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헌 산책] 경서통(經書筒)과 고강시권(考講試券)
조선시대 선비들은 그 많은 분량의 유교 경전을 어떤 방법으로 외웠을까?
경서통으로 그 방법을 알아보고, 경전 암송시험의 채점 답안지를 살펴 본다.
조선시대 과거시험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라고들 한다. 성리학이 사회 전반을 운영하는 절대적 핵심원리였다는 의미다. 성리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요구하였고, 관리를 선발하는 과거 시험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래서 그 많은 분량의 유교 경전을 외워야 했다.
시험의 첫 관문은 바로 경전을 잘 알고 있는지 시험을 보는 고강(考講)이었다. 일종의 구술 시험인데, 이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 만큼 과거 공부를 하면 필수 중의 필수가 유교 경전 암기였던 것이다. 그래서 수백번씩 소리내어 읽고 또 읽기를 반복하면서 외우려고 했다. 그리고 암기를 위하여 사용한 도구가 바로 이번에 소개하는 경서통이다.
경전암기 필수 도구, 경서통
경서통은 대나무를 쪼갠 작고 얇은 막대기 수 백개가 들어가 있는 원통을 말한다. 이 수 백개의 막대기에는 유교 경전에 나오는 구절의 글자 몇 자가 적혀 있다. 천 개에 가까운 막대기에서 하나를 뽑는다. 그리고 그 구절이 경전의 어디에 나오고 해당 글자의 다음 구절은 무엇이고 그 뜻은 무엇인지 말한다. 이 경서통은 그런 방식으로 자신이 공부한 것에 대한 테스트 용도로 사용되었다.
김남석 박사(학교법인 계명대학교 이사) 기증
고강 시험에 합격했으니 이제 본 시험을 준비해야지.”
채점 결과가 표기된 시험 답안지(시권)
- 유교 기본 경전인 사서(四書)시험을 보았고, 각 과목명 하단에 적힌 것이 문제이다.
- 문제 왼쪽에 적힌 작은 글씨가 채점 결과인데,
- 모두 ‘A+’에 해당한다는 순통(純通) 글자와 채점관의 싸인이 있다.
과거 시험 합격은 양반으로서의 신분을 유지하는 가장 정당하고 객관적인 방법이었다. 3년에 한번 정기 시험이 있었고, 문무과 시험은 61명(문과 33명, 무과 28명), 생원진사 시험은 200명(각 100명)이 최종 선발 인원이었으니,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 보다 더 어려운 관문이었다. 그러나 합격을 하면 큰 효도이고 가문의 영광이었다.
과거 시험 첫 관문이 바로 유교 경전 숙지 정도를 묻는 고강 시험이었다. 과거에 응시하고자 하는 유생들은 위에서 소개한 경서통을 보조 도구로 첫 관문인 고강 시험을 위하여 열심히 공부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채점 결과가 표기된 답안지(시권)를 받아들고 기쁨과 함께 다가올 본 시험 생각도 했을 것이다. 최종 합격 후 풍악을 울리며 말을 타고 서울 중심가를 행진하고, 부모와 조상이 계시는 고향으로 향하면서 친지들에게 인사드릴 상상도 하고, 관원이 되어 배운 이상을 실천하는 자신의 모습을 꿈꾸면서...
<편집위원 최경훈, 학술정보서비스팀 고문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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