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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64호

[독.계.비] 지금 외롭다면 잘 되고 있는 것이다.

[讀.啓.肥] [독.계.비] 코너는 ‘독서로 계명을 살찌우자’라는 목표로 독서릴레이 형식으로 꾸며가는 코너입니다. 책을 읽고 그에 대한 소감과 함께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해 주고, 그 사람은 추천받은 책을 읽고 난 후 또 다른 책을 본인이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많은 분들의 참여를 부탁드리며, 참여해 주신 분들께는 소정의 상품을 드립니다.

 

이 달에는 김효주(문헌정보학과, 4)양이 한상복씨가 쓴 「지금 외롭다면 잘 되고 있는 것이다」정혜지(연극예술과, 3)양에게 추천합니다.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외롭다’는 생각을 한다. 수많은 사람들과 얽히고설킨 상태에서도 외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도 그들도 사람을 다독여주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내 삶은 태어날 때부터 고난과 고행의 연속이었다. 지금이야 비슷하고 흔해빠진 인생이야기들과 다를 바가 없지만 당시 내게는 그 누구보다 특별한 삶의 연속이었다. 그 첫 외로움은 가족이었고, 두 번째는 친구였으며, 세 번째는 나 자신이었다. 가족에 대한 외로움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자라 딸이라는 위치는 외로운 자리였지만 어느 순간 아버지의 외로움을 보게 된 후로 내 자리를 찾게 되었다. 문제는 친구들 속에서의 외로움과 나 스스로의 외로움이었다. 많은 각고 끝에 입학한 대학이라는 곳에 대해 기대를 했다. 항상 새롭고 즐거운 일만 가득할 것 같았던 그곳은 사실 외로운 곳이었다. 많은 사람들 속에 어울려 있어도 혼자 외딴 곳에 있는 느낌. 그 느낌이 싫어서 더 자주, 더 많이 사람들과 만나고 어울렸지만 그럴수록 혼자라는 생각은 커져만 갔다. 그러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나보다 네 댓살이 많은 그 언니는 항상 웃고 있었고 여유가 있어보였다. 자주 만난 것도 아닌데 그 언니와 나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언니는 네가 나 같아서 마음이 쓰인다는 말을 했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다. 다만 언니와의 만남은 허전했던 마음에 적당한 포만감을 주었다.

 

  그렇게 배부름에 외로움을 잊어갈 때 쯤 우연처럼 내 외로움에 답을 줄 책을 알게 되었다. 아무 이유 없이 답을 주고 있는 책제목에 끌려 급하게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나서야 언니의 말도, 내가 찾고 있는 답도 알게 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외로움은 Loneliness, 즉 혼자 있는 시간이 고통스러웠던 외로움이었다. 혼자라서 고통스럽다는 의미가 아니다. 늘 사람과 함께하던 시간의 사용법과 혼자 있는 시간의 사용법은 다른데 나는 그 방법을 알지 못했다. 내가 항상 외로웠던 것은 타인이 채워주는 나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나를 채울 수 있어야 했다. 물론 무조건 다 채운다고 해서 내 외로움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언니는 내게 그런 여유를 알려주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은 존재이고, 나는 나를 완벽하게 채울 수 없다. 나를 채워가는 과정을 지나면서 조금씩 남은 공간들을 바라보고 무엇을 채워 넣을지 생각하는 그것, 그것이 나에게 있어 혼자 있는 시간의 사용법이었다. 앞으로 변화할 나와 나의 가치를 혼자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이제 나는 나 자신의 외로움을 즐길 줄 안다는 의미의 Solitude를 말할 수 있다.

 

  외로움이 슬픔과 고독이 아니라 즐거움과 새로움을 나타낸다는 걸 깨달은 뒤에 사소하지만 작은 습관이 생겼다. 여행을 떠났을 때 모든 것을 채우고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채워서 얻는 만족도 좋지만 비웠을 때 생기는 여유가 마음에 더 여운을 남겨서다. 여행지의 모든 것을 느끼지 못한 채 돌아오면 후회가 생긴다. 그러나 다음번에 그 곳에 가면 남아있던 새로움에 대해 기대하게 된다. 나 자신의 외로움 역시 여행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을 채우지 못했을 때의 작은 후회와 남은 곳을 채울 때의 설렘. 당신은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 지금도 대학이라는 작은 사회에 막 들어온 사람들은 외로움에 둘러싸여 있다. 작은 사회를 떠나 큰 사회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 역시 외로움에 둘러싸여 있다. 외롭다는 건 사람으로 태어나 인생을 지고 가는데 있어 친구와 같다. 어차피 함께해야할 동반자라면 고통보다는 즐거움이 낫지 않을까? 고통일지 즐거움일지 판단하는 것 역시 당신의 몫이다. 누가 먼저 외로움을 정의하는 가에 따라 성숙한 삶에 한 발짝 더 다가가는 것이 될 수도 혹은 그런 사람들을 바라만 보는 입장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당신만 외로운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외롭다. 그래서 나의 답은 이렇다. 지금 외롭다면 잘 되고 있는 것이다.

 

<사진출처: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