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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64호(11월)

[고문헌 산책] 명나라 황제의 도장

“명나라 황제의 도장, 廣運之寶(광운지보)”
  

 옛날 책, 고서를 보면, 자신의 소유임을 표시하기 위하여 
도장이 찍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도장을 ‘장서에 찍는 도장’이라고 하여 ‘장서인(藏書印)’이라고 부른다.

이번에 소개하는 도장은 중국 명나라 황제가 사용한 도장으로 알려진 것이다.
‘廣運之寶(광운지보)’라는 이 도장은 동산도서관 고서 가운데 1종에서 발견된다. 
바로 16세기 간행된 명나라 목판본 『소미통감절요』이다. 
도장의 크기는 가로, 세로 6.8 ㎝의 정사각형이다.

<동산도서관 소장 『소미통감절요』>

‘조선왕조실록’에 ‘광운지보’와 관련된 기록이 네 군데 보인다.

1) 1487년 신하가 명나라 내관의 황제 문서 위조 가능성을 신하가 언급하자, 
    성종은 ‘광운지보’가 찍혀 있어 황제의 명이 분명하다고 하였다.

2) 1603년 4월 8일에 보낸 명나라 황제의 칙서 내용을
   실록에서는 1603년 6월 19일에  칙서 내용을 그대로 기록하면서
   칙서에 날인된 황제의 도장을 ‘광운지보’로 기록하였다. 

3) 1741년 기록에는 영조가 중국책 『역대통감찬요』을 보고서 
    ‘책의 상단에 찍힌 廣運之寶(광운지보)가 무엇인지’를 물으니, 
    신하 황경원이 ‘명나라 황제의 도장’이라고 하면서
    '예전에 황제의 문서에서도 보았다'고 하였다.
    이에 영조는,
    "명나라 조정의 옥새 흔적이 보존된 것이니, 보배처럼 소중히 간직하여, 
     명나라를 생각하는 나의 마음을 나태내도록 하라"고 하명하였다.

4) 1746년 기록에는 ‘참판을 지냈던 영주 김늑( )의 집에 『대학연의』가 있는데, 
    책에 廣運之寶(광운지보)가 찍혀 있다’고 하였다. 
    이 책은 1602년 김늑이 동지사로 명나라에 갔을 때 만력 황제가 하사한 것이었다.
    에에 영조는, 『대학연의』를 감영이 주관하여 조정에 바치도록 하였다.


이상의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으로 볼 때, 
‘廣運之寶(광운지보)’는 명나라 황제가 사용한 도장으로 
조선에 내리는 문서, 명나라 궁궐에 보관되던 서적에 찍었던 어보(御寶)였음을 추론할 수 있다.

'광운지보'가 찍힌 책은 황제가 조선의 사신에게 하사하는 방식으로 조선에 전해졌고,
조선 궁궐에 그 책이 보관되었거나,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
조선 국왕의 허락을 받아 사신으로 갔던 개인이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이 도장은 계명대 동산도서관 이외에도 규장각, 고려대 등에서도 몇 종이 확인된다.
모두 중국 도서이고, 시기는 15~16세기 명나라 때 출판된 도서들이다. 

서울대 규장각 소장, 『소미통감절요』

참고로, 1889년 '대조선국보(大朝鮮國寶)' 등과 함께
조선 조정에서도 '광운지보'가 만들어졌다.
이와 관련된 내용이 규장각에 있는 『보인부신총수(寶印符信總數)』라는 책에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조선의 고종 때 만들어진 왕실의 도장 73개를 그림과 함께 수록한 책이며,
'광운지보'도 왕실에서 사용한 도장의 하나로 소개되어 있다.(아래 해당 면 사진)

규장각본 『보인부신총수』에 수록된 1889년 제작 '광운지보' 부분

그러나, 이 도장은 시기적으로 조선 후기에 조선 조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16세기의 『소미통감절요』에 찍힌 중국의 '광운지보'와는 관련이 없다.
그리고, 글자 모양에도 차이가 난다.   

<편집위원: 최경훈, 학술정보서비스팀 고문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