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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칼럼] 오월의 사색

[동산칼럼]에는 공과대학 기계자동차공학과 교수이신 김태권 교수의 칼럼을 싣습니다. [양봉석 ybs@gw.kmu.ac.kr]

 

 

 

 

 

 

 

 

 궁산에서 내려다 본 캠퍼스는 마치 하나의 생명을 가진 존재와 같다. 정문 옆 박태기나무의 홍자색 꽃 덩어리와 행소박물관 뒷길에 흩뿌리던 벚꽃에 대한 기억이 아직 망막에 여운을 남기고 있는데 푸른 기운이 이미 동산도서관을 거쳐 명교생활관을 뒤덮고 있다. 우리 캠퍼스가 어느덧 만물의 소생과 더불어 생기 넘치는 청년기의 캠퍼스로 변신한 것이다. 각자의 자태와 방식대로 각자의 공간에서 공동의 운행질서인 시간에 따라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변모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바뀌기 싫어도, 나이 들기 싫어도, 늙기 싫어도 시간의 질서는 만물에게 적용되는 것. 이것만은 바뀌지 않는 것인가 보다. 캠퍼스의 주인공인 우리 학생들 역시 각자의 성장배경이 다르고 나이가 다르고 성별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포부가 다르면서 모두들 변신의 노력을 해가고 있다. 마치 각자의 방식대로 자라고 있는 수많은 생명들과 같이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은 어떠한가?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대량교육생산이 현실로 고착화 되어있다. 경제적인 논리로 인해 규격화된 붉은 벽돌과 같은 학생의 생산을 요구받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지난 3월. 캠퍼스 여기저기엔 아직 고등학생 태를 벗지 못한 새내기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때의 풋풋함보다는 제법 대학생다운 경륜이 있어 보이는 그들이 활보하는 오늘이다. 그러나 3-4년 뒤 그들이 졸업할 즈음.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까? 오늘의 저 풋풋함과 생기발랄한 모습이 변하여 규격화된 붉은 벽돌학생이 되어 취업에 안달이 난 모습으로 찌들어 있지 않을지... 고풍스런 붉은 벽돌 건물을 볼 때마다 씁쓸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렇다. 자연의 생명은 자기 최적의 기능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변해가고 있지 않은가?  이제 우리의 교육도 규격화되고 대량의 학생생산방식을 탈피해서 소량의 다양성을 가진 학생 교육 방식으로 변모해야 되지 않을까? 이런 방식의 교육이 지식정보사회에서 오히려 경제성을 가진 알찬 인재의 양성방식이 아닐는지? 이러한 교육방식은 이미 기원전 4∼5세기의 공자께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방식이었다. 제자 자로(子路)가 정치에 대해 물은 즉, 정치는 위정자가 먼저 솔선수범하고 백성들과 동고동락하는 것이라 하였다. 선생의 답이 너무 평범하여 좀 더 거창한 답을 해주기를 물은 즉, 내가 이야기한 그것만 잘해도 정치가 잘 된다 하며 자로(子路)의 품성과 처해있는 상황에 적합한 답을 주었던 것이다. 또한 제자 중궁(仲弓)이 정치에 대해 물은 즉, 정치는 일을 적임자에게 맡기고 조그만 허물은 용서하며 현명한 인재를 등용하면 정치가 잘 된다고 가르쳤다. 이것은 당시 공자가 살던 노(魯)나라에서 임금보다 더 많은 재산과 실권을 가진 노나라 대부 계강자(季康子)의 가신(家臣)으로 있던 중궁(仲弓)의 입장을 고려하여 답을 해 주었던 것이다. 같은 질문에 대해 제자가 처한 상황과 배경을 고려해서 그 사람의 품성과 능력에 적합하게 실천해법을 제시해 주었던 것이다.

 5월. 푸름을 더해가는 성서캠퍼스. 자연의 섭리와 함께 꾸준히 변신하고 있는 이때. 진정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바가 무엇인지, 무엇이 변해야하는지를 잠시 생각해 본다. 제도를 당장 바꾸기 어려우면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심정으로 조금씩 노력해 보겠노라고. 마침 우리민족의 스승인 세종대왕의 탄신일인 오늘 스승의 날. 기원전의 또 다른 한 스승을 떠올리며 궁산을 내려온다. 라일락 보다 더 진한 아카시아 꽃내음을 한 가슴 담고서.

 <사진출저:계명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