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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65호(12월)

[고문헌 산책] 홍대용의 도장

“북학파 실학자, 담헌 홍대용의 장서인”  

옛날 책, 고서를 보면, 자신의 소유임을 표시하기 위하여 
도장이 찍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도장을 ‘장서에 찍는 도장’이라고 하여 ‘장서인(藏書印)’이라고 부른다.

이번에 소개하는 도장은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의 장서인이다.

홍대용의 도장은 『명사강목』이란 책에 1개가 찍혀 있다.
바로 ‘洪大容印(홍대용인)’. 자신의 이름을 사용했다.
도장의 크기는 가로, 세로 4.1 ㎝이며, 정사각형이다.

참고로, 성균관대 존경각에 있는 『한예자원(漢隸字源)』에도 그의 장서인이 찍혀 있다.
명나라 목판본으로 남송 때 한나라 때의 예서체를 모은 사전이다.
그 책에는 ‘湛軒(담헌)’, ‘洪大容印(홍대용인)’, ‘德保(덕보)’ 등 3개의 도장이 찍혀 있다.
‘담헌’은 홍대용의 호(號)이고, ‘덕보’는 그의 자(字)이다. 

[천안박물관 편. <담헌 홍대용>. 2012. 139쪽에서 인용]

홍대용은 북학파를 대표하는 실학자이다. 

북학파는 18세기 실학사상 가운데,
청나라의 학문과 기술을 받아들이자고 주장한 학자들을 말하며,
상업과 대외 무역을 중시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홍대용을 비롯하여 박지원, 박제가, 유득공 등이 있다.

홍대용은 35세 때인 1765년에 청나라로 떠나는 사신단의 서장관으로 임명된
작은아버지 홍억(洪檍)의 수행 군관으로 북경에 다녀왔다. 
청나라에서 60여 일 동안 머무는 동안, 반정균(潘庭筠) 등 
항저우 출신의 중국 학자들과 교분을 쌓았고, 
북경에 머물던 서양 선교사들과 교류하면서 중국의 선진 문명을 배웠다.

중국 사행은 그에게 세상을 보는 안목과 학문적으로도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홍대용은 중국 중심 세계관인 화이론(華夷論)을 배격하였고,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벗어나 사람과 만물이 평등하다고 하였으며, 
집권층 중심의 계급과 신분 질서를 반대하면서 평등을 강조하였다. 
어느 한쪽 중심의 고착된 사고에서 벗어나 나와 상대가 같다는
상대주의는 그의 사상적 기반을 이루고 있다.

지구가 돈다는 ‘지전설(地轉說)’도 지구 중심의 일방적 사고에서 벗어난 것으로,
나도 객체가 될 수 있다는 그의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의 도장이 찍혀 있는 『명사강목』이라는 책은
중국 명나라의 역사책인 『명사(明史)』를 강목의 형식으로 편집한 책으로,
편자는 조선 후기의 학자 이현석(李玄錫, 1647-1703)이다.
궁궐의 출판사에서 금속활자인 운각인서체자로 간행되었다.   

<편집위원: 최경훈, 학술정보서비스팀 고문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