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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38호(9월)

[독계비] 김태형의「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를 읽고

   [讀.啓.肥(독.계.비)]는  ‘독서로 계명을 살찌우자’라는 목표로 릴레이 독서 추천 형식으로 꾸며가는 코너입니다. 책을 읽고 그에 대한 소감과 함께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해 주고, 그 사람은 추천받은 책을 읽고 난 후 또 다른 책을 본인이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김상아(경영학전공)에게서  「디지털 미니멀리즘 천받은 정유라(사회학과)양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 김지혜(기독교학과)양에게 추천합니다.

 

  나를 단단히 받쳐 주는 양질의 자존감은 나만 잘해서 될 일인가? 아마 작가가 던지는 문제의식은 이 질문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최근 한때 인간의 심리를 보듬는 수많은 심리학 저서가 심심찮게 보였다. <자존감 수업>, <미움받을 용기> 등의 저서가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차지하고 있었으며, 어딜 가든 추천 도서로 놓여 있었다. 이러한 현상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현대인들은 외부 요소에 의한 스트레스에 고통을 받고 있기에, 이에 휩쓸리지 않고 내가 나일 수 있게 균형을 잡아 주는 자존감 향상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학자마다 자존감이라는 단어에 각기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가 부여하는 자존감의 의미는 자신의 가치에 대한 평가에 기초하여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이다. 현재 자존감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가치에 대한 평가 기준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 말한다. 주로 사람들은 외모, 학벌, 경제적 능력, 직업 등을 가치 기준으로 삼는다. 이러한 기준은 사회로부터 주입 당한 잘못된 기준이라 주장한다. 거기다 이것이 잘못된 기준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자본주의가 본격화되고 IMF로 인해 국가 위기 상황을 맞으면서 공동체가 붕괴되었다. 이후 각자도생, 개인주의 등 나부터 살자든지, 나만 잘하자는 형식의 풍조가 만연했다. 공동체가 무너진 자리의 허함을 채운 것은 자존감이었다. 자존감은 대인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높은 자존감은 타인과 관계 맺기를 수월하게 해 주며, 그 과정에서 타인이 자신을 무시하더라도 무너지지 않게 잡아 준다. 하지만 낮은 자존감은 타인과의 관계 맺기를 방해하고, 오로지 자신을 드러낼 수 없게 한다. 심지어는 시기 질투로 인해 타인을 모함하게 만들기도 한다. 주목해야 할 점은 단순히 자존감이 대인 관계에 영향을 주는 일방적인 모형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는 쌍방적인 모델이라는 점이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자존감이 형성될 시기인 성장기에 타자와의 교감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제대로 된 자존감이 형성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세대 갈등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청년들은 노인을 이해하지 못하고, 노인은 청년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서로에 대한 존중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존중은 호혜적이다. 관계 맺기 참여당사자 중 한 명이 존중을 퍼붓는다고 올바른 관계 맺기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청년은 윗세대로부터 존중받는 법을 배운 적 없기에 상대에게 돌려주는 법도 모른다. 청년-노인 관계뿐만이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지를 받아 본 적 없는 아이들이 자라 지금의 청년들이 되었다. 사랑과 존중을 받아 본 적 없는 이들에게 타인에 대한 배려를 베풀라고 하는 것은 어찌 보면 그러한 태도가 필요하느냐 아니냐를 떠나서 과도한 요구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인간 그 자체의 본성이 사회성을 타고 태어난다는 뜻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살아가면서 사회성을 배운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서로를 존중하지 못하고, 서로의 자존감을 해하는 이 모습을 설명하기 위해선 왜 우리 사회에선 윗세대와 아랫세대는 서로 교감하지 못하게 되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답으로 저자는 사회의 경쟁적인 분위기를 꼽는다. 아이들은 무조건적인 애정을 받을 시기에 입시 경쟁에 던져지고, 그 결과 잘못된 가치 판단 기준을 갖게 되고 보상 심리로 사회적 소수자를 혐오하게 되는 것이다. 즉 작가는 사회의 많은 갈등과 낮은 자존감은 존중을 배울 수 없게 만드는 사회구조로부터 기인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은 것이다.

  성장기에는 사랑받기가 중요하다. 사랑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사랑을 받으며 자라나야 한다. 성인이 되어서는 사랑하기가 중요하다. 지금껏 자라며 쌓아온 경험, 사색, 공부를 통해 사랑하는 능력이 발달되어 있기에 사랑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어릴 때의 사랑받기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여 성인이 되어서도 사랑을 전달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서 사회가 소명된다. 한 성인으로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떠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그들을 하나의 존엄한 인격체로 대한다면 그들의 자존감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그 어떠한 책임도 이유도 묻지 않고 그들의 권리를 지킴으로서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사회를 통하여 채우는 것이다. ‘만인이 만인을 혐오하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의 연대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연대를 통해서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다 

  작가는 한 인간의 자존감 확립에는 타인과 소속감을 느끼게 해 주는 사회 집단이 필요하다고, “자존감이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비현실적이고 비과학적인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강하게 말한다. 그리고 현 시대의 무너진 사회적 교감에 대해 생각해 본다. 더군다나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격상됨에 따라 사람들과의 대면 접촉 및 타자와의 관계 맺기가 드물어진 지금이다. 무지막지하게 불어나는 확산세를 막기 위해선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를 물리적 거리 두기라 명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두되, 정서적 교감과 사랑은 이어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누군가와 결국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다. 더군다나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집단에게는 사회적 거리를 멀리 두어서는 안 된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는 분명히 다를 것이라고 하였다. 작고 소소한 생활 습관부터 세계적으로 커다란 흐름인 경제 위기 상황까지도 포함한 말일 것이다.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사는 사람들에게 지금은 회피하고 싶은 현실이다. 일용직 노동자, 자영업자, 비정규직 등 앞으로의 고용과 수입이 불안정한 사람들이 있다. 해외는 한국보다 더 강경한 방역 정책인 락 다운으로 경제가 토막이 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한국이 안전한 것은 아니다. 기존의 청년 취업난에 이러한 상황까지 겹쳐져서 절대 좋다고 말할 수 없다. 각자의 나름대로 고충을 안고 불안하게 하루를 산다. 작가가 말하는 연대를 현 코로나 사태의 정책과 연결하여 고민해 보면, 재난지원금은 사회 모두가 협력하여 개인들의 경제적 상황에 보탬이 됨으로써 그들에게 지지를 보내는 일이다. 사회가 무조건적으로 사회 구성원을 인간답게 살 수 있게 살 기회를 주는 것이다.

  모두가 불안정한 위기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따라 공동체의 결속력은 달라질 것이다. 이제는 연대를 생각해 봐야 할 때이다. 힘든 시기임은 분명하나 공동체의 안녕을 도모하기 위해선 잘 서 있는 개개인들이 필요하고, 이런 모습을 만들기 위해선 연대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함께 살아나가려는 사회를 보여 주는 일은 지금의 위기 상황뿐만 아니라 코로나 이후 각자의 삶을 추스르고 일어나는 일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연대는 사람들의 자존감 회복에 도움을 주고, 자존감은 한 사람을 일으키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각박한 현실이니, 정이 없는 현대니, 사랑이 부족한 사회이니 하는 말을 부정하기 힘들다. 이미 많은 부분에 있어 우리는 서로의 신뢰를 잃었다. 그러나 이 위기 상황을 역으로 이용하여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다르게 그려낼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출처: 책표지-교보문고, 네이버, 사진-정유라

<편집위원: 박경희, 학술정보서비스팀 제1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