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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5호(1월)

[독계비] 원더 보이

[讀.啓.肥(독.계.비)]는 ‘독서로 계명을 살찌우자’라는 목표로 릴레이 독서 추천 형식으로 꾸며가는 코너입니다. 책을 읽고 그에 대한 소감과 함께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해 주고, 그 사람은 추천받은 책을 읽고 난 후 또 다른 책을 본인이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장우혁군에게서 「러브 레플리카천받은  김민지(행정학전공 2)양이  「원더 보이를 황지영(전자공학전공 3)양에게 추천합니다.

 

  성장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개념에 대한 질문이 아니다. 이는 익숙함으로 인해 무뎌지는 감각 속에서 오는 일종의 무감각일 수도 있고, 때로는 어떤 사물이나 인물에 대해 느끼는 감정의 변화도 성장의 일종일 것이다. 혹은 문득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의외의 점을 발견해내는 나 자신이거나 무언가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거나. 예를 들어 생택쥐페리의어린왕자는 독자의 나이 대에 따라 깨닫는 점이 다르다고들 한다. 같은 독자더라도 생각과 감정의 성숙도에 따라 받아들이는 정도와 보는 정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린왕자 또한 성장소설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같은 맥락으로, 김연수 작가의 책 원더 보이를 나는 총 네 번 읽었다. 중학생 때 두 번, 대학입시가 끝난 직후 한 번, 그리고 대학에 들어와서 한 번. 육체와 감성의 성장 시기 때 마다 나는 꾸준히 이 책을 꼭 읽어왔다. 만일 성장의 대명사를 어린왕자라 한다면, 원더 보이는 나의 어린왕자였다. 

  아버지와 단 둘이 살아가던 소년이 하루아침에 고아가 될 확률은 어느 정도인가? 아버지와 함께 타고 있던 트럭이 사람을 칠 확률은? 그 사람이 북한에서 내려온 무장간첩이며, 기적적으로 살아난고아가 된소년이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국내에서 기적의 대명사, 희대의 원더 보이 타이틀을 얻고 TV쇼에 출연할 확률. 그리고 소년에게는 초능력이 생겼을 확률. 간단한 나열만으로도 이게 뭐냐싶을 것이다. 당장의 우리도 받아들이기 힘든 것들이었다. 하나 이 모든 것은 열다섯 살 소년 김 정훈의 현실이었다. 원더 보이는 김정훈의 성장을 다룬 이야기였다. 그런 와중에 사고를 계기로 정훈은 초능력을 얻게 된다. 사람의 속마음이 들리게 되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어 감정을 공유하게 되는 것. 말 그대로 이것은 공유였다. TV쇼에 출연한 원더 보이가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면 쇼의 MC를 비롯한 TV를 보던 전 국민들도 울었다. 반대로 누군가가 슬픈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정훈은 상대의 속마음을 읽음과 동시에 눈물 한 방울을 흘렸다. 트럭 충돌 사고에서 정훈을 구출한 권 대령은 정훈이를 비롯한 특별한 능력을 가진 청소년들을 훈련시켰다. 재능이나 능력을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비덕한 일에 쓰기 위함이었다. 정훈은 그렇게 시설에서 탈출하고, 밖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아버지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꿈속에서 아버지를 찾고, 텔레파시로 타인의 감정을 공유하게 되며 진정한 원더 보이라는 칭호를 얻었지만 정훈의 마음은 미처 원더보이로 성장하지 못했다. 열다섯 살부터 열일곱 살까지, 자신조차 아직 이해하기 힘든 청소년에게 상대방의 생각, 그리고 그러한 고통들을 온전히 이해하라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이 비덕한 일에 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정훈은 어떤 감정이었을까. 책 속에는 이러한 구절이 있었다.

 

아빠가 살았던 42년은 너무나 짧은 시간이죠. 별들의 숫자에 비하면 그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상상해보세요. 그 빛들을 나눠서 쪼일 수 있었다면 아빠는 평생 매 초당 7549950472325개의 별빛을 받으면서 살았던 것이에요. 그렇다면 그건 정말 대단한 1초였을 거예요.

                                                                   -김연수 원더 보이p41 中-

 

  넓은 우주 아래 그 많은 별들 아래. 아버지가 견뎌내고 빛을 받았던, 그 무게를 지탱하며 정훈은 점차 자신에 대해 이해하고 성장해간다. ‘아빠의 인생의 1초가 그렇게 많은 빛으로 가득했다는 걸 알았더라면 아빠는 그러지 않았을 텐데하고 열다섯 살의 정훈은 우주의 별들을 떠올렸다. 그러다 열일곱 살이 될 무렵, 가슴 시린 짝사랑도 하고 2차 성징을 몸소 겪기도 하며 사춘기를 보내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우주의 별들을 떠올리며 정훈은 이리도 많은 별들이 있는데 우리들의 밤은 왜 이다지도 어두울까하고 다시 질문을 던진다. 별들에 대한 정훈의 감상은 2년 사이 부쩍 달라졌다. 거의 책의 가장 첫 부분과 끝부분에 나와 있는 별에 대한 이야기는 정훈의 성장을 정확하게 짚어내었다. 서술하는 정훈의 말투에서부터 퍽 어른스러움이 묻어나온다. 1을 지구의 인구 수 만큼 나눈다면 소수점 아래로 수많은 0들이 계속해서 나오니 란 존재는 결국 한 사람의 몫조차 되지 않는다며, 아버지도 어머니도 곁에 없는 자신은 한 사람의 형태조차 이룰 수 없노라 말한다. 하지만 초등학교 선생님의 덧니 이야기를 하며 정훈은 희망을 제시하였다. 세상의 그 수많은 덧니 중에서 자신이 좋아했던 덧니는 오직 선생님의 덧니 하나뿐이었다고. 그러니 자신도 그렇게 하나의 몫을 해내었다고. 소년은 그 수많은 별들의 무게를 견뎌내었다.  

  초능력은 판타지적인 요소이다. 비현실적인 것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순수함이고, 이는 사춘기 이전, 즉 성장 직전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적절하다. 실제로 페이지가 한 장 한 장 넘어갈 때 마다 정훈이 타인의 마음을 읽는 것에 대한 서술이 현저히 줄어들다 어느새 사라져있었다. 마치 키를 재기 위해 벽에 그어놓은 선들을 보고는 내가 언제 이렇게나 컸지하는 것처럼, 문득 정훈은 그렇게 자라버렸다. ‘기적의 원더 보이는 더 이상 타인의 감정을 공유할 수 없게 되었다. 평범한 열일곱 살의 김 정훈이 되어버린 것이다’, 라고 다시 만난 권 대령은 그렇게 말했다. 정말 그럴까? 

  TV쇼의 MC는 정훈의 이야기로 인해 눈물을 흘릴 때(정훈의 초능력으로 감정을 공유하게 되었을 때) ‘왜 갑자기 눈물이 나지?’하고 말했다. 이유를 알지 못하고 강제적으로 짊어지게 되는 감정에는 그 어떤 추억도 있을 수가 없다. 단순히 질문만이 남거나, 어느 순간 잊혀 버리게 될 것이다. 정훈은 더 이상 공유는 불가능할지 몰라도 이해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살아간다.

 

출처: 책표지-교보문고, 사진-김민지, 작가-김연수

<편집위원: 박경희, 학술정보서비스팀 제2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