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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4호(12월)

[독계비] 러브 레플리카

[讀.啓.肥(독.계.비)]는 ‘독서로 계명을 살찌우자’라는 목표로 릴레이 독서 추천 형식으로 꾸며가는 코너입니다. 책을 읽고 그에 대한 소감과 함께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해 주고, 그 사람은 추천받은 책을 읽고 난 후 또 다른 책을 본인이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박수빈양에게서 「정본 백색 시집천받은  장우혁(신소재공학과 3)군「러브 레플리카를 김민지(행정학전공 2)양에게 추천합니다.

 

  이번에 소개할 책은 2016년 겨울 언젠가 기차에서 읽었던 윤이형 작가의 소설 러브 레플리카이다. 책을 책장에서 다시금 꺼내볼 기회가 없었는데, 우연히 카카오 프렌즈샵에서 이 책을 떠올리게 되었다. 가게에서 만난 캐릭터 중에서 단무지이지만 토끼 옷을 입고 있는 무지와 함께 있는 작고 초록색의 캐릭터 콘. 뭔가 낯설지 않은 이름,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다. 콘은 이름과 그 작은 외견만으로 책속의 단편소설 쿤의 여행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실제 소설에 등장하는 쿤은 기생하는 본체를 대신해 생활전면에 나서는걸 보면, 항상 무지 곁에 있는 현실의 콘과는 거리감이 있기는 하다. 

  소설에서 나오는 쿤은 우무처럼 물컹거리고, 곤약처럼 미끄러운 살아있는 작은 회백색 덩어리이다. 그런 쿤은 이내 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대상의 의지에 의해 붙잡혀 대상의 자랄 모습으로 자라는 대상의 도피처이자 가면 같은 것, 대상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고, 대상의 역사를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주인공은 쿤을 붙잡아 어디에도 가지 못하게 두 팔로 끌어안아, 그렇게 한 몸이 된다. 주인공이 쿤에게 의지하는 이유는 아버지를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집 밖에서는 멘토, 선생님으로 칭송받으며 전국을 떠돌며 강연을 하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집 안에서는 아내와 아이를 때리는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아버지 역시 쿤을 가지고 있었고, 그 쿤 역시 아버지가 자랄 모습으로 자랐다. 결국 아버지 역시 무언가를 견딜 수 없어 끝없이 쿤을 찾아다니는 어린아이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소설의 초장은 주인공이 쿤을 떼어내면서 시작하게 된다. 전술한 듯 아버지에게서 떠나 가정을 꾸리고 꽤 안정적인 삶을 되찾아, 쿤을 떼어내고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기를 원한다. 쿤을 떼어낸 주인공은 자신의 9살짜리 아이와 언니-동생 사이로 보일만큼 어려진 모습을 하고 있다. 막상 수술로 쿤을 떼어냈지만, 달라진 시선만큼 어디서부터 세상을 마주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우선 자신이 가진 세계를 추슬러 본다. 그 후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다시 쿤을 대처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만, 성장해가며 자신이 해야 할 일들,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깨닫는다. 자신의 쿤이 이제껏 기자로서의 업무를 해왔다면 이제야 진정 본인이 원하는 일을 찾게 된다.

   이처럼 소설은 성장소설 같은 면모를 가지고 있어, 우리에게로 하여금 쿤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다. 쿤을 떼어내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 이를 실현하는 것, 또는 나를 사랑하는 것. 그러고 보면 제목도 love replica(그림이나 조각 등에서 원작자가 손수 만든 사본)이다. 이처럼 추운 겨울날 더 건강한 사람이 되어 좀 더 건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바라본다.

 

출처: 책표지-교보문고, 사진-장우혁

<편집위원: 박경희, 학술정보서비스팀 제2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