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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63호(10월)

[고문헌 산책] 김부필의 장서인

“퇴계 이황의 문인, 후조당 김부필의 장서인”  

 

옛날 책, 고서를 보면, 자신의 소유임을 표시하기 위하여 도장이 찍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도장을 ‘장서에 찍는 도장’이라고 하여 ‘장서인(藏書印)’이라고 부른다.
이번에 소개하는 도장은 김부필(金富弼, 1516~1577) 이 사용한 것이다.
김부필의 도장은 『학부통변』에 3개가 찍혀 있다. 
바로 後彫堂(후조당), 光城金氏(광성김씨), 富弼彦遇(부필언우). 

後彫堂(후조당) 光城金氏(광성김씨) 富弼彦遇(부필언우)

‘후조당’은 김부필의 호(號)이고,
‘광성김씨’는 자신의 본관인 ‘광성(광산)’과 성씨인 ‘김씨’를 말한다. 
‘부필언우’는 자신의 이름인 ‘부필’과 
남자가 성인이 되었을 때 붙이는 이름인 자(字)를 합한 것이다.

김부필은 예안(안동) 사람이다.
할아버지 김효로(1454~1534)가 예안에 내려와 살면서 
지금까지 많은 후손들이 안동 지역에 살고 있다. 
그 후손을 예안에 거주한 집안이라 하여 ‘광산김씨 예안파’라 부른다.

김부필은 1537년에 문학 시험인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생활하였고, 
41세의 늦은 나이에 퇴계 이황의 문인이 되었으며,
1574년 도산서원의 건립에 조목과 함께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지조와 절개로 사림들의 신망도 높아 ‘오천 7군자’의 한 사람으로 불린다. 



그의 도장이 찍혀 있는 책인 『학부통변』은  성리학을 강조하면서 양명학을 비판한 책이다.
전편(前編)·후편(後編)·속편(續編)·종편(終編) 등 4편 가운데,
동산도서관에는 전편(前編)을 제외한 3편이 있다.

그런데 2권에는 김부필의 도장이 있고, 
다른 1권에는 동생인 김부의(金富儀)의 도장 4개가 찍혀 있다.(아래 오른쪽 사진)
책의 크기, 책의 순서를 적는 방식이 달라서, 각각 책을 입수해서 찍었던 것으로 보인다.

책 입수 기록
책 입수에 관한 기록
김부의 장서인


이 책의 끝에는 다음과 같이 책을 입수한 경위를 붓으로 적은 기록이 있다.(위 왼쪽 사진)

       “1576년 최응룡이 전라도 관찰사로 있을 때 전주에 있던 책판을 빌려 찍었다.
         1576년 8월 하순에 적는다.” 

이 기록은 아주 희귀하면서 중요하다. 이 기록이 없었더라면, 
이 책의 출판 지역과 출판 시기, 즉 '1576년 이전 전주 간행'임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옛날 책에는 출판 정보가 기술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부통변』은 임진왜란 이전의 책으로 희귀본에 속한다.
이 책 이외에 국내에는 고려대 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정도가 알려져 있는데,
그 책에는 출판 지역과 연도에 관한 정보가 없다.

광산김씨 예안파는 지금 안동의 ‘군자마을’로 잘 알려져 있다.
안동에 정착한 후에 번창하여 영남의 명문가로 자리 잡았으며,
집안에 다수의 16세기 고문헌이 전해지고 있다. 
그 가운데, 고서 13종 61점, 고문서 7종 441점은 각각 일괄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편집위원: 최경훈, 학술정보서비스팀 고문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