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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77호(6월)

[고문헌 산책] 익사원종공신녹권(翼社原從功臣錄券)

『익사원종공신녹권』임해군 역모 사건의 공로자에게 내린 원종공신 증명서”
    

조선은 1392년 새 나라를 원하는 사람들의 추대로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고려가 망하고 새 하늘이 열린 것입니다. 건국에 공로를 세운 개국공신이 책봉되었고, 이들에게는 공신 명칭과 함께 토지와 노비 등이 내려졌으며, 후손의 관직 임용, 부역 면제, 죄를 지어도 용서하는 혜택도 주어졌습니다. ‘공신’은 국왕과 왕실의 핵심 지지기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은 개국 이후에도 왕을 바꾸려고 하거나 종묘사직을 위협하는 역모를 제압하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실제의 역모도 있었으나 왕권 강화를 위한 집권층의 조작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다수의 공신을 책봉하여 국왕에 대한 충성 기반을 튼튼하게 하였습니다.

1392년 조선 건국의 ‘개국공신’을 시작으로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을 제압한 ‘분무공신’까지 28회의 공신 책봉이 있었습니다. 국왕은 필요에 따라 여러 공신과 그 후손을 불러 하늘에 제를 올리며 충성 맹세를 하는 ‘공신회맹제’를 열면서 자신의 지지기반을 확고히 하였습니다.

공신은 집권하던 임금의 편에 있던 최측근이었으나 세상이 바뀌게 되면 공신에서 삭탈되었고, 반대편이 집권하게 되면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광해군 집권 시기에 역모를 진압한 공으로 책봉된 4개의 공신(위성·정운·익사·형난)이 있는데,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옹립한 쪽에서 보기에 그들이 역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신 책봉 증명서인 ‘녹권(錄券)’은 필요가 없게 되었고, 심하면 그 또한 역모의 의심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전하는 것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많지 않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것은 4개의 공신 가운데, 광해군 등극 직후에 임해군의 역모를 다스린 공신에게 내려진 공신 증명서인 『익사원종공신녹권』입니다. 

'익사원종공신녹권' 시작 부분

광해군은 임진왜란이라는 ‘비상사태’로 인하여 악행으로 민심을 잃은 장자 임해군을 제치고 세자에 책봉되었습니다. 임진왜란 수습에 공을 세우고 두각을 나타내면서 민심의 지지를 받았고, 세자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다가 1608년 선조가 승하하면서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엄연히 선조의 장자는 임해군이었고, 적자 영창대군도 있었습니다. 명나라는 정통성 등을 이유로 광해군의 국왕 책봉을 거부했고, 임해군의 상태를 확인하는 관리를 파견하는 등 등극은 쉽지 않았습니다. 적통도 장자도 아닌 광해군에게 임해군과 영창대군은 자신의 정통을 부정하는 싹으로 인식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두 사람 가운데 3세의 영창대군보다는 34세의 임해군이 더 큰 위협으로 다가왔고, 결국 왕권을 위협하는 대상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이에 측근에 의하여 역모의 협의로 조사가 진행되어 임해군은 강화도로 유배되었고, 1609년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때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익사공신’ 또는 ‘익사원종공신’이란 칭호가 내려졌습니다. 

‘원종공신(原從功臣)’이란 호칭은 ‘정공신(正功臣)’만큼은 아니지만 기여한 바가 있었기 때문에 공신으로 책봉함으로써 왕권을 안정·강화하려는 의도에서 수천 명이 책봉되었습니다. 책봉 대상이 많아 일일이 쓸 수 없었기 때문에 책자로 인쇄하여 주었습니다. 

'익사원종공신'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수천 명에 이르며, 그 가운데 인명사전에 나오는 사람도 많습니다. 몇 장을 넘겨 보면 익숙한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許筠)’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런데 먹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지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역모 혐의로 처형된 역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허균은 1608년에는 공신이었지만, 10년이 지난 1618년에는 역적으로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영광스런 명단에서 이름이 지워졌습니다.

동그라미로 '허균'의 이름이 지워진 흔적


『익사원종공신녹권』도 공신도감에서 목활자로 찍었으며, 동산도서관 소장본은 원종공신 3등에 책봉된 종8품 벼슬의 봉사(奉事) 인치명(印致明)에게 하사된 것입니다. 이 녹권의 공신은 국왕(광해군)이 쫓겨나면서 공신에서 삭탈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계명대 동산도서관을 비롯하여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박물관, 전북 고창의 후손가 등 4종 정도 남아 있는 희귀본이며, 그 가운데 전북 고창의 후손가 소장본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유산입니다.

 

> 편집위원: 최경훈 사서, 학술정보서비스팀 고문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