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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추천도서

<이달의 추천도서>

 

"만주족의 청제국"

김 선 민(중국학과 교수)

 

인류사에서 만주족만큼 큰 역사적 위업을 이룩한 예는 드물다. 만주족은 16세기 말에 발흥하여 불과 수십년만에 국가체제를 완비하고 명을 정복했다. 이후 청은 정복사업을 지속하여 강역을 명의 두배 이상으로 확장시켰으며, 1911년까지 동아시아를 지배했다. 한족과 비교하여 350대 1로 소수였던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지배한 사실은 흔히 “기적”이라고 칭해진다. 청은 당시의 중국인 명을 정복했을 뿐 아니라 몽골과 티벳 그리고 오늘날 신강이라고 불리는 동투르키스탄을 정복했고 이 다양한 문화를 지닌 광대한 지역을 통치하기 위해 여러 통치기술을 개발했다.

청이 획득한 강역과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창안한 통치기술 및 이념은 현대 중국으로 계승되었다. 현재 중국의 강역은 청이 물려준 지리적 유산이며, 신강과 티벳의 독립운동으로 인한 마찰과 주변국가와의 국경선을 둘러싼 갈등은 그 유산의 어두운 일면이다. 또한 중국이 자국 내 민족간의 관계에 대한 원칙으로 표방하고 있는 “민족대가정(民族大家庭)의 민족대단결(民族大團結)”이란 구호는 청대의 “만한일가(滿漢一家)” 개념의 확대판이다.

 

이러한 성취와 유산에도 불구하고 만주족은 역사에서 평가절하되어 왔다. 종래에 역사가들은 청 초기, 즉 입관을 전후한 짧은 시기를 다룰 때에만 만주족을 청의 주체로 부각시키고, 청 초기 이후로는 만주족이 지배민족이라는 사실을 청사의 중요한 요소로 고려하지 않았다. 이는 청 중기부터 만주족이 자신의 문화와 언어를 상실하고 한족 속에 융해되었기 때문에 청대 정치의 주체가 만주족이라는 점이 청사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이른바 “중국중심적 시각”때문이었다. 이 책의 저자인 마크 엘리엇은 이런 “중국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만주족이 청말까지도 자민족의 민족성과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다수의 피지배민족에 대한 소수 지배민족의 통치를 견지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저자는 만주족이 한화되었다거나 혹은 만주족의 중국 지배가 만주족이 한화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종래의 주장을 반박한다. 그리고 만주족이 자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중국보다 내륙아시아의 전통에 영향을 받았고 그것을 통치에 지속적으로 활용했다는 이른바 “내륙아시아적 시각”을 주장의 바탕에 두고 있다.

 

청조를 내륙아시아적 시각에서 조명하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한 만주족의 왕조로서 재조명하려는 입장은 비단 마크 엘리엇만의 것은 아니다. 이런 시각에 기반한 연구 경향은 1990년대 말부터 구미 학계를 중심으로 발생하여 현재 신청사(新淸史, New Qing History)라고 불리는 학문적 영역을 구성했으며, 에벌린 로스키(Evelyn S. Rawski), 파멜라 크로슬리(Pamela Kyle Crossley), 웨일리-코헨(Waley-Cohen), 제임스 밀워드(James A. Millward), 필립 포레(Philippe Fôret), 조나단 헤이(Jonathan Hay) 등이 마크 엘리엇과 함께 신청사 학파에 포함된다. 이 학자들의 연구 덕에 청사 연구에서 종래에 간과된 만주족의 정체성 문제와 내륙아시아적 전통의 문제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이러한 시각의 전환과 함께 신청사 학파의 또 다른 중요한 공헌이자 특징은 만문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한문자료에서는 얻을 수 없는 정보를 찾아내 청대사 연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점이다. 구미학계에서 만주어 연구와 만주족 연구를 모두 포함하는 이른바 “만주학”은 그 기원이 17세기 유럽인 예수회 선교사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그 후 오랫동안 연구자의 일부만이 청대사 연구에서 만주어와 만문자료가 가지는 중요성에 착목해왔고, 만주어 학습은 흔히 부차적인 것으로서 한문 고문, 일본어, 독일어, 프랑스어 뒤를 잇는 하나의 연구 도구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신청사 학파는 만주어에 대한 지식, 혹은 몽골어, 티베트어 등에 대한 지식이 단순히 청초 연구자들이나 변경사 연구자들만의 영역이 아니라 청조의 지배, 혹은 중국사 전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 줄 수 있음을 강조한다. 마크 엘리엇은 신청사 학파 연구자 가운데에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만주어와 만문 자료를 연구에 활용하고 있으며, 그 성과가 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마크 엘리엇은 이 책에서 만주족이 정체성을 유지하고 소수의 지배민족으로 다수의 피지배 민족을 통치할 수 있었던 기제를 팔기에서 찾는다. 팔기제는 무술연마와 근면강직을 강조하는 만주족의 전통을 중심으로 기인들을 하나의 민족집단으로 결집시키는 기능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엘리엇의 이러한 관점은 학계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혹자는 민족성이라는 개념이 청말 이전의 상황에서 사용되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즉 엘리엇의 주장처럼 만주족의 문화가 청초부터 일관되게 지속적으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청조는 만주족의 정체성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정복과 통제의 필요에 맞게 사용해왔다는 것이다. 혹자는 마크 엘리엇이 팔기를 민족과 동일시하는 주장에 대해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즉 팔기에는 만주팔기, 몽고팔기, 한군팔기가 있는데 팔기에 속한 이 민족들이 모두 만주족과 동일시되었다는 주장은 과도하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청조의 특질이 만주족의 민족성과 정체성의 유지에 있는 것인지, 혹은 만주족ㆍ몽골족ㆍ한족ㆍ티벳족ㆍ위구르족을 모두 아우르는 보편군주적 황제권에 있는 것인지는 아직도 논쟁중이다. 그리고 만주족, 한족, 몽골족으로 구성된 팔기를 엘리엇의 주장처럼 만주족과 등치시킬 수 있는지 의구심은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신청사 학파의 청대 민족성 문제에 대한 관심은 청사와 만주족과 대 변경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마크 엘리엇은 그 가운데에서도 민족성의 문제를 정면에서 가장 첨예하게 다루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구성은 서론, 본론 8장, 결론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론에서는 만주족의 역사가 중요한 이유와 그 역사를 해석하는 데서 발생하는 몇가지 문제를 설명한다. 본론은 3부로 나뉜다. Ⅰ부의 3개 장은 팔기제의 기원과 정치적 민족적 구조의 성장을 묘사한다. Ⅱ부도 3개 장으로 구성된다. Ⅱ부에서는 팔기에 소속됨으로써 그들의 생활방식이 한인과 달라지고 그래서 결국 만주족이 기인旗人으로 변화하였음을 다양한 방면에서 상세히 고찰한다. Ⅲ부의 2개 장은 만주족의 정체성과 제도가 1720년대 옹정 연간에 동시에 변화되는 모습을 논하고, 옹정과 건륭 연간 만주족의 문화와 사회사에 대해 핵심적인 면을 고찰한다. 결론에서는 본론을 요약하여 만주족이 자민족 고유의 언어와 관습을 대부분 잃어가는 상황에서도 만주족의 민족적 정체성은 팔기제의 존속에 힘입어 시종일관 유지되었음을 주장한다.

 

만주족 혹은 그 전의 여진족은 우리 민족과 장구한 세월을 접경하여 살아 왔고 때론 갈등하고 때론 혼융하여 왔다. 어찌보면 한민족과 가장 가까운 민족이 만주족이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만주족이나 청사에 대한 연구가 다른 연구권만큼 활발하지 못함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 번역서의 출간으로 한국에서 만주족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만주족과 청대사 연구에 일조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마크 엘리엇 저, 이훈ㆍ김선민 역, 만주족의 청제국, 서울 :푸른역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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