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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61호(6월)

[고문헌 산책] 이유수의 장서인

조선후기 문신, “이유수의 장서인”


옛날 책, 고서를 보면, 자신의 소유임을 표시하기 위하여 도장이 찍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도장을 ‘장서에 찍는 도장’이라고 하여 ‘장서인(藏書印)’이라고 부른다.

이번에 소개하는 장서인은 면천에 살았던 이유수 (李儒修, 1758~1822)가 사용한 책도장이다.

이유수의 장서인은 1777년에 만든 금속활자인,
정유자본 『향례합편(1797)』에 찍혀 있다.

周臣(주신), 咸平李儒修字在正章(함평이유수자재정장), 綺里(기리), 咸豐(함풍)이다.

이유수의 도장이 찍힌 『향례합편』과 도장 

첫 장에 정조 때 하사하던 책에 찍히는 도장인 「奎章之寶(규장지보)」가 있으니,
누군가 임금으로부터 내사를 받은 책으로 보인다.  

장서인의 주인공인 이유수는 함평 이씨로 고향은 면천(沔川, 충남 당진)이고, 
집안에 과거에 급제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다가 1783년 실시된  증광시에 생원, 진사, 문과에 동시에 합격한 사람이다. 
1783년에는 영조대왕을 종묘의 세실로 모시고 원자를 정한 두 가지 경사로 실시한 시험이었다.

생원, 진사는 1783년 4월 2일, 문과는 1783년 4월 20일에 실시되었다.
한 꺼번에 생원, 진사, 문과까지 이런 경우는 찾기 어려운 사례다.

그는 1786년 초계문신(규장각에 특별히 마련된 교육 및 연구과정을 밟던 문신)에 선발되었고, 
1790년 직산현감, 1795년 지평, 장령 등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고, 
1799년에 무장현감을 되었다. 

정약종, 정약전과의 관계로 함경도 무산에 유배되기도 하였으며, 
1821년 영해부사로 나갔다가 이듬해 졸하였다. 
인명사전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고, 과거 합격자 명부인 방목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유수의 장서인은 고려대 도서관에서도 2종이 확인된다.
대구의 경상감영에서 간행된 『찬도호주주례(1706)』와 『공성가어[18세기]』가 있다.

  
<편집위원: 최경훈, 학술정보서비스팀 고문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