희에 불과했다. 사문의 수행자로서의 싯다르타의 모습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고, 세상에 열정적으로 뛰어들기보다는 관조자로서 바라보는 것에 불과했다. 부와 명예, 여자를 손에 넣고도 담담하게 사는 모습이 우리에게는 일견 이상적인 인생으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싯다르타에게는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었다. 카마라와 정을 나누면서 싯다르타와 카마라는 서로 말한다. 당신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고. 누구보다 우월한 재능을 가지고도 세상사에 고고한 존재처럼 임함으로써 진심을 보이지 않았으니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것이다. 그런 삶을 살면서 싯다르타는 점점 세속과 타성에 잠식되어 간다. 고고하게 세상을 조소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소인배가 되어 소심한 행태를 보인다. 그러면서 도박에 빠져들고, 돈을 잃고 벌면서 돈에 집착한다. 담담하게 장사를 하는 모습은 사라지고 도박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탐욕스럽게 돈을 버는 싯다르타에게 인생의 의미는 ‘자극’만 남은 것이었다. 자신에게서 도피하지 않기 위해 세상에 뛰어들었건만 싯다르타는 또 다른 도피의 길에 빠져든 것이다. 여기사 싯다르타는 독백한다. 유희야말로 윤회다. 놀이에 불과하다. 논다면 한 두 번은 재미있게 놀겠지만 그것이 끊임 없이 되풀이된다면? 나는 여기서 어떤 깨달음을 얻는 느낌이 들었다. 흔히 종교에서 말하는 윤회라는 것은 우리가 죽어서 다른 삶으로 태어나는 뜻 정도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내가 생각할 때 그것은 우리가 확인할 수 없으므로 그저 종교적 의미만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소설을 읽으니 그것이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우리가 일상에서 행동하는 양식들이 바로 윤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음주 가무 같은 쾌락을 즐기면서도 다음 날 아침이 되면 후회를 하고, 그러고도 또 밤이 되면 쾌락을 찾아서 도심으로 몰려들고···. 이런 인생의 악순환들이 바로 윤회라는 모습으로 내게 보인 것이다. 이런 윤회의 고리는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싯다르타는 강에 투신해 죽음으로써 이것을 해결하려고 한다. 젊은 날의 영성을 잃고 타락한 자신의 육신을 소멸시킴으로써 윤회를 끝내고 안식을 찾으려고 한 것이다. 죽음에 이르기 직전에 싯다르타에게 어떤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바로 ‘옴’이었다. 만물의 소리를 상징한다는 ‘옴’을 들은 그 순간 싯다르타는 각성한다. 고타마도 인정할 정도로 지혜로운 자에서 세상의 모든 쾌락을 즐기는 자로 변모했었고, 뛰어난 지식과 실천력을 가진 젊은 사상가에서 초라하고 늙은 소인배로 화했던 싯다르타는 ‘옴’이라는 만물의 소리를 들음으로서 세상에 대한 사랑에 눈 뜨게 된 것이다. 그 순간 너무나 많은 지식에 빠져 오만했던 사상가로서의 싯다르타도 죽고, 편협하고 불안한 소인배로서의 싯다르타도 죽었다. 자아와 끊임없이 투쟁하던 싯다르타가 죽음으로서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을 사랑하는 싯다르타가 태어났던 것이다. 나는 여기서부터는 싯다르타를 동경할 수 밖에 없었다. 깨달음에 깨달음을 덧붙이는 그의 모십이 내가 바라는 자아완성의 길을 생생히 묘사하는 듯한 모습이라 나에게는 이상향 같은 것으로만 보였다.

   한 꺼풀을 벗은 싯다르타는 일전에 고타마와 헤어질 때 자신을 태워준 뱃사공을 만나러 간다. 바수데바라는 이름의 그 뱃사공은 ‘경청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대자연이 넓은 강이 그저 만물의 소리를 듣고 있듯 바수데바는 묵묵히 들으며 치료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싯다르타는 강은 그저 흐르면서 현재만 존재하듯 과거와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그와의 대화에서 깨닫는다. 또한 모든 현존하는 존재의 번뇌는 시간에 연유하는 것을 깨닫는다. 바수데바에게 감명받은 싯다르타는 그와 함께 지내기로 하고 점점 그를 닮아간다. 뱃사공 일을 하던 싯다르타에게 고타마가 입멸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싯다르타는 뜻하지 않은 재회를 하게 된다. 고타마의 입멸을 순례하기 위해 카마라와 그녀의 아들이 배를 타러 온 것이다. 그녀의 아들은 싯다르타와 카마라가 헤어지기 전에 잉태한 싯다르타의 아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카마라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면서 아들만을 남겨준다. 카마라의 장례를 치른 싯다르타는 아들을 부성애로 대하지만 도시에서 버릇없게 자란 아들은 계속해서 삐뚤어지고, 이윽고 싯다르타를 떠나고 만다. 싯다르타는 아들이 윤회에 빠지는 것을 보호하고자 사랑으로 대했으나, 아들은 그것이 가식에 찬 모습으로 보였던 것이다. 해탈을 타인이 도와줄 수 없는 것은 싯다르타가 일찍이 깨달은 것이다. 혈육의 정 앞에서는 그것을 실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랑할 수 없었던 자’가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는 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사랑에 바보가 되어버린 소인처럼 말이다. 그리하여 싯다르타는 모든 사람을 이해하게 되었다. 사랑의 충동에 빠지고 욕망에 빠지는 소인들을 이해하고 형제처럼 여기고 사랑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소인들의 행동이야말로 무한한 인간사의 흐름을 만드는 것임을 알았다. 그에 비하면 모든 지식과 사상을 만드는 현자들은 지나치게 과대평가 되었고, 사유하고 의식하는 것 외에는 소인들보다 나을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을 깨달은 싯다르타를 보고 바수데바가 만족하며 떠나고, 싯다르타의 친구 고빈다가 싯다르타를 찾아오면서 결말이 가까워진다. 고빈다는 그의 스승인 고타마처럼 완성자의 모습을 한 싯다르타를 보고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느냐고 가르쳐 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사상이란 말에 불과하고 단어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사상과 교리에 얽매여 망설이는 고빈다에게 싯다르타는 자신의 이마에 입 맞추는 고빈다가 깨우침을 얻으면서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사실 이 책을 읽고 많은 상념이 떠올라서 정리하기 어려운 감이 있었다. 그 중에서 몇 가지 주제들을 내가 최근 생각해보던 문제와 연관되는 점이 있기에 그것으로 내 생각을 정리해본다. 그 문제란 바로 ‘천상천하 유아독존’. 부처가 태어나자마자 말했다는 설화에서 시작된다. 일견 오만한 듯 보이는 이 단어가 정확히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 나름 찾아보았으나 명확하게 와 닿는 답은 없었다. 모든 만물은 독자적으로 불성을 지니고 존귀하다? 인간의 실존적 의미를 나타냈다? 단어로야 이해하지만 온전히 이해는 되지 않는다. 그러나 싯다르타와 고타마의 대화에서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규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바로 자아를 결정하는 것은 타인이 아닌 자신이 주체가 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을 읽으면서 실마리가 잡히는 기분이었다. 타인이 어떤 깨달음도 하늘과 땅의 어떤 존재도 나의 자아를 대신해서 가져다 줄 수는 없고, 그런 점에서 유아독존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존하는 존재로서 나를 탐구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싯다르타는 자신을 알기 위해 세속으로 떠난다. 세속적으로 사는 것이 구도자의 행동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 자신을 세상에 던지지 않고서야 세상에 실존하는 나를 알 수 있다고, 모두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온몸으로 세상을 느끼는 것이 형이상적 관념에 빠져 진리를 더듬는 것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을까? 마치 「희랍인조르바」에서 나오는 조르바가 어떤 관념에도 얽매이지 않고 열정적이고 충실하게 사는 모습이 주인공의 이성적이고 금욕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욕구와 진리를 모두 갈구하는 이중적 모습보다 더 완전한 삶의 형태로 다가오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나는 조르바도 아니고 싯다르타도 아니다. 굳이 그들의 판박이처럼 살려고 해도 그렇게 될 수 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다만 내가 그들에게 배운 것은, 관념에 얽매이는 것보다는 사람 자체에 충실한 내가 될 수 있게, 또 사람들 속에서 홀로 오만해지기보다 사람들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게, 그리하여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내가 모든 존재 속에 깃들어 있는 신을 느낄 수 있도록, 그런 마음들을 내 가슴과 신체 곳곳에 스며들게 살라는 것이다. 삶으로부터 도피하지 않도록 사람을 사랑할 수 있도록.

  비사야 후기
   작년보다 조용하고 독서분위기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운영이 더욱 잘되는 느낌입니다. 도서관 관계자분들, 선생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해 드립니다. 행복하세요.

 

<사진출처: 교보문고>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12.03.18 11:23
[내가 쓰는 독후감] 동산도서관에서 개설한 2011학년도 2학기 “고전인문학강좌”를 수강한 학생들의 독후감 중 우수한 독후감을 선별하여 싣습니다.
[박춘화 bom@gw.kmu.ac.kr

 

공자, 그대의 그림자를 알다 

심리학과 정광민

  요즘 인문고전 읽기 열풍이 한창이다. 인문고전 읽기는 유행이나 열풍처럼 단기간에 이목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습관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문고전은 우리에게 과거를 돌이켜보고 미래를 내다보게 한다. 대부분의 베스트셀러는 대부분 길어야 3~4년 정도 영향력이 지속되는 도라지라고 한다면, 인문·고전은 수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서도 영향을 미치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가는 데 근원적 밑바탕이 되는 산삼과도 같은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이처럼 평생 읽는 책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인문고전 읽기를 항상 도전해오고 있지만 왠지 어렵고 혼자 읽기에는 힘들다고 생각해서 포기한 적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 학교에서 인문고전 강좌가 열려 어떻게 인문고전을 읽는지, 다른 사람들과 읽고 토론해보면서 인문고전 읽기에 쉽게 흥미를 붙일 거라고 생각했다.
  
  논어강좌는 세 번(3주)에 나누어 논어와 공자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솔직히 3주 동안 논어와 공자에 대해 알았다고는 할 수 없고 공자의 그림자정도 알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간 첫 시간에는 주로 시청각 자료를 이용해 공자에 대해 알아보았다. 아직 논어 책에 대해 학생들이 읽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공자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이야기 해보고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는지 생각을 나누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자는 학자이고, 공자의 말은 거의 옳은 말이고 따라야 한다는 모범적인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간혹 다른 의견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공자에 관련하여 중국에 직접 가서 촬영한 관련 비디오를 보았다. 솔직히 비디오는 너무 어려운 내용이고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아서 대충 흐름만을 파악했다. 그리고 다음 시간에는 서로 책을 읽고 와서 생각을 나누고 토론하기로 했다.

  첫 시간에 나는 글쓴이 데만세 크릴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 논어의 글쓴이 데만세 크릴은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어 책 등을 공부하며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몰두하며 중국 사람들도 하기 힘든 것을 공부했다는 것에 놀라웠다. 역시 좋아하는 사람을 따라갈 자는 없는 것 같았다. 이러한 사람들은 대학가는 목적부터 다를 것이다. 아니 교육, 공부의 목적부터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 책 10장 개혁가에서도 ‘공자는 정치권력의 행사도, 실제적인 개혁을 단행하는 것도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유일한 실제적인 방법으로서, 교육을 통해 그런 인물을 양성하는 방향을 택하였다. 공자는 ‘유’라는 집단에게 붓과 채을 무기와 방패로 주었으며, 인류애란 명분으로 인류애를 위해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 용감하게 나아가 앉아 있는 강자를 대체하라는 사명을 부여했다.’ 라는 말이 있다. 이들에게는 공부할 목적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왜 교육받고, 공부하는지 목적부터가 명확하지 않다. 그저 남들 하는 대로 하기 바쁜 것이다. 책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대할 것인가, 그것을 읽고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는 지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공부는 자신 스스로가 공부하고 알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교수님이, 책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가르쳐주길 원한다. 그러나 책과 교수님의 이야기는 그 분들의 생각일 뿐, 우리가 다시 생각해보고 동의하는 것은 받아들이고, 아닌 것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두 번째 시간에는 서로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부분이나 감명 깊었던 부분에 대해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와 비슷한 부분을 인상 깊게 읽었다는 사람도 있었고, 반대로 다른 사람이 감명 깊어했던 부분이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으며,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의문이 드는 부분도 있었다. 나는 책의 초반 2장 공자에 관한 資料에서 ‘공자처럼 일단 한 문화의 영웅이 되면, 그의 생애에 실제 있었던 사건에 근거를 두었다기보다는 말하는 사람의 포부와 신념을 토대로 꾸며진 수많은 이야기에 그 이름이 등장하게 마련이다.’ 라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나는 책에 나온 글이나 교수님, 전문가들이 한 말을 좋다고만 생각하고, 그대로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 글을 읽으면서 모든 글 그냥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비판적 읽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항상 우리 과 박권생 교수님께서도 ‘책 읽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떠올랐다. 맞다. 우리는 책을 그대로 다 받아들이고 있다. 모든 지식은 저울대 위에 올려봐야 한다. 책에 있는 것을 믿을 수 있으면 여기 있는 모든 책은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까? 라는 의문이 생기기 마련이다. 내 생각에 책에 질문을 던지며 읽어야 하는 것 같다. 내가 인정할 수 있는지, 모르는 것, 궁금한 것 묵혀두지 말고 묻고 찾아봐야한다. 공자도 길가다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이 있으면 세워 다시 불러보라 한다고 한다. 그러고는 ‘내가 다시 해볼게요.’ 라고 하며 따라 한다는 일화가 있다. 우리도 책을 읽을 때 읽으면서 한 번 느끼고, 정리하면서 한 번 더 깨닫고, 마지막으로 발표를 통해 그 지식과 느낌을 체화하는 과정이 되어야 비로소 자신의 몸에 벤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리고 논어처럼 오래된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묵은 것일수록 새롭게 읽어야 하는 것 같다. 오래된 글이, 그 당시를 이해하는 것 뿐 만 아니라 현재 우리에게,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며, 어떤 부분을 활용하고 도움을 받을지에 대해서 말이다.

  마지막 시간은 서로 각자 한 장씩 맡아 정리해 그것을 이야기 해주며 한 권을 훑어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뜻밖에도 우리는 맛있는 다과와 함께 책 전반에 대해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졌다. 먼저, 각 장을 맡은 사람이 장을 요약하고 설명하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하고 다른 학생들도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궁금한 것을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다. 모두들 자신이 맡은 부분을 잘 준비해왔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오히려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다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점이 너무 아쉬웠다. 솔직히 말해 논어강좌에 배우려는 마음가짐으로 왔다. 즉, 누군가 나에게 지식 넣어주기만을 바랐다. 이것이 잘못된 줄 알지만 22년간을 그렇게 살아와서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이번 강좌에서 스스로 알아가고 찾아가고 이에 대한 나의 입장을 찾아가며 책을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크게 깨달았다. 나는 앞으로 교육 일을 할 것인데, 이 때 책 위주로 설명하는 수업보다는 책은 읽어오고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수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대해 이야기 하려면 책을 읽는 것은 물론, 생각도 해보고 자신의 의견도 정리해봐야 한다. 그리고 그냥 책을 보는 것보다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기억에 오래남고 재밌고 거부감이 적기 때문이다. ‘30년 동안 교사로 일하면서 1명만 바꾸어도 성공한 일이다.’ 라는 말이 있다. 이처럼 교육은 우주를 바꾸는 일이며 가장 위대한 일이다. 현재 야간 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번 강좌가 학생으로서는 물론 교사로서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하는지도 생각해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논어와 공자가 어렵고 딱딱한 책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책에 한자가 너무 많아 읽다가 포기한 적이 많았다. 그 때마다 교수님께서 ‘모르는 것은 그 즉시 해결하라.’는 말을 되새기며 계속 책을 읽어 나갔다. 앞으로도 책을 읽다 한문, 영어, 모르는 것이 나와 막힐 때는 책을 덮기보다는 지는 내 앞에 지금 호랑이가 잎 벌리고 있고, 이것을 해결 하지 못하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글을 읽을 것이다. 글은 외상이 없기 때문이다. 책을 읽을 때도, 공부할 때도 죽을 각오로 할 생각이다. 공부는 하는 만큼 배로 돌아온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논어는 물론 다른 인문고전 책도 많이 읽어볼 것이다.


 

『장자』를 읽고

                                                                        중국어문학과 유지혜

  인문학 고전 강좌의 『장자』를 듣게 된 것은 항상 어렵게만 느껴지는 옛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미리 들어 봄으로써 친근감을 갖고자 함이었다. 또 한 가지는 개인적으로 동양의 철학은 무언가 읽을수록 무언가 아리송하고 스스로 미궁에 빠지는 듯한 느낌이 있었고 그것을 풀어 보고 싶었다. 그런데 세 번의 강좌를 통해 알게 된 장자는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알가는 재미를 더해주는 깊이 있는 생각의 소유자였다.
 
  장자의 철학사상은 游자로 연결되어 있는데,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자유의 세계가 광활함을 보여주는 글자이다. 장자의 책속에서 游가 주는 자유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大鵬이야기」를 통해서 이다. 깊은 바다에 鯤이라는 물고기가 어느 날 변하여 鵬이라는 새가 되는데 그 길이는 몇 천리나 되는 장대한 크기의 새이다. 이 새가 날 때, 엄청난 추진력으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그 바람을 타고 남쪽을 향해 여섯 달 동안을 날아간다는 내용이다. 짧은 이야기 구조이지만 그 속에는 지금의 내가 희망하는 바가 담겨 있다.

  鯤은 물고기 뱃속의 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무엇이 될지 모르는 무한한 가능성이 담겨진 하나의 알이 변화를 거쳐 하늘을 드리우고 날아가는 거대한 새가 된다. 자신이 지닌 하나의 세계를 깨고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가는 붕새를 보면서 내 안에도 알로 된 하나의 세계가 존재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이 알이라는 세계를 깨뜨리기 위해 거치게 되는 투쟁이나 아픔이 앞으로의 길에 놓여있는 것도 알 수 있다.

  장자의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헤르만 헤세의 철학과도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헤세의『데미안』에서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라는 내용이 있다. 자아를 둘러싼 세계를 깨고 그 과정에서 오는 고통을 넘어서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헤세도 장자를 읽고 ‘그 사상이 가장 명료하고 매력이 있다’라고 했는데, ‘장자의 초월적 자유가 헤세에게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고기가 새가 되면서 아무런 대가 없이 자유를 얻지는 않았을 것이다. 변화를 거치면서 물고기의 비늘이 벗겨지고, 그 자리에 날개가 돋기까지의 시간이 견디기 어렵고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유를 위해서 꼭 필요했을 것이다. 이야기에서는 鯤의 변화는 자세히 기록되지 않았지만 바다를 진동시키며 하늘로 올라 간 붕새는 지난날의 성장통을 딛고 자아를 초월한 성숙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붕새는 그 자신이 하나의 세상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자신의 날개로 바람을 일으키고 하늘을 드리우고 날아가는 끝이 없는 크기의 새가 자연과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무엇도 거칠 것이 없이 자유를 만끽하는 붕새는 우리에게 현실에만 안주하는 인간이 아닌 이상을 지닌 자유로운 새가 되라고 용기를 심어 준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듣고 『장자』에 등장하는 매미와 새끼 비둘기는 비웃었다. “우리는 한껏 날아 보아야 겨우 느릅나무나 다목 나무에 이를 뿐이고, 어떤 때는 거기에도 못 미쳐 땅에 내려앉고 마는데, 구만리를 날아 남쪽으로 가다니.” 라며 자신들의 한계를 직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도 매미와 비둘기 같을 때가 많은 것 같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 일의 결과를 계산해보고 가능여부를 논하기를 반복하다 지레 겁을 먹고 관둘 때가 많다. 하지만 꿈은 불가능해 보이는 이상을 열망하며 믿어 버리는 단순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이리저리 따지는 것은 자신의 시각으로 제한해 버리는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장자가 지닌 인생과 우주에 대한 통찰력이 시대를 뛰어넘어 신선하게 다가온다. 마치 구름을 탄 신선이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높은 하늘로 올라가도록 여행을 권하는 것 같았다. 학기 말 한창 시험기간이고 바쁠 때이지만 잠시 마음을 비우고 장자를 따라 자유롭게 생각의 자유를 누빌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다. 더불어 장자의 호탕함과 큰 기상을 따라 앞으로의 대학생활을 멋지게 해나가기를 기대해본다.



<사진출처: 교보문고>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12.02.18 11:44
[독후감] 동산도서관 5기 독서토론클럽 학생들의 독후감 중 두 편을 엄선하여 게재합니다.[박춘화 bom@gw.kmu.ac.kr]

꿈을 꾸고 있다면, 후회할 필요는 없다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읽고…  

경찰행정학과 우아한 

  책을 읽고 나서, 독후감을 쓰려니 막막한 기분이 들어 인터넷 검색창에 책의 저자 박완서를 검색해 보았다. 그리고 나는 인터넷을 통해서 그 분이 올해 초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였을까? 왠지 모를 아쉬움 같은 감정이 느껴졌다. 그것은 분명 한 번도 마주하지 못한 사람의 부고를 들었을 때의 감정과는 분명 다른 기분이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어쩌면 그분을 작가가 아니라 진짜 친할머니로 생각했었다는 것을. 
 
  처음 책을 접했을 때, 산문집이라는 것에 두려움이 컸다. 소설만 읽어오던 나에게 산문이 과연 내 마음을 일렁이게 할 힘이 있을까? 싶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걱정과는 달리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그 어떤 추리소설이나 연애소설보다도 깊이 책에 빠져서 정신없이 책을 읽어나갔다. 물론 이 책은 자극적이거나 화려하지는 않다. 그러나 소박하면서도 따스함이 고스란히 담겨진 책이었다.
 
 
사실 책의 제목에 대해서 나는 그것이 무슨 의미일까를 궁금해 했었다. 알고 보니, 그 의미는 말 그대로 못가본길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는 것이었다. 나도 대학 입학 전, 고3 시절을 돌이켜 보면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 그때 다른 곳을 지원했더라면, 현실에 타협하지 말고 그때 간절히 원하던 것을 선택했더라면, 그때에 좀 더 노력을 했더라면... 이런 생각들이 들어서 항상 그때 하지 못했던 길을 갔더라면 지금보다 나아져있지 않을까 생각하곤 한다.

 
사실 대부부의 사람들이 꿈꾸던 것과 달리 초라하게 느껴지는 현실에 원망을 하기도하고, 자신이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것인지 의문을 품기도 한다. 그러나 박완서 작가는 이렇게 살아가는 하루를 비관할 필요는 없다고, 그 어떤 현실도 꿈을 뛰어 넘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꿈꾸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면, 뒤돌아 후회할 필요가 없다고 알려준다.

  나는 그러한 작가의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후회할 필요는 없다. 그러한 말을 해주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모두들 앞을 보고 나아가라고 이야기만 해주었지 지금까지의 삶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말해주는 사람은 많지가 않았다. 그런데 작가는 후회하지 말라고 말해준다. 그 후회에는 못다 이룬 꿈에 대한 미련도 남아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못다 이루었다고 해도, 지금 현재에 또 다른 꿈을 꾸면서 하루를 살아간다면 그래도 꽤나 근사한 무언가가 만들어져 있을 것이니까 말이다.

  이 책에는 작가가 읽었던 책들에 대한 글들도 실려 있다. 그중에 ‘엄마를 부탁해’라는 책에 대해 쓴 글도 있었는데, 나도 그 책을 읽었었다. 같은 책을 읽었는데도 내가 느꼈던 것들과 다른 부분도 많았고, 같은 부분도 있었다. 특히 놀라웠던 것은 할머니 나이인 작가가 엄마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었다. “넘치게 사랑받은 기억은 아직도 나에겐 젖줄이다.”라는 부분에서 작가가 엄마를 그리워 한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나는 잊고 살 때가 있다. 엄마는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엄마였고, 할머니는 내가 처음 할머니를 본 순간부터 할머니였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유년 시절이라든지, 청춘 없이 그저 바로 엄마, 할머니였던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그러나 몸이 늙었다고 마음마저 늙은 것은 아니라고 누군가 그랬던 것처럼, 분명 어른들의 마음도 나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나는 박완서 작가의 책이 아니었다면, 어른들의 마음은 강철과 같아서 슬픔도, 그리움도, 때로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고픈 마음도 모른 채했을지 모른다.

  이 책에는 분명 그 어떤 책보다 나 스스로를 반성하게 하는 교훈이 가득 담겨있었다. 그러나 이 교훈은 학창시절 운동장 뙤약볕 아래에서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 같은 것이 아니라, 겨울날 할머니가 들려주던 그런 마음속 깊이부터 따뜻해지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책이었다. 누구보다 뜨거워야 할 20대 청춘이라고 어른들은 말한다. 그러나 현실이 자꾸만 마음을 무겁게 하고, 차갑게 만들어서 그저 무의미하게 하루를 살아갔던 것 같다. 이 책은 그러한 나에게 따뜻하지만 뜨겁게 살아갈 어떤 것들을 심어주었다.

  “나를 스쳐간 시간 속에 치유의 효능도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직 스쳐간 시간보다 살아갈 시간이 많다. 그 속에서 나는 상처도 받고 힘겨운 현실에 부딪히겠지만, 그때마다 이 책을 떠올리고 저 구절을 떠올릴 것이다. ‘그래,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나는 그 속에서 나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구나.’ 그리고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박완서 작가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이 책처럼, 나도 언젠가 내 삶의 마지막이 가까워졌을 때 사랑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그리고 그때쯤에 내가 지금과 달리 마음이 훌쩍 자라서 누군가를 용서하고, 마음에 남은 앙금도 훌훌 털어버리고,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박완서 작가처럼 나도 할머니가 되어도 소녀 같은 감성을 잊지 않고 해맑게 웃을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 되기를 희망해본다.



스물 살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경영학과 강준욱

  먼저 나는 이 책에 대해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책의 제목이 서점에 널려있는 소위 자기 계발서들을 연상시켰기 때문인데, 읽을 때는 옳은 소리만 하면서 독자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지만 읽고 나서는 기억에 남지 않는 그런 책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펼치기 전까지는 특별한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읽고 난 후에는 적어도 그런 선입견은 떨칠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잘 읽어본다면 대학생들이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고 맞서 나아갈 때 충분히 참고할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인 티나 실리그는 스탠퍼드 대학에서 경영학과 학생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또 다양한 분야의 기업 간부들을 대상으로 열성적인 강연도 하고 있다. 대체로 경영학과 학생이 아닌 이상 기업가 정신이 대체 나와 무슨 상관인가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여기서 말하는 기업가 정신의 ‘기업’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삼성이나 LG같은 ‘기업(企業)’으로 풀이되기도 하지만, 도전적인 뜻을 가진 ‘기업(起業)’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넓게 보자면 ‘창조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기업가 정신이라는 단어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기업가 정신으로 대표되는 창조적 가치는 학과를 떠나서 분명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요즈음 유행하는 창조적 가치, 창의적 발상 같은 단어들이 수많은 학생들의 골머리를 아프게 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의 스무 살 내기들은, 그리고 스무 살이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와 반쯤 격리되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교육을 받으며 살다가 갑자기 사회로 뚝 떨어지고, 난데없이 창조적 가치를 생산해내라고 요구받는 처지인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학생들이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그 창조적 가치가 대관절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 것으로 본다. 물론 나도 창조적 가치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그렇다면 급변하는 사회에서 창의적인 무언가를 요구받게 되는 학생들이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 책은 바로 그 점을 짚어주고 있다.

 
책의 내용을 보면 흥미 있고 진취적인 일화들이 많이 실려 있는데 나는 세 가지 관점에서 인상 깊었던 주제를 꼽아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개인의 성찰에 관련된 부분으로, 저자는 직업을 선택하기 위해 일에 대한 열정과 재능, 시장의 수요를 따져보고 자신의 상황을 수시로 재평가하면서 많은 가능성을 시험해보며 나아가라고 한다. 또 그런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나 세상 사람들의 조언은 가려서 들으라는 것도 덧붙이고 있다. 이 부분을 읽다보니 스무 살 때의 내가 떠올랐는데, 그때 나는 수능시험을 치고 대학의 전공 선택에서 역사교육과와 공과대학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그 당시 A대학 역사교육과의 입시요강은 언어와 사회 영역에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언어와 사회에‘만’ 자신 있던 나는 두 과목의 수능 성적도 A대학 사범대의 전년도 입시성적보다 높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었고, 또 나도 역사를 좋아하고 교육에도 흥미가 있었기 때문에 그 쪽으로 마음이 쓸렸다. 반면 아버지께서는 공대를 가라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인문 계열에서 공부하였기 때문에 공대를 가자면 낮은 수학점수 때문에 일정 부분 하향 지원을 해야 했고, 컴퓨터는 곧잘 다뤘지만 도통 수학과 과학에 관심이 없었으므로 공대에는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다만 아버지께서는 먹고 살기 위해서는 공대가 제일이라고 하셨고, 나는 고민하다가 결국 부모님의 기대에 맞춰서 공대로 진학하고 반 년 만에 자퇴를 했던 적이 있다. 그 당시엔 방황도 많이 했고, 부모님 원망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 다시 돌이켜보니 내가 나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대한 성찰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나 자신을 맞추다가 실패를 본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에 와서는 우리 학교 경영학과로 입학해서 다시금 학생이 되었고, 어느 정도 돌아서 온 길이지만 경영학과에서 내가 가고자하는 방향을 찾았기 때문에 이제 와서 그때의 일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 당시의 일들은 살아가면서 내가 선택에 직면했을 때 돌이켜 볼 교훈으로 남을 것이다.

 
두 번째는 개인과 환경에 대한 관점이다. 우리들은 살면서 많은 문제와 기회들에 맞닥뜨리게 되는데, 이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스탠포드 대학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하면서 흥미로운 과제들을 주는데 클립이나 고무줄 따위로 최대한의 가치를 창출해보라는 것이다. 학생들은 갖가지 기발한 결과물들을 내놓는데, 여기에는 중요한 교훈이 있다고 생각한다. 거의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상태(즉, 무일푼 수준으로 시작하는 우리들)에서 무언가 뛰어난 가치(우리들이 바라는 ‘성공’)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바라보는 문제와 가치를 재정의 해야만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창의적 가치를 통해 성공에 다다를 수 있는 기회). 이번 학기 경영학과 CEO 포럼의 외부강사 중 도시바 코리아 사장님의 강연에서 인상 깊은 말이 있었는데, 배고플 정도로 가진 게 없는 상태에서 가장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내가 가진 게 없기 때문에 미래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또 그런 상황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들에는 알고 있는 게 없고, 가진 게 없어서 쉽사리 포기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저자인 티나 실리그와 도시바 코리아의 사장님 모두 가진 게 없을 때야 말로 진정으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한다. 나 역시 살면서 직면한 문제들에 지레 포기한 적이 많았다. 가령 수업 중에 잘 모르는 분야의 과제를 하게 된다면 어떻게든 점수만 잘 받으면 된다는 식으로 과제의 본질적인 주제에 대해 깊이 탐구해보지 않고 적당히 서적과 인터넷의 자료를 조합해서 그럴듯한 과제를 내는 식이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과제, 즉 문제를 내가 진정으로 성장하기 위한 과제로 정의하고 창발적인 자세로 아이디어를 짜낸다면 그것이 내가 살아가기 위해 진정한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세 번째는 인간관계에 대한 관점이다. 이 책의 일화 중 중요한 프로젝트를 앞두고 마음대로 퇴직해서 같이 일했던 동료들을 크게 고생시키고 실망시켰던 직원의 이야기가 있다. 또 우리 모두는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가므로, 서로가 이익을 얻는 ‘윈-윈’적인 자세로 서로의 장점에 주목하라는 이야기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공감이 가면서도 실제로 살면서 지키기 어려운 문제로, 나는 예전에 고용노동부 조사원으로 근무할 때 상관인 공무원과 싸우고 일을 그만둔 적이 있다. 상관이었던 그 분이 사람은 좋지만 휘하의 조사원들을 통솔하기에 리더십이 없어 보였고, 자기가 혼자 할 수 있는 컴퓨터 업무 같은 것들을 바쁜 조사원들을 불러다 시키는 모습을 보고는 그만 화가 나서 대판 싸우고 해고당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자의로 그만둔 것은 아니지만 팀에 불화가 생기고 내가 해고당함으로써 우리 조사팀의 동료 조사원들은 분명 피해를 봤을 것이다. 또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 담당 공무원과 차분차분히 이야기하고 서로간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조율을 했다면 그런 나쁜 결과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와서는 그때의 실패를 교훈삼아 타인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고, 경청하고 공감적인 자세를 갖추려고 하고 있지만 때때로 나쁜 성격이 튀어나올 때도 있는데, 이렇게 책을 읽으면서 항상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 관점을 종합하면 어떤 결론이 나올까? 우리는 항상 자신에 대해서, 또 자신의 주변 환경과 주변 사람들의 관계에 대해서 돌아보고 성찰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책의 결론부에서 저자는 ‘당신 스스로를 허락하라’라고 말한다. 끊임없이 실험하고, 실패하고, 나아갈 길을 스스로 설계하고, 능력의 한계를 믿지 말고 그것 이상의 무언가를 시도해도 좋다고 스스로에게 허락을 내리라는 것이다. 즉, 끊임없는 성찰과 그를 바탕으로 한 미래에 대한 진취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바탕이 되는 진리가 있다. 바로 미래는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인생의 불확실성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우리가 봐왔던 책에서도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쓴 김난도 교수는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계획만 세세히 짜는 것은 급변하는 미래 환경에 적응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톨스토이 단편선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는 천사 미하일이 사람은 한치 앞의 미래도 알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웃음을 짓는 장면도 나온다. 미하일이 마지막으로 웃었을 때는 모든 인간은 사랑으로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미하일은 비로소 모든 죄를 용서받고 승천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를 올바른 자세로 대하는 방법을 알 수 있다. 자신과 환경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긍정적이고 공감적인, 포용할 수 있는 자세다. 그것이 온전히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 ‘스무 살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은 지나간 스무 살 때 이런 것을 알았으면 좋았다고 반성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 책의 뒤표지에서도 나오지만, “그때 할 수 있었다면 지금도 할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스무 살 때 이 책을 보지 못했다고 한탄하지는 않는다. 바로 지금 스물일곱에 이 책을 읽어 보았기 때문에 스무 살의 나를, 지금까지의 나를 성찰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출처: 네이버, 교보문고>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11.12.17 09:45

[독후감] 동산도서관 5기 독서토론클럽 학생들의 독후감 중 두 편을 엄선하여 게재합니다.[박춘화 bom@gw.kmu.ac.kr]


어떻게 사는가에 대한 의미, <그 청년 바보의사>를 읽고

독서토론클럽 5기 나누리 팀
한국문화정보학과 김민지

  독서토론클럽을 시작하고 약 한 달 만에 나에게도 발표의 기회가 왔다. 발표일이 한창 시험 기간이었던 터라 독서토론클럽에 지원할 때의 강한 의지와 다짐은 코앞에 다가온 시험 앞에서 몽땅 물거품이 되었고 발표 준비는 시험공부에 밀려 진도가 더뎠다. 그런 정신없고 힘든 와중에 이 책을 읽었다. 300쪽이 채 안 되는 작은 책을 가벼운 에세이 정도라고 생각하고 책을 폈으나 그것을 읽는 동안 나는 분명 크나큰 감동과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그것은 한 사람이 고집스럽게 걸어간 삶의 모습이, 보여준 신념이 나에게 많은 화두를 주었기 때문이다.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유명대학의 의과대학을 졸업해서 모두가 선망하는 의사라는 직업을 가졌기에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그럴듯한 직업과 명예가 아니었다. 그가 생각한 삶에서의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삶'이었다. 그는 하나님이 말하는 ‘사랑’을 실천하여 새벽에도 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환자의 머리맡에서 환자가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기도를 하기도 하고, 자신의 치료가 환자들에게 진정한 치료가 될 지 의사로서 늘 고민하고 걱정하면서도 삶을 힘겨워하는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손을 내밀어 위안을 주는 치료 이상의 ‘치유’를 해 준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스스럼없이 자신이 아끼는 것을 모두 내어주면서 복음을 전하고 때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마음이 작아져 의심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가 믿음을 향한 옳은 길로 갈 수 있게 도와주며 지켜 봐 준다. 이렇듯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바탕으로 자신에게는 한없이 엄격하게, 그리고 타인에게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삶을 살았던 이 사람은 ‘참의사 그리고 참 그리스도인’으로 살다가 2006년 갑작스러운 병으로 세상을 떠난 ‘바보의사’ 안수현 씨다.

  안수현 씨는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어 자신의 종교적 믿음을 바탕으로 한 사랑과 배려, 소명을 행동으로 실천하며 보여주었다. 그는 두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교회를 다니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져왔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여 보여주는 삶을 살기로 결정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늘 모든 일에 하나님에 관한 일을 우선순위로 두어 늘 믿음을 먼저 하였는데 그가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여 환자들에게 의사로서의 참된 소명을 갖고 ‘치료 이상의 치유’를 해 준 것도 바로 이러한 종교적 믿음과 확신으로 결정된 것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의사로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유년시절 클래식을 좋아하고 즐겨 들었던 자신의 경험을 살려 CCM에 관한 칼럼을 쓰면서 더욱 더 많은 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복음을 만나게 하려 노력하였다. 이러한 그의 복음뿐만 아니라 그의 타인을 향해 보여주는 끊임없는 사랑과 배려의 행동 그 자체는 삶에 지친 이들에게 충분히 많은 위로와 응원, 감화를 주었고 그가 보여준 행동을 바탕삼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변화시켜 나갔다.

 
이 책 <그 청년 바보의사>에서는 그가 의사로서 진료를 하면서 보았던 많은 이들을 통해 느꼈던 종교적 단상에 관한 미니홈피의 글과 그의 클래식에 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CCM 칼럼의 글 등을 그가 죽은 뒤, 그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에 관해 회상한 이야기와 함께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이 책은 그가 늘 의사로서 느끼는 소명의식과 하나님에게 끊임없이 다가가려는 고뇌, 종교 활동을 하면서 얻는 즐거움과 고민이 그의 담담한 문체를 통해서 솔직하게 담겨있다. 때로는 그도 인간이기에 다른 이들을 도와주는 것에서 오는 고민과 후회도 있다. 이 길이 사랑과 믿음을 실천할 수 있는 옳은 길인지 고민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길을 믿음을 통해 흔들림 없이 굳건하게 걸어가려 한다.

  그의 삶이 사실 우리 같은 평범한 이들이 보기에는 그의 별명 그대로 ‘바보’같아 보이기도 한다. 모든 이들이 부러워하는 ‘잘 나가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늘 주머니가 비어있었고 다른 이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아파하느라 결국 자신의 일들을 제때 해결하지 못해 다른 이들보다 뒤처지기도 한다. 그야말로 잇속이라고는 모르는, 답답한 삶이다.

 
하지만 결국 책의 끝 장을 읽는 순간, 나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그의 삶이 끝나는 순간을 지켜보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을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늘 실속 없이 다른 이에게 배려를 해왔던 청년이, 자신의 모든 것을 제쳐두고 하나님에게로 달려 나갔던 청년의 삶이, 그래서 누구보다도 더 뜨겁게 인생을 살아왔던 한 ‘바보 같은’ 청년의 삶이 죽음으로써 끝나버리는 순간 그가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타깝고 눈물짓게 만드는 것이 각박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와중에 흔치 않은 모습을 한 그의 삶이다.

 
그러면서도 독서토론클럽 모임에서 하신 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얼마나 사느냐 보다 어떻게 사느냐의 가치’가 바로 그것이다. 진정한 가치 있는 삶이라는 것, 그는 비록 오래 살지는 못했지만 누구보다도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왔다. 그의 삶은 타인에게 감동과 사랑을 준 것과 동시에 자신의 신념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지켜나간 스스로의 가치가 있기에 그의 짧은 생은 어찌 보면 결코 슬프거나 안타까운 비극이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은 저자 안수현 씨의 종교적 신념에 대한 고찰에 관한 일종의 신앙서적이라 사실 기독교적 내용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하여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해나 공감이 안가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하며 나 역시 비 기독교인이기에 이 책에서 보여주는 기독교적 교리를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러한 것을 넘어서 그의 삶 자체가 보여주는 감동은 종교적 신념이나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가치가 존재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은 이렇게 어떠한 신념에 추호도의심 없는 확신을 갖고 흔들림 없이 살 수 있을지 스스로 반문하면서 그가 느꼈을 삶의 고민들을 조금은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언젠가 마음이 추워지는 시기가 오면 나는 그가 한 말과 그가 살아왔던 인생의 구절이 어렴풋이 다시금 떠오를 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보여준 삶이 나로 하여금 따뜻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것과 그가 전해주는 위로를 나 역시 받고 싶은 마음에서 일 것이다.



명심보감

독서토론클럽 5기 에코 팀
경영학과 강준욱

  명심보감의 명심은 마음을 밝게 한다는 뜻이며, 보감은 거울같이 비춰보는 교본이 된다는 뜻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론 어릴 적에 어린이용으로 나온 것을 읽어본 걸로 기억되는데, 대부분의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고 아직까지 기억이 나는 내용을 꼽자면 효행편에 있는 '음식을 먹을 때 부모님이 부르면 입 안에 있는 것을 즉시 뱉어내고 대답해야한다' 같은 내용 정도이다.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엄했던 편이라 이런 내용이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이제 대학생이 되어 독서토론클럽 덕분에 읽을 기회가 생겨 다시 읽어보니 어릴 때와는 다른 입체적인 시각에서 책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옛 사람들의 가르침을 금언집 형식으로 엮어놓은 책인데 각각 주제에 맞춰 많은 격언과 금언들을 나열해 놓은 형식이다. 물론 이런 격언들이 그렇듯이 대체로 정론에 가까운 이야기들이라 입바른 소리로 느껴질 수도 있고, 격언의 나열 형식이라 스토리가 없기 때문에 소설책 읽듯이 속독해나가면 읽고 나서도 기억에 남는 글이 별로 없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읽으면서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있거나 혹은 현실에서 겪었던 일에 비춰볼 만하다고 느껴지면 여러 번 곱씹어가면서 탐독하는 방법으로 읽는다면 기억에도 남을 것이고 교훈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명심보감은 여러 서적과 격언을 엮다보니 각각의 격언에서 전하고자 하는 바가 상충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가령 성심편을 보면 '배부르고 따사로움 속에서 음탕한 욕심이 생기고, 굶주리고 추운 데서 바른 마음이 싹튼다.'라고 하고, '사람의 의리는 다 빈한한데서 끊어지고 세상의 인정은 모름지기 돈 있는 집으로 쏠린다.' 같은 내용도 있다. 이러면 독자가 읽으면서 격언의 내용 중 어떤 것을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 혼란이 생길 것 같다. 물론 검소하고 바르게 살면서 주변의 귀감이 된다면 올바르게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적절하게 부를 추구하면서 베풀고 사는 인정을 가지는 것도 좋은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명심보감의 내용 대부분이 격언의 나열로 이루어진 책이니 어떤 경우에 어느 쪽의 삶을 선택하라거나 하는 내용은 적혀있지 않다. 이렇게 상충되는 부분이 군데군데 존재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현실의 복잡다양한 상황은 말 한 두 마디로 온전하게 표현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하나의 격언을 가지고 그것이 황금률인 양 따르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각각의 격언에서 전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고, 서로 다른 격언이 주는 교훈을 깊이 생각해서 자기 나름의 결론을 낸다면 처세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명심보감의 가치는 책이 주는 교훈 이상의 것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사서삼경 같이 본격적인 학문을 하고자 할 때 쓰이는 책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가정과 서당에서 읽히고, 격언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면서 가장 많은 사람이 읽고 들은 책이라고 할 수 있으며 현재까지도 많은 격언들이 우리네 가정에서 교육에 쓰일 정도로 우리 민족의 가치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책이다. 요컨대 계선편과 천명편은 권선징악을 바탕으로 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전반적인 목표점을 제시하고 있으며, 효행편과 훈자편은 각각 자식과 부모가 부모자식 관계에서 어떻게 하면 도리를 지킬 것인가를 설파하고 있다. 정기편과 존심편은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갈고 닦는 방법에 대해서 각종 경구로 설명하는 식이다. 이렇게 명심보감은 사람 개인의 행실을 규정하고 개선할 수 있는 금언들로 주로 이루어져 있고 이런 내용들이 수백 년 이상 동안 면면히 대를 이어 내려왔던 것이다. 이렇게 민족 안의 개인의 가치관 형성에 큰 틀을 가지게 한 역할만으로도 가치가 있겠으나, 명심보감에는 개인과 민족의 가치관 형성 이상의 내용 또한 담겨있다.

 
말하자면 명심보감에는 삼황오제부터 시작하여 전체적으로 간략하게 중국의 역사가 서술되어 있으며 다소 사대주의가 가미되어 있지만 고조선부터 조선건국에 이르는 우리 역사가 서술되어 있다. 또 옛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사계절과 열두 달의 구분을 어떻게 하는지도 적혀있어 시간적인 개념이 어떠했는지도 알 수 있으며 흥미롭게도 '하늘에는 위성이 있으니 금성·목성·수성·화성·토성의 다섯별이 이것이요, 또 경성이 있으니 각수·향수·저수·방수‥(중략)‥진수의 이십 팔 수가 이것이다' 같이 천문학적인 내용도 서술되어 있다. 즉, 옛 사람들이 세계를 어떻게 인식했고 어떤 모습으로 세계를 묘사했는지에 대한 세계관을 파악할 수 있으며 이렇게 인간 내적인 면에서 세계의 모습까지 대략적으로 그려놓았기 때문에 명심보감은 옛 사람들의 가치관과 세계관 자체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현대인들이 명심보감을 읽는다면 옛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는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며, 나아가서 젊은이들이 곰곰이 생각하면서 읽는다면 우리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옳다고 여겨진 가치와 도리에 대해서 이해하고 그것을 현대적으로 보완하여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전통적 가치관을 지키며 살아온 어른들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학문적으로는 여러 성인과 양서에서 따온 금언이 많기 때문에 그런 것을 하나하나 추적하며 숙독하다보면 동양적 학문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듯 명심보감은 현대에 와서도 다양한 의미를 가지는 책이기 때문에 명심보감이 현대에서도 널리 읽히고 재조명 받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11.11.18 16:50
[독후감] 2011년 동산도서관 가을 페스티벌 「책에 미친 비사 夜」 독후감 대회 각 분야(재학생, 고등학생, 지역주민)에서 대상을 수상한 수상자의 독후감을 싣습니다.[박춘화 bom@kmu.ac.kr]

[재학생부] 장지연 (영어교육과 1학년)

 
여느 때라면 하릴없이 별 의미 없는 우스갯소리를 채팅으로 주고받고, 사람들이 내 글을 읽기 쉽도록 취대한 간추린 한 줄짜리 공개일기를 미니홈피에 쓰고 있었을 금요일 밤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학교에서 책 읽기 행사에 참여하는 날이라 유례없는 시간에 도서관으로 향했다. 막연히 책의 가치를 높이 생각하고 책을 읽으며 좋은 문장들을 곱씹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다른 어떤 것들에 순위가 밀려 늘 미루게 되는 책 읽기. 이번에는 한번쯤 책 읽기에 우선순위를 매겨 주고 싶어 반가운 마음으로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나는 정말이지 가슴을 울리게 하는 멋진 책 한권과 만난다. 언뜻 보기에 별로 감흥 없는 제목에 겉표지도 크게 눈길을 끌지 않아 사람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책들 중 하나였다. 늦게 도착한 나는 좁은 선택의 폭에서 이 녀석을 고르게 되었다. ‘화씨 451’이란 책이 불타는 온도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어느 가까운 미래이고, 책 읽는 일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집 안에 책을 소장하고 있는 경우 방화수들이 달려와 책을 불사 지른다. 주인공 몬태그는 10년 동안 책을 불태우는 일을 해 온 어느 방화수이다. 아무도 책을 불태우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으며, 단지 국가의 ‘법’에 따라 죄책감 없이 책을 불사 지르는 광기의 미래 사회이다. 10년 동안 별 생각 없이 책을 태우던 몬태그가 항상 세상에 대해 의문을 품는 어느 소녀를 만나면서 이전에 생각하지 못한 것에 대해 떠올리게 된다. 소녀는 눈과 귀를 활짝 열고 세상을 몸으로 느끼려고 하며, 과거의 책이 있었던 세상에 대해 궁금해 한다. 그리고 그녀는 사람들이 모두 같은 얘기, 알맹이 없는 우스갯소리만 하고 진심으로 상대방을 사귀지 않는다고 말한다. 학교에서는 이미 정해진 지식들을 깔때기에 넣고 일방적으로 학생들의 머리에 주입시킬 뿐이라서 자신은 그런 공부가 재미없어 학교에 가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은 정말 가정된 미래 사회의 이야기 인가?

  나는 몬태그와 함께 집으로 들어가는 소녀의 뒷모습을 우두커니 지켜봤다. 우리가 정말로 상대방에게 진지하게 관심을 가진지가 얼마나 되었지? 그건 정말 중요한 일인데 말이다. 한 장 한 장 책을 읽어갈수록 이처럼 머리를 환기시키는 신선한 충격들의 연속이었다. 그 광란의 미래 사회는 참 우리의 것과 흡사했으니까. 하루 종일 집에서 세 벽면에 설치 된 텔레비전 ‘친척’들과 대화하는 몬태그의 아내, 텔레비전들은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지껄이지만 마치 사람처럼 웃음소리도 내고 맞장구도 칠 줄 안다. 몬태그는 아내와 대화한ㄴ 자기 자신 조차도 TV 전기장치 같다고 느낄 지경이다. 그리고 그녀는 늘 귀마개 라디오를 귀에 꽂고 있는데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말이 잘 안 들린다. 집에 오자마자 텔레비전과 컴퓨터를 켜고,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나 혼자 할 일이 없을 때면 귀에 꽂은 엠피쓰리 이어폰을 생각해보라. 그녀의 모습은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소녀를 만나 약간의 심경변화를 겪고, 아내를 보며 문득 서글픈 기분을 느끼던 몬태그는 어느 날 결정적으로 책과 함께 분신자살을 하는 어떤 여자를 보고 충격에 빠진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책에 대해 궁금해 하게 되어 책을 훔치게 이른다. 점점 책을 훌륭하게 여기는 소수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 그는 책의 엄청난 가치를 확인하게 되고, 책을 지키는 사람들의 힘겨운 대열에 참여하게 된다. 책을 금지하는 이유에 대해 이 사회는 이렇게 설명한다.

  책은 사람들이 골치 아픈 생각에 빠져들게 만든다. 사물에 대해 ‘왜?’라고 질문하게 마들고, 상반되는 어떤 것에 대해 고뇌하게 한다. 그 속에는 실제로 별 쓸모도 없는 무거운 내용의 철학이 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 텔레비전 프로 쇼핑이라 즐기는 것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평화로운 세상은 사실 죽음을 의미하는 조용함이 아닐까?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며 살고, 아무도 의문을 갖지 않는 세상. 겉으로는 화려하고 알록달록 하지만 생명력이라곤 없는 껍데기에 불과한 세상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란 그런 것이라고, 지금 우리들의 현실이 그러하다고 ‘화씨 451’은 강한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어느 문학가의 강연에서 그가 시인, 소설가에 대해 내린 정의가 떠올랐다. 우리가 만약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다친 곳을 치료 할 수가 없어서 죽게 된다고. 이처럼 무감각이라는 건 무서운 것인데, 시인과 소설가는 썩어 가는 세상 속에서 보다 일찍 아파하는 사람이라고, 나는 책이 사라져 가는 세상에 대한 브래드 베리의 진통을 전해 받은 셈이다.

  사실 우리는 눈과 귀를 즐겁게 할 수 있는 그 모든 편리한 장비들이 갖추어진 세상에서 살고 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무엇 하나 모자랄 게 없는 세상이다. 하지만 마음 한 구속이 계속 공허한 이유, 무언가 빠져있는 기분이 드는 이유는 무엇인지. 우리는 왜 이런 즐거운 세상 속에서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지를 이 책은 우리가 책고 멀리 있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사람들과 신나게 떠들고 돌아와 집에 덩그러니 혼자 남는 순간 늘 무언가 허무하고 갈증이 나는 건, 바깥세상에서 나누는 이야기들은 질이 떨어지며 진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은 짜임새가 있어 책장 하나하나가 진실한 삶의 이야기이며 뚜렷하고 세밀하다. 알맹이가 있는 이야기를 나눌 때 우리의 마음은 공허하지 않다.

  짤막짤막한 글과 농담 따먹기로 여느 때처럼 보냈더라면 언제나처럼 갈증 나는 기분에 잔뜩 우울했을 금요일 밤에 이렇게 책을 읽으니 마음이 편안한 것처럼. 그리고 책은 읽는 사람들에게 여유를 선사한다. 언제나 뭔가 즐기지 않거나 일하지 않으면 불안한 우리는 사실 마음의 여유가 거의 없다. 책을 읽는 사람은 그것을 읽다가 잠시 덮어두고 잠깐 생각에 잠길 수도 있고 문장의 의미를 곱씹으며 마음을 울리는 감동의 진동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한 것들은 현실 속에서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여유이며, 우리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흔히들 여유가 있어야 책을 읽지 라고 말하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책을 읽음으로써 진정한 여유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호젓하게 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밤을 새워 책을 읽으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여유야말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정말로 와 닿는 상황에서 알맞은 책을 읽은 것 같다.

  책을 읽는 것은 사실 스스로를 위한 것이니 그렇게 대단하게 유세부릴 일이 아니다. 그렇게 이렇게 시간을 내서 책을 읽는 행사가 주목을 받으며, 사진기가 참가자들을 찍어대는 것은 그만큼 책 읽는 사람이 드문 우리 사회 모습의 반증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불사 지르고 머리 아픈 건 생각하지 않으며, 점점 바보가 되어가는 ‘화씨451’속의 사람들과 우리가 다른 것이 무엇일까.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은 단순히 쾌락을 쫓는 사람이 아니라 책을 읽어 스스로 사고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책 읽기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밀고 늘 가벼운 잡담과 오락거리에 집중해 왔던 나 자신을 부끄럽게 만든 책이었다. 여느 때의 소모적인 금요일 밤이 아닌 여유로우면서도 의미 있는 금요일 밤을 보냈다. 책을 읽으러 와서 책의 소중함을 더 깨달아 간다.


[중·고등학생부 대상] 이가인 (경일여자고등학교 2학년)

  나는 언젠가 어려운 철학책들을 옆구리에 잔뜩 끼고 다닌 적이 있었다. 예로 들자면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가 그 중 하나였는데, 돌이켜 보면 사실 온전히 이해가 되는 텍스트는 거의 없었다. 어떠한 문장은 아무리 곱씹어서 삼켜도 소화가 되지 않아서 속이 거북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책을 줄곧 끼고 다녔다. 이렇게 어려운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만방에 알리고 싶은 나만의 자만심이 그렇게 표출된 것이다. 이러하다 보니, 읽지도 못하고 쌓아두는 어려운 책들이 자꾸만 늘어갔다. 더 큰 문제는 철학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철학적 사유는 여전히 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자 철학에 가졌던 나의 막연한 동경심도 점차 사그라들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다 읽지도 못할 철학책을 집어 들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책을 선택하면서, 나는 일말의 기대에 찼으리라, ‘이 작고 두꺼운 것이 나의 지적 허영심을 채워줄지도 모른다.’ 또한, ‘나의 정신적 자만심을 이로써 증명해내리라’는 좀 어리석은 바람도 일부 있었을 것이다. 아니, 확실히 그것이었다. 여태동안 난 철학을 사랑하는 ‘척’했던 것이니라....

  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르자 그동안의 나의 행동은 부끄럽게 와 닿았다. 더욱 진정성을 가지고서 철학을 사랑해볼 냥으로 나는 새로이 마음을 다져야 했다. 나를 철학의 길로 이끌어 줄 새로운 셀파는 “철학의 숲, 길을 묻다.”였다. 이는 네이버 캐스트에 연재된 ‘철학의 숲’을 활자로 엮어낸 책이었다. 매번 그랬듯이, 나는 먼저 책을 쥐고 가만히 훑어본다. “철학의 숲, 길을 묻다” 문자 그대로 철학의 숲에서 길을 묻는 댄다. 길을 ‘잃다’도 아니고, ‘찾다’도 아니다. 길을 ‘묻다’이다. 무엇보다도 철학의 숲의 길에서는 질문을 던진, 즉, 묻는 행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넌지시 일러주고 있다. 그리고 숲길을 찾는 것, 다시 말해 종착점까지 도달하는 것은 독자 스스로에게 맡긴다는 얘기일 것이다. 시선은 제목에서 표지로 미끄러져 내린다. 시중에 나와 있는 철학책치고는 거부감이 들지 않게끔 잘 디자인 해 놓았다. 이로써 철학책과 독자 사이에 생길 수 있는 이질감은 최소화한 셈이다. 책을 펴자, 가장 먼저 활자가 눈에 들어와 박힌다. 보기 편토록 적당히 넓고 큰 것이 단박에 읽힌다. 책의 목차를 훑어보니, 프롤로그에는 친절하게도 ‘철학의 숲을 산책하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고, 내용은 크게 고대, 중세, 근대의 3장으로 나누어져 22명의 철학자들을 서술하고 있었다.
 
  나는 책을 읽어나가면서 ‘진리의 상대성’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가졌다. 많은 철학자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그 중에서도 나는 지금 진리의 상대성과 관련하여 ‘프로타고라스’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내가 프로차고라스에 관하여 느끼는 아쉬움은 적잖이 컸다. 누구에게나 ‘소크라테스’의 이름은 익숙할 것이다. 그러나, 포로타고라스의 이름을 기억해줄 이는 과연 몇이나 될까?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역사에 길이 남는데 있는 의의는, 그가 철학의 관심을 자연세계에서 인간세계로 이동시킨 데에 있다. 그러나 사실상, 시간 순서로 볼 때 인간세계로의 철학을 먼저 이끈 이는 프로타고라스였으며,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의 원조도 프로타고라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왜, 프로타고라스는 역사의 뒷켠으로 사라져 버린 걸까. 그 이유가 바로 ‘상대성’에 있다. 그가 모든 것을 상대적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인류는 그에게 주목하지 않았다. 
 
  나는 초반에 철학에서 상대성이 왜 효용 되지 않는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위해서는 사건의 배경을 전반적으로 이해해야만 한다. 사건의 배경아리 함은 사람에 따라 모두 다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상대적인 판단이 개입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 거짓을 가려내야 하는 철학의 영역에서는 상대성은 치명적이었다. 어떤 초월적 기준이나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 이러한 철학은 결국 허무주의와 상대주의를 견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양한 종교, 다양한 인종들이 공존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어떠한 철학적 기준을 가져야 할까? 우리는 이제까지 시대에 부합하는 미덕과 정신을 가져왔다. 중세에는 종교에 의해, 근대에는 이성과 자아로 인한 지배를 받아 덕분에 과학이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철학적 기준은 언제나 한계에 다다르기 마련이었다. 산업화와 과학의 발달로 인류는 많은 희생을 치루었고 환경적 파괴도 무시할 수 없는 난점이었다. 우리는 이제 ‘어디로 향해’ ‘어떤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가야할지 정해야할 시점에 있는 것이다.

  책은 저자가 4명이서 공동으로 써내려갔다는 점에서 특이점을 가진다. 자칫 한명의 저자가 철학을 말할 때, 저자의 주관이 지나치게 개입되건, 국한적인 시야를 가질 우려가 있는데, 4명의 저자가 공저한 책이니 만큼 그 단점을 이겨냈다 할 수 있겠다. 책을 읽는 동안 불편했던 점은 페이지 수 옆에 적히는 꼬리말에 지금 글이 속해 있는 철학자가 누구인지 각주가 달려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300페이지 남짓한 쪽수가 읽기에 그리 많은 분량은 아니었으나, 내가 가지는 많은 사색을 어느 정도 발전시킬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다. 어느 누구는 내게 그것들이 쓸데없는 고민이라 하였고, 누군가는 내게 현 생활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뜬 구름 잡는 탁상공론이라고도 하였으나 말을 곱씹고 더 많은 생각을 할수록 생각은 정제되어 갔다.

  사유하는 인간은 모두 철학자라는 말이 있으나, 철학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여전히 어렵고 골치 아프다. 좀 더 많은 젊은이들이 철학자들을 동경하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지역주민부 대상] 큰사랑교회도서관 (이영근, 이신승, 김정희 , 류정숙)

  매스컴을 통해 몇 번 보았던 강영우 박사님을 꼭 한번 뵙고 싶었다. 그 이유는 맹인으로서 극복할 수 없는 상황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독후감 대회를 통해서 그분의 책속에서 간접적으로나마 만나고 배울 수 있어서 너무 기쁘고 감격스럽다. 


  강 박사님은 중학교 때 뜻하지 않게 실명하고 희망이 없어졌다. 그러나 그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하여 피츠버그에서 박사학위는 받았고 지금은 UN장애위원회 부의장 겸 루즈벨트 재단고문으로 7억 명의 세계장애인의 복리향상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작은 시련과 역경만 닥쳐도 쉽게 낙심하기 쉬운데 어떻게 절망적 상황을 이기고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까? 강 박사님은 그 도전과 헌신의 힘을 7가지로 요약하여 ‘원동력’에서 소개하고 있다.

  그 첫 번째는 자존감과 자신감이다. 우리의 교육은 지력, 체력, 심력의 심력 중 지력이 치우친 면이 많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심력이다. 심력을 통해 자존감과 자신감을 가지면 공부는 잘 할 수 있게 된다. 박사님의 아들 중 큰 아들 진석이에게 셰익스피어와 생일이 같다는 역할모델로 심력을 주었더니 성적이 크게 향상되었다.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될 때 자존감이 높아진다. 저자도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자존감을 갖게 되었고 꿈을 계속 키울 수 있었다. 특히 친구들과 비교하니 자신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절망했지만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빛을 발견했다. 맹인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생각이 그를 일으켰던 것이다. 저자와는 다르지만 나 자신도 동료목회자와 비교할 때 개척교회가 너무 직고 힘들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때도 많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되심을 깊이 느끼며 다시 일어서서 힘 있게 나아가게 되었다.

 
두 번째 원동력은 선명한 비전과 목표다. 한순가에 맹인 고아가 된 저자는 절망이었으나 자신에게도 하나님의 비전이 있음을 확신하고 인생 30년을 단․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매진하여 꿈을 성취했다. 첫째 아들 진석이는 아빠의 눈을 고치겠다고 선명한 비전으로 안과의사가 되었고 둘째 아들 김영이는 학교 숙제로 인생 로드맵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선명한 목표를 세우고 32세에 백악관에서 일하게 되었다.

  세 번째의 원동력은 바로 긍정적인 마음이다. 저자는 자녀에게 긍정적인 마음을 심어주기 위해 불을 끄고 동화책을 읽어주면서 맹인인 아빠고 정상인보다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심어 주었더니 그것이 긍정적 마음으로 작용하여 진석이는 하버드에 들어갈 수 있었다. 또 맹인인 아빠도 성공할 수 있는 모습을 보면서 자녀들은 더 큰 꿈을 가질 수 있었다.

  네 번째의 원동력은 소통이다. 영어로 Compassion인데 남의 고통이나 고난에 동참하고 공감하는 마음이다. 두 아들은 기독교계 아동센터를 통해서 성경동화를 배우며 고귀한 공감의 가치를 얻게 되었다.

  다섯 번째는 소통의 능력이다. 저자의 소통법은 가치관을 통한 소통을 강조한다. 즉, 가족들이 함께 식사하면서 가치관과 태도가 소통된다고 한다. 특히 발달단계 별 소통의 방법은 이 책에서 제기하고 있다.

  여섯 번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끈기이다. 저자는 시각장애인이 되어 학교도, 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점자를 통해서 5년 늦게 공부할 수 있었고 연세대에서 조차 맹인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지만 지인을 통해서 극복하였고 동아리에 들어 갈 수 없게 되자 스스로 독서 동아리를 만들기도 했고, 유학에도 장애가 결격사유가 되었으나 문교부 청원하여 해결하였다. 끊임없는 도전과 끈기로 그 힘든 과정을 넘어서서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

  일곱 번째는 창의력과 집중력이다. 저자는 맹인으로서 정상인보다 많은 제약이 있었으나 그것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집중력이었다. 또한 저자는 창의적인 생각으로 루즈벨트 장애인상을 제안하고 이어서 한국이 그 장애인 상을 받게 하였다.

  위에서 언급한 7가지 원동력이 오늘의 강영우 박사가 세계에서 한국인의 위상을 높이고 모든 사람에게 할 수 있다는 용기와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는 힘이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7가지 원동력이 원동력이 되게 한 것은 바로 신앙이었다. 창조주가 나는 사랑한다고 믿음이 진정한 원동력이며 7가지 원동력의 원동력임을 말해 준다.

  이 책을 대하면서 진정 어렵고 넘기 힘든 상황이라도 이 책에서 말하는 원동력과 가질 수 있다면 반드시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내가 처한 상황, 교회가 힘들지만 진정한 원동력인 믿음 안에서 다시 한 번 일어서서 끝까지 달려갈 일이 기대가 된다. 끝으로 강영우 박사의 끊임없는 도전과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11.10.18 09:14

학생, 교수, 직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웹진 40호의 [내가 쓰는 독후감]에는 영화로 소개되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공지영의 도가니’와 변하지 않는 고전 '어린왕자'입니다. [박춘화 bom@kmu.ac.kr]


무진, 안개 속에 가려진 광란의 도가니

- 소설 ‘도가니‘를 읽고 -

경찰행정학과 김주희 (독서토론클럽 5기)

  최근 영화가 상영되면서 이슈가 되고 있는 광주인화학교 내의 장애아동성폭행에 관한 실화를 다루고 있는 소설 ‘도가니‘는 이 책을 고르게 된 가장 큰 이유일 지도 모른다.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한 사실과 마주하면서 답답하고 먹먹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 도가니라는 제목의 의미를, 작가의 의도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던 것도 그 중 하나이리라.

  짧게나마 줄거리를 언급하자면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복지시설인 자애학원은 겉으로는 훌륭한 교육과 생활시설로 칭찬과 무진시내의 자랑 중 하나인 학원이다. 그러나 그 속은 한없이 추악하고 더러운 진실들이 도사리고 있다. 학교장과 교사 등 그 관계자들이 장애아동을 상대로 성폭행을 하면서 서로 눈감아주는 일을 일삼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안 교사 강인호와 인권센터 간사인 서유진 그리고 그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이 학생들을 구하고 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노력한다. 이들의 노력으로 언론에 퍼지고 자애학원을 향한 국민들의 비판과 질타가 이어지면서 죄인들은 법정에 서지만 사실상 처벌이라고 할 수없는 판결을 받고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작가는 책속에서 무진과 자애학원을 나타내기 위한 상징적인 요소들을 배치하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로 뒤덮인 무진, 바닷가 절벽위에 선 자애학원과 같은 요소들은 무거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앞으로의 이야기를 암시해주고 있다. 책의 중반부에는 서유진이 이러한 말을 한다. “여기에 일하다 보면 말이야. 그 상식이라는 것이……. 그게……. 없어.”라고. 이 한마디로 무진이라는 한 지역의 세계를 여과 없이 투영해 주고 있다. 사람과 사람, 진실과 거짓 그리고 모든 부패하고 퇴락한 것들을 감추고 있는 안개속의 무진은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한 단면을 그려내고 있는 듯하다. 나이에 맞지 않는 옷과 화장을 하고 유흥업소를 드나드는 10대 청소년들부터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세상과 타협하는 교사와 경찰, 시청과 교육청의 어른들까지.

  그리고 적당한 정의감과 의무감, 책임감을 갖고 있으며 적당한 자기 합리주의와 무거운 진실로 부터의 도피를 원하는 강인호. 책의 24장 속의 강인호의 말은 아직도 마음에 남아있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지. 그런데 어쩔 수가 없잖아. 다들 그러니까.” 자신의 가족을 위해 또는 그 자기 자신을 위해 합리화를 시키며 보여도 보이지 않는 척, 들려도 들리지 않는 척 위안 삼는다. 그의 이러한 모습은 아마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인물일지도 모른다.

  자애학원이라는 고립된 성을 중심으로 권력과 권력 사이의 보이지 않는 실타래들이 연결되어 진실이 세어나가는 것을 차단하고 추악한 사실들을 숨기고 있다. 이 속에는 학연과 혈연, 지연으로 똘똘 뭉친 무진의 기득권층의 책임회피, 진실의 은폐, 거짓과 위선이 판을 치고 있으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법이 오히려 죗값을 치러야 마땅한 자들을 감싸주고 있다.

  명색이 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곳이 그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은 간단한 수화조차 익히지 않고, 청각 장애인들이 각기 다른 청력장애를 앓고 있다는 지식도 없으며 예산지원은 억대로 받으면서 식단은 엉망진창에다가 성폭행 사실을 알면서도 사실을 은폐하려는 경비와 경찰, 교사들과 성폭행이라는 사건보다 책임회피에 급급한 시청과 교육청의 직원들까지. 이러한 사회구조 앞에서는 그 어떤 진실이든 정의든 한낱 먼지에 불과하며 일반 국민들과 사회적 소수자, 약자들은 거대한 구조 속에 힘없는 나약한 구성원으로 비춰질 뿐이다.

 
끝으로 우리는 이를 단순한 하나의 사건 진상파악을 위한 과정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인권과 복지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이 필요할 것이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특별수사팀과 전반적인 장애인 학교에 대한 감사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히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말장난이 되어서는 아니 되며 수박 겉핥기식의 감사가 진행되지 않도록 철저한 계획과 조사가 이루어 져야 할 것이다. 이 뿐 아니라 성폭행 피해자뿐만 아니라 모든 장애인의 복지에 대한 전반적이고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어린왕자

호텔관광학과 안혜운 (독서토론클럽 5기)

  부끄러운 일이지만 20살이 되어서야 나는 어린왕자를 처음 읽었다. 처음 가벼운 마음으로 빠르게 읽었는데 너무나도 흥미롭고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나는 다시 찬찬히 읽어보기로 했다. 정독을 하면서 내가 받은 충격을 꼽으라면 3가지 정도 되는 것 같다.
 
 
첫 번째는 어린왕자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편견과 어리석음으로 가득 찬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슬픔이었다. 화자도 그랬듯이 어린 시절의 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이 이상하고 답답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린왕자라는 책을 만나면서 어린 시절의 나를 생각할 수 있었다. 주인공도 그랬던 것 같다. 더 슬픈 건 현실의 나는 어린왕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내가 독후감을 쓰면서 무슨 옷을 입고 있는지 무슨 생각으로 쓰는지는 궁금해 하지 않는다. 내가 몇 살이고 학점이 몇 점이고 책을 몇 권 읽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어느덧 어른들 세상에 익숙해진 나에게 “왜 검은색 글씨를 썼나요?”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당황해서 답하지 못할 것이다.

 
두 번째로 충격적이었던 것은 어린왕자가 여행 다니면서 만났던 어른들의 모습이었다. 그 중에서는 술 먹는 자신이 부끄러워 그것을 잊기 위해 술을 먹는다는 술꾼이 제일 생각에 남는다. 나는 이 술꾼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슬픈 노랫말과 매우 흡사했다. 내가 만약 술꾼이라면 어린왕자가 좀 더 나를 위로해주고 친구가 되어 주길 바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왕자가 만났던 사람들의 공통적인 문제는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가 며칠 전 KBS에서 하는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자신들의 고민들을 말하는 프로그램이다. ‘하루 종일 커피만 먹는 사람, 너무 급하게 사는 사람 등 많은 사람들이 나오지만 공통적인 것은 자신은 그것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주변사람들이 고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남에게는 냉철하게 지적하지만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관대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엔 어린왕자는 솔직히 소설보다는 동화 즉 사실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과 어린왕자를 비교하면서 더 많은 교훈을 느낄 수 있었다.

 
세 번째 충격은 여우의 말이었다. 여우는 어린왕자에게 ‘길들인다’의 의미와 책임감을 알려주었다. 요즘 한창 사랑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여우의 말을 읽으니 너무나도 많은 공감과 감동을 받았다. 우리는 우리가 길들인(관계를 맺은)것에 대해 쉽게 포기하고 중요성을 모르고 산다. 쉽게 만나고 헤어지고 심지어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옆에 있는 사람의 중요성을 모른다. 나는 사랑에 대한 로망(?)이란 것을 항상 갖고 있다. 하지만 요즘은 내가 아는 사랑은 어린애들이 하는 사랑, 멋도 모르고 하는 사랑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덜 사랑하고 항상 헤어짐을 준비하라는 어른들이 말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하지만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사는 것 같다. 관계를 맺는 다는 것은 책임이 뒤 따른 다는 것을...

 
수많은 장미 중 하나일 수 있지만 관계를 맺음으로 인해 서로가 단 하나의 존재가 된 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이것이 어린왕자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비록 어린왕자가 될 수는 없지만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우리 가슴속에 작은 어린왕자가 살 고 있기 때문 일 것이다. 우리가 서로의 소중함을 알고 살아간다면 지구는 어린왕자가 살고 싶어 하는 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사진출처: DAUM책>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11.09.19 10:46

[내가 쓰는 독후감] 코너는 가을 개편을 통해 새로 생겨난 코너로 학생들의 독후감이나 독후행사 후기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이번 웹진 39호에서는 독서토론클럽에서 나온 독후감과 조선대에서 개최된 제1회 아시아문화축전 참가 후기를 소개합니다.
[박춘화 bom@gw.kmu.ac.kr]

너 자신이 희망이다

- 스무 살, 절대 지지 않기를 -  

행정학과 최송미

 가시밭길을 기쁘게 걸어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모든 사람의 가슴 속에는 현현한 꿈이 있다. 나 역시도 소중한 꿈이 있다. 그러나 나는 꿈을 이루어내기 위해 일상에서 감수해야할 작은 고통들을 자꾸 피하고 마는 나약한 스무 살 이다. 매일의 일상에서 만나는 수많은 도전 과제에 울고 웃고, 맞서 싸우기도 하고 굴복하기도 하며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회의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 안으로 스며들어와 영혼을 짓누르는 날도 있다. 그럴 때엔 조금의 미동도 않은 채 마냥 짓눌려 있기도 한다.

 작가는 자신이 직접 체험해본 결과, 이런 순간이 오면 훌훌 털고 일어나 단 1cm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진실로 열망하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작가 자신의 경험담을 자주 언급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에 구절구절에 진심이 묻어남을 느꼈다. 작가는 본인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반대하는 꿈을 무려 15년간 소중히 지켜왔고, 마침내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다. 그의 인생에서 15년 계속되던 동지(冬至)가 끝이 나고 경칩(驚蟄)이 온 것이다. 남이 무슨 말을 어떻게 하든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있다면 소신에 변화를 주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는 삶의 태도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나 자신에게 꿈을 위해 무엇을 해왔는가 자문해보면 기억나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에 대해 돌이켜보고, 깊이 반성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나는 미풍에도 강풍에도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 같은 삶을 살아왔다. 나라도 나 자신을 소중히 여겨 스스로를 최대한 크고 넓게 만들어줘야 하는데, 나는 나 자신에 대한 기대도 별로 하지 않았고 꿈에서도 꿈이 나올 만큼 목표에 젖어 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렇지만 작가가 나이 스물에 꿈을 정하고 매진하여 오늘에 이르렀듯이 나도 지금 이 순간부터 꿈을 정하고 정진하면 내가 곧 꿈이 되는 순간이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가 자신의 꿈에 대해서만큼은 소리 너머의 소리를 듣고 빛 너머의 빛을 볼 수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으로 그것과 교감할 수 있다. 교감을 할 수 있다면 이룰 수 없는 꿈이란 애초에 없다. 인간이 눈으로 보는 것은 한계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꿈에 눈에 보이는 한계를 적용시켜선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고 보이지 않고의 간극이 크듯이 현실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꿈에 닿기는커녕 더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을 것 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그 노력은 구체적으로 이 추악한 세상에 굴종하거나 절망하는 대신 가슴속을 미친 꿈의 빛으로 채우고 살아가고, 하루에 8시간 자던 내가 4시간 자는 사람으로 변하고, 한 달에 책을 1~2권 읽던 내가 하루에 1~2권 읽는 사람으로 변하고, 혼신의 힘을 기울여서 일한 적이 한 번도 없는 내가 어떤 일이든 최고로 열심히 하지 않으면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은 사람으로 변하고, 그 일이 설령 청소하는 일일지라도 내 모든 열정을 남김없이 쏟아 부을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다. 매일 아득해질 만큼의 정신적 ․ 육체적 고난이 수반되어도 나의 별은 사닥다리를 내려줄 기미조차 보이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절대, 절대 포기하지 않고 별에게 한걸음씩 다가선다면 고통과 기다림이 별에 닿을 만큼 쌓이게 된다면 나의 존재를 알게 된 별이 감동해 사닥다리를 내려줄 것 이다.

 또한 읽으면서 ‘내가 바뀌면 세상이 변한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여러 선생님으로부터 들어본 얘기였는데, 그 당시 어렸고 사고의 폭이 좁았던 나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초․중․고등학교 때에는 부모님이나 선생님께서 해야 할 일을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내가 개척해 나가거나 변화하지 않아도 내 인생은 별탈없이 흘러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스무 살이 되고 대학에 들어와 황홀하고도 공포스러운 자유와 마주하게 되었다. 무한한 자유의 바다에 잠기고 말 것인가 아니면 고통을 참고 잠수해 진주를 캐올 것인가는 개인의 선택이다. 나 스스로가 변화하면 진주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나의 변화는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여향을 미쳐 그들도 같이 변화하게 될 것이다. 변화한 그들은 그들의 친구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전파가 계속 되면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지구 전체가 바뀔 수도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세상을 바꾸는 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라는 작은 개인의 변화가 지구 전체를 감아 돌 수도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했고 좀 더 책임감 있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토론 첫 시간에 우리 3팀을 지도하시는 문성화 교수님께서 “모든 일을 하나의 관점으로만 보지 말고, 전체적 ․ 종합적으로 보려고 노력하라”는 조언을 해주셨는데 그 조언의 의미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꿈, 그리고 꿈, 그리고 또 꿈⋅⋅⋅⋅⋅⋅. ‘꿈’이라는 단어가 정말 많이도 나오는 책이었다. 지은이는 이미 꿈이라는 한 글자가 전 인류의 운명을 쥐락펴락 하고 있음을 간파한 듯하다. 또한 꿈을 이루기 위해 태워진 나는 한 줌의 재가 되어 바람 따라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개인의 역사, 더 나아가 인류의 역사에 밑거름이 될 수 있음도 알고 있었다. 청년들이 사랑의 열병을 앓도록 만드는 꿈에 대해 정통한 지은이가 쓴 이 책을 통해, 싱클레어가 그러하였듯이 지금까지 안일하게 살아온 껍질을 깨고 이전까지의 나라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고, 아프락사스로 날아가는 새가 되어야겠다는 의지를 다시금 불태울 수 있었다.

 지금은 2011년 4월 13일 오후 7시 49분 12초. 내 남은 인생의 첫 순간이 열리고 있다. 남은 인생 중에 꿈이 곧 내가 되는 일이 일어나도록 감상문 다 쑤고 조금 힘들더라도 오늘 목표한 일을 다 해야지! 스무 살, 절대 지지 않기를!




[제1회 아시아문화축전 : 대학생 독서캠프 참가 후기]

사회복지학과 4학년 이요한

주최: 문화관광부
주관: 광주MBC, 조선대학교
기간: 8월 23일 ~ 26일 (3박4일)

<캠프 참여 후기>
- 캠프 참여 2주전 – 계명대 독서토론 팀 OT (캠프 전반적 소개 및 팀원 첫 만남,)

- 캠프 참여 1주전 – 두 번째 만남 (자료조사 역할분담 및 작전회의)

- 세 번째 만남 (모의 토론 및 회의)

- 캠프 참여 당일(23일)
동산도서관 주차장 앞 집결, 출발, 약 13시 45분경 조선대 도착
곧바로 개회식으로 캠프시작. (뭔가 정리되지 않은 어색한 분위기였다) 
학교별 한사람씩 배정되어 팀을 나누고 팀별 모임시간이 주어짐.
  
(팀 리더, 팀명과 팀 구호 선정, 팀별 장기자랑 준비시간 처음엔 어색했으나 
    이내 친해졌고 다양함이 어우러지는 좋은 시간들이었다) 

스피치 특강(박동찬 아나운서) 
   언어, 화법에 대한 강연. 

외국어대 무용팀 
   각국 민속무용 및 유학생공연(각국 대학생들이 선보이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
   지만 
각국 언어 및 문화를 배우는 학생들이 준비한 공연이라 나름 뜻 깊었고 
   재밌었다.

팀별 장기자랑 및 발표 
   다문화에 대해 더욱 생각해 볼 수 있는 재밌고 유익한 시간들이었다.


- 캠프 참여 2일째(24일)
다문화 특강(토론 방식 및 논제 설명)
  
(개인적으로 가장 유익한 시간이었다. 다문화가 이론과 실제 사이에서 큰 gap
    이 있다는 것. 전반적인
개념 및 역사, 흐름, 우리나라의 실정, 특징 등을 한 번
    에 알 수 있을 만큼 명 강의였다. 내가 알고 있었
던 또한 부족한 부분들을 심층
    적으로 알 수 있게 된 시간들이었다 ) 

팀별 입론/논리구성 시간 (팀 순회코칭) 
   
서로 다른 인식의 차이를 통해 다양한 입장차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팀별 발표 및 발표에 대한 반론 제기, 변론
   
더욱 구체적인 다양한 견해들을 생각, 경험해 볼 수 있었다.
독서골든벨 (주제: 다문화) 
   좋은 성적이 아니라서 조금은 부끄러웠지만 독서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
을 
   체득할 수 있어 좋은 경험이었다. 우리학교 여학생이 최후 1인자로 선정되어 
   기분 좋았다.

- 캠프 참여 3일째(25일)
광주 민주화운동 유적지 견학 및 참배 (광주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었다. 숙연
   해지는 시간)
광주 시립 미술관, 아시아문화 창작물 관람, 아시아문화전당 일대 관람
독서모의토론 예선(비공개) / 아시아 문화 영화 관람
그동안 준비했던 자료들과 의견을 종합 찬반토론 진행. 약간은 편파적인 모습
   의 진행
패했지만 성장할 수 있는 계기, 시간들이었다.

- 캠프 참여 4일째(26일, 마지막 날)
독서모의토론 결선 ( 숭실대 vs 조선대/ 숭실대 승 )
아는 것이, 지식이 힘이라는 말을 실감한 시간들.
  
‘독서, 지식을 많이 쌓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깨달아야 겠 
    다‘라는 생각을 했었고, 그럴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캠프 폐회식 (3박4일의 아쉬운 시간들을 뒤로하고 마무리 하는 시간들)
전남대학교 이동
아시아 문화축전 전체적 발표 및 시상
  
(아시아 학생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또 그 문화 전통춤을 관람할 수 있는 다문
    화의 시간들)
학교로 복귀

- 종합적 의견 및 소감
가장 좋았던 것: 다문화 특강, 팀별 토론발표 및 토론, 독서모의토론
대학생으로써, 평생 경험하기 힘든 전국규모 학생들이 함께하는 좋은 경험들
   을 참여 할 수 있었던 자체만으로도 좋았고, 특별히 각 대학 외국인 학생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시간들이 탁상공론의 다문화가 아니라 지성인으로써 존중과
   어울림으로 자연스레 함께 가는 길을 모색하는 시간들을 경험했던 것 같아 즐
   겁고 유익했다.

   
자체적으로의 큰 행사는 첫 회였고 재정지원 등이 부족한 상황에서 시작된 축
   제라 그런지 진행 등에서 서툴고 비효율적인 모습들이 간혹 보였지만, 깨끗한
   시설에 시원시원한 진행은 좋았던 것 같다. 전국 각 대학 학생들이 살갗을 부딪
   치면서 다문화라는 논점을 가지고 생각하고 나누고 함께하여서 좋았다. 개인
   적으론 인맥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유익이었다. 비록 주요하게 준비하
   였던 독서토론에서는 성과를 얻지 못해서 또한 팀에 큰 도움이 되어주지 못해
   미안했지만, 어디에나 어떤 상황이든 배울 점이 있는 것.

    최선을 다해 준비했었고 포기하지 않았기에 아쉬움은 남지만 후회는 없을 듯
   하다.
무언가 이뤄야지만 좋은 것이 아니기에, 이번 계기로 개인적으로나 독서
   팀 자체적으로나 성숙의 계기가 되었으리라, 다들 우리학교 팀원들도 그것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끝으로 내 젊은 날의 한 페이지에 오래도록 기억될 좋은 추억이었고 이 계기를마련해 준 학교 측에 감사드린다. ^^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prev"" #1 next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