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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53호(6월)

[독계비] 저자 : 안톤 체호프「단순함에 깃든 복잡성과 양가성」을 읽고

[讀.啓.肥(독. 계. 비)]는  ‘독서로 계명을 살찌우자’라는 목표로 릴레이 독서 추천 형식으로 꾸며가는 코너입니다. 책을 읽고 그에 대한 소감과 함께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해 주고, 그 사람은 추천받은 책을 읽고 난 후 또 다른 책을 본인이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단순함에 깃든 복잡성과 양가성」을 추천받은 김혜인(문예창작학과)양이 김세람(행정학과)양에게 추천합니다. 

“당신은 인생이 뭐냐고 물었지만, 그것은 당근이 뭐냐고 묻는 것과 같아. 당근이 당근이듯 그 이상은 모르오.” 
- 1904년 4월 20일 안톤 체호프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 中 

  위 편지 속 한 구절은 안톤 체호프의 작품 단면을 보여준다. 그는 수많은 작품을 썼지만 작품 속에서 본인의 색을 선연히 드러낸다거나 화려한 소설적 장치를 이용해 독자를 현혹시키지 않는다. 삶을 삶이라고 보여주는 작가. 그는 거창한 주제의식이나 사건을 들먹이지 않는다. 안톤 체호프를 두고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발렌틴 카타예프는 그의 문학을 ‘단순함에 깃든 복잡성’에 따른 양가적 특성을 지닌다고 평가하였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그에 대한 접근방법이나 평가는 시대에 따라, 사회적 상황에 따라, 개인에 따라 변화한다. 

   『골짜기』는 가문의 권력 교체와 선과 악의 만남을 보여주고 있다. 주요 인물은 치부킨이라고 불리는 집 주인 그리고리와 그의 부인 바르바라, 아니심(그리고리의 첫째 아들), 아니심의 부인인 리파, 아크시니야(그리고리 둘째 아들의 며느리) 정도로 꼽을 수 있다.  가족이 전부였던 치부킨은 첫째 아들 아니심이 가짜 은화 주조 혐의로 감옥에 가자 점차 모든 것에 대한 희망을 잃게 되고 그에게 남은 희망이라고는 리파의 아들인 니키폴르 정도 뿐이었는데, 그마저도 아크시니야에게 죽임을 당하자 치부킨 영감은 모든 미련을 잃은 것처럼 변해버린다. 그러한 권력자의 부재에 아크시니야는 서서히 본인의 자리를 넓혀나가고 3년이 흐른 뒤엔 가문의 실질 권력자가 아크시니야로 바뀌게 된다. 

   이 작품에서는 리파와 바르바라가 지나치게 수동적인 듯한 느낌을 준다. 결말 근처에서 치부킨 영감이 본인의 벽돌 공장이 있는 땅을 리파의 아들인 니키폴르에게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크시니야가 니키폴르에게 뜨거운 국물을 부워 결국 그를 사망하게 만들지만 리파는 그저 울 뿐 아크시니야에게 보복하지 않는다. 아크시니야에게 집에서 나가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도 수용할 뿐이다. 바르바라 역시 치부킨 영감이 실권을 놓게 되고 아크시니야가 집의 실권을 쥐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소설 전반에서 당하기만 할 뿐 싸우려 들거나 훗날의 복수를 도모하지 않는 특이한 인물들이다.

  작품을 읽으며 이들이 어째서 수동적인지에 관한 의문이 계속해서 들었다. 이 소설에서는 악의 반열에 선 치부킨과 아크시니야가 줄곧 분주하다. 그들은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또는 더 큰 부와 권력을 쥐기 위해 노력한다. 아크시니야가 결국 집안의 실권을 쥘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리파와 바르바라는 가진 게 많이 없는데도 베풀며, 억울한 일에 대해 저항하지 않는다. 때문에 소설을 전부 읽었을 때는 리파와 바르바라에게 결국 누가 집안의 권력자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표면적으로 실권자가 바뀌기는 했지만 리파와 바르바라의 인생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치부킨과 아크시니야가 과연 행복할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실권자, 즉 이 소설의 악은 승리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 ‘승리’를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크시니야는 벽돌 공장 사업을 하며 집안의 권력까지 틀어쥐어 결말부에서 누구보다 번성한 인물로 그려지지만 그 행위들이 평온해 보이지는 않는다. 치부킨의 말로를 보면 곧 아크시니야의 말로(末路)를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불안과 치열함 속에 계속해서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리파는 치부킨 집안에서 쫓겨나자 오히려 평온을 느낀다. 때문에 결말부의 리파 모녀는 소설 속 어떤 장면보다 평화로워 보인다.

  “그들의 맨 앞에서 리파가 저녁 하늘을 우러러보며 가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하루해가 무사히 끝나고 휴식의 시간이 온 것을 축하하는 듯한 노랫소리였다. 그들 중에는 그녀의 어머니인 플라스코바도 있었다. 플라스코바는 한 손에 자그마한 보따리를 들고 여전히 숨을 헐떡이며 걷고 있었다.” - 안톤 체호프 단편선 166P.

  세상은 대개 악이 승리하는 구조이다. 그러나 『골짜기』를 읽어본다면 악의 승리가 진정한 ‘승리’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악의 권력은 계속해서 변화할 것이고 악에 의해 선은 수동적인 자세를 가질 것이다. 그러나 작품 속 리파와 바르바라를 보고 우리는 그들이 진정으로 패배하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골짜기』의 인물들은 비참한 결과와 악행의 허무를 보여주지만 그 누구도 승리의 기쁨을 가지진 못한다. 이처럼 안톤 체호프의 『골짜기』는 권력의 교체라는 단순한 이야기에서 생각지 못했던 복잡성과 악과 선에 관한 양가적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출처: 책 표지-교보문고, 사진-김혜인

편집위원: 김재훈(학술정보지원팀)

출처: https://dslib.tistory.com/999 [동산도서관 웹진:티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