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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71호(10월)

[독계비]저자: 유선경의 "어른의 어휘력"를 읽고

[讀.啓.肥(독. 계. 비)]는  ‘독서로 계명을 살찌우자’라는 목표로 릴레이 독서 추천 형식으로 꾸며가는 코너입니다. 책을 읽고 그에 대한 소감과 함께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해 주고, 그 사람은 추천받은 책을 읽고 난 후 또 다른 책을 본인이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손동우(사회학과)에게서「 어린왕자」를  추천받은 김가은(사회학과)양 이유선(경영정보학과)양에게  「 어른의 어휘력 」를 추천합니다.  

  서사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어휘력은 이러한 서사를 ’잘‘ 구성하는 힘이다. 그 힘을 체험한 사람은 반드시 그 힘을 발휘하고 싶어 하며, 결국 우리 모두는 ’뛰어난 이야기꾼‘이 되고 싶다는 갈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더구나 어휘력은 서적과 문헌, 영상 같은 시각적 기록이나 텍스트뿐 아니라, 개인 과거의 기억과 경험을 말로 표상하는 ’구술’의 상황에서 훨씬 더 뚜렷하게 출현한다. 이제는 책 좀 읽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이, 서사를 풍부하고 신선한 어휘로 구성하고자 하는 모든 현대인을 매료시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너무’, ‘정말’, ‘진짜‘, ‘엄청‘, ‘완전‘, ‘되게‘, ‘리얼‘, ‘대박‘, ‘개‘를 앞에 갖다 붙이지 않아도 그 심정의 진실함을 알릴 어휘와 표현은 무엇일지 고민한다.”

  <어른의 어휘력>이 출간되자 자기계발 도서를 탐독하는 선두 독자들은 발 빠르게 책 속의 구절을 공유하기 시작했고, 특히 저 구절은 이 책은 읽어본 사람뿐만 아니라 한 번도 스스로의 어휘력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도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나 역시 이 책을 집어 들게 된 계기는 일상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자꾸만 "그거, 그거 있잖아, 그거!" 하며 브레이크 밟듯이 말문이 막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부터였다. 글을 쓰는 학과에서, 논리와 의미로 서사를 구성하길 배우는 전공생으로선 참 기막히고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고, 똑같은 어휘의 반복 속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인식이 강해질수록 말하는 것 자체가 점점 괴로워졌다. 이 책은 그런 정체감과 두려움에 떠밀려 무턱대고 집어 들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모두의 바람대로 어휘력은 어떻게 늘릴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사용하지 않던 어휘는 어떻게 내 내면에서 새롭게 발현될 수 있을까? 저자는 어휘력의 필수 요소로 대상을 순수하게 바라보는 ’관심’을 강조한다. 관심이란 나 아닌 대상을 자신의 의지로 깊게 들여다보는, 가히 자의적이면서도 인지적인 실천 방식이다. 저자는 독일에서 만난 망명인에게 우리나라의 바다를 '파랗다(blue)'고 설명했을 때, "정말 삼면의 바다가 다 같은 색, 블루가 맞아? 확실해?"라는 그의 반문을 듣고 중대한 인식의 전환을 경험한다. 하나의 색감에도 무수히 다양한 색감 어휘가 존재한다며 소위 ‘한글의 위대함’을 자랑스러워하는 한국에서는, 사실 웬만한 자연색을 ‘푸르다’라는 단어로 통칭하는 관행이 널리 퍼져 있다. 서로 다른 삼면의 바다가 어떻게 모두 ‘Blue’일 수 있을까? 어째서 그렇게만 떠올려 왔을까? 사물에 대한 확신은 우리의 뇌가 당연한 것만을, 그리고 막연한 것만을 떠올려 뱉게 한다. 그렇기에 어휘력이란 사람과 사물, 상황과 맥락으로 불리는 모든 대수롭고 대수롭지 않은 대상에 관한 관심을 전제해야만 발휘된다. 언제까지 압도적인 풍경 앞에서 지상 최고의 찬탄인 양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는 말로 관찰을 회피할 것인가? 허름한 어휘 주머니를 탈탈 뒤집어 털어서라도 어떻게든 이 풍경을 표현해내고 싶은, 바로 그 마음을 쫓아야 한다. 그리고 부지런히 보아야 한다. 결국 표현의 욕구란, 자신 이외의 것에게 진정 관심을 베풀 줄 아는 이들에게만 선사되는 어휘력의 선물인 것이다.  

  ”진부한 이야기처럼 흔하고 낡고 닳은 낱말들은 그에 담긴 의미를 새롭게 조탁해보라는 도전의식을 갖게 한다.“

  <어른의 어휘력>은 상투적인 삶의 소재에 감동과 여운을 담아내고, 낡고 닳은 낱말들의 아름다움을 찾아야 한다는 결의를 심어주었다. ‘기쁘다’는 말을 누군가는 ‘황홀하다’고 말하고, ‘슬프다’는 감정을 누군가는 ‘애달프다’고 표현한다. 사랑, 평화, 행복, 가난과 빈곤 같이 사용한 지 오래되어 더 이상 의미가 가슴에 사무치지 않고 공허하게 오르내리는 단어들을 마치 그 단어를 처음 만났던 순간들처럼 눈물겹게 생경한 감각으로 녹여내고 싶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만 표현하는 것을 관두고 싶다. 우리는 자신이 느낀 ‘아름다움‘을 타인에게 또 다른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서 어휘력을 늘려야 한다. 세상 모두가 자신만의 언어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표현해낼 때, 세상은 더 이상 아름다움이 희귀하지 않으며 아름다움은 균일화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무수한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고, 듣고, 느끼고, 타인에게 표상할 수 있는 ’어른의 어휘력‘을 소유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출처: 책 표지-교보문고, 사진-김가은

편집위원: 김지영(학술정보지원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