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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호(6월)

[Library & People] 계명-목요철학원 백승균 원장님과의 인터뷰

[Library & People] 120호 에서는 지난 5월 31일 명예교육박사학위를 받으신 계명-목요철학원 백승균 원장님과의 인터뷰를 싣습니다.   

 

1. 먼저 후학양성과 학문의 발전, 철학의 대중화에 기여한 공로로 명예교육학박사학위를 받으신 것을 축하드리며, 도서관 웹진 이용자를 위한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철학과 교수로 정년퇴임하고 현재는 계명-목요철학원 원장을 맡고 있는 백승균입니다. 나는 1936년 대구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어린시절 나라는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어려운 아비귀환이었습니다. 대구의 정치, 경제, 사회 상황 역시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뒤범벅이었고 헐벗고 가난한 사람들이 거리에 태반이었습니다. 
  길거리 전체가 그저 두려웠고 사납기만 한 시절, 친구의 인도로 대봉교회를 가게 되었고, 나를 위한 심금을 울리는 기도 소리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 계기로 고등학교를 기독교 학교인 계성고등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대학 재학 시절 새벽기도부터 저녁예배까지 지극정성으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하늘의 은총은 참으로 한참을 지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2. 철학을 전공하셨는데 원장님의 인생철학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고교시절 나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은 의사이고, 그다음은 교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직접 치료할 수 있고, 교사는 사람의 정신을 간접적으로 다룰 수 있기 때문 이였습니다. 이러한 생각으로 의대를 목표로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에는 친구의 영향이 큰 시기라 친한 친구가 수학과에 진학한다기에 나도 서울로 가서 고려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 친구와는 함께 다니지는 못했지만 떨어져 있어도 정신적으로는 늘 함께 했습니다. 대학 1학년 때 처음 철학 강의를 듣고 철학을 공부하고 싶어져서 한국외대에 입학해 독일어를 전공한 후 고려대학 대학원에 진학하여 서양철학을 전공하였습니다. 1966년 독일로 유학가 튀빙겐대학에서 생철학과 해석학을 공부하고 1975년 역사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학위 취득 후 튀빙겐대학에서 조교생활을 하던 중 고교시절 함께 공부했던 그 친한 친구의 소개로 1976년 귀국해서 계명대학교 철학과에 부임하였습니다.  

  좋은 친구와의 정신적 유대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좋은 직업 보다가는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이것이 제 인생철학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3. 대학시절이나 독일 유학시절 혹은 교수로 재직하시면서 도서관과 많은 인연이 있었을 텐데요. 도서관하면 생각나는 에피소드나 기억에 남는 일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도서관과는 유학시절부터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튀빙겐대학 교육학부 도서실에서 수년간 준사서로 일했습니다. 독일 대학교들은 대부분 중앙도서관이 있고 학부마다 부설 도서실이 있습니다. 중앙도서관에서는 우리 대학과 마찬가지로 대출증을 가지고 절차를 밟아 대출을 합니다. 그러나 부설 도서실에는 전문 도서들이 주를 이루며 시대별, 분야별, 학자별로 도서들을 비치하고 인접 분야의 장서를 구비하여 폭넓게 공부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시간도 절약할 수 있고 한 장소에서 전문 분야의 동일계 연구서들을 동시에 열람할 수 있어 연구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도서관은 책으로 쌓여있고 그 책들은 사람을 대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세계관이나인생관에 따라 책들은 그 진폭을 달리합니다. 감동을 주기도 하고 역습을 당하기도 하지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감동도 역습도 당하지 않는 책들은 세월을 거스르고 거슬러 당사자가 나타날 때까지 무한정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책을 다루는 사서들은 언젠가는 찾아올 당사자를 맞아하듯 도서관을 찾은 이들에게는 그가 누구든 친절하고 헌신적 이여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분이야말로 책을 사물로 대하지 않고 인품으로 대하기 때문에 사서들 스스로 귀한 인품의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4. 원장님의 인생의 책이나 학생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 추천해 주시겠습니까? ?

  우리에게 인품으로 다가오는 책이 참 많습니다. 많은 명저들 중 서양철학에 한정하여 두 책을 추천하고자 합니다.

  먼저 순수한 사유를 논리화하고 체계화하여 인간의 이성을 극대화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권합니다. 이 책은 인류지성사 전체에서 철학적으로 한 획을 그었습니다. 철학적으로 사유코자 하는 소수의 지성인, 전공자 에게만 통하는 저서라 너무 어려워서 처음부터 읽어내지 못하고 중도 하차해도 무방합니다. 그런 경험 자체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으니까요.

  둘째는 인간 삶의 충동을 생성의 결백성으로 승화시킨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권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자기 자신으로 새롭게 되살기를 다짐하게 하고, 틀에 갇힌 기독교까지를 극복하고자하는 참 인간으로 살고자 하는 만인에게 통했습니다. 앞의 책과 달리 한자리에서도 모두를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쉽게 다가갈 수 있어 좋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읽어낼 수 있는 서사시와 같은 저서인데 하나도 잡히지 않아 읽고 또 읽어도 자꾸만 새것이 샘솟듯 해 너무 쉬워서 오히려 어렵다고 할 수도 있는 책입니다. 두 권 다 이래저래 어렵기가 매 한자기라면 앞뒤 없이 읽어도 좋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 책을 적극 추천합니다.

 

5. 정년퇴직 후에도 저술활동, 신문기고, 철학원 원장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 모습 뵙기 참 좋습니다. 인생 선배님으로서 후배들, 우리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세요. 

  사람이 살다보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은 있다’()하고 그렇지 않는 것은 없다’()고들 합니다. 진정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만 있고 그렇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일까요?

  우리가 많은 독서를 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보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을 보기 위한 것으로 본질은 드러나 있지 않지만 그것은 현상적으로 이런저런 방식으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화장한 얼굴이 제아무리 예쁘다고 해도 생 얼굴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사람이 아무리 잘난 체해도 그 사람의 됨됨은 삶 속에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독서생활을 하자는 것은 얼굴을 꾸미고 겉 치례를 꾸미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됨의 가치를 쌓기 위해서입니다삶에 있어서 큰 가치란 한편으로는 인간의 삶을 삶 되게 하는 미적 예술의 세계를 열어가는 일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의 삶을 영원토록 하는 영적 신앙의 세계를 열어가는 일입니다. 물질의 유한성이 정신의 무한성에서 지양되고, 정신의 무한성이 영혼의 영원성에서 지양될 때 영원이 곧 순간이 되고 순간이 곧 영원으로 되어 인간실존에서는 하나로 드러내 보입니다.

  이 모든 인간 삶의 실존적 하나가 한 권의 책이든 두 권의 책이든, 아니면 수많은 책들 속에 다 들어있습니다. 그 책들이 오늘도 여러분들을 책꽂이에서, 도서관에서 혹은 서점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험난한 인생길을 바로 알려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편집위원 김숙찬, 학술정보지원팀 전자정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