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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58호(3월)

[고문헌 산책] 책에 찍힌 임금의 도장, 선사지기(宣賜之記)

임금이 하사한 책에 찍히는 도장(옥새), 

“선사지기(宣賜之記)”

선사지기 도장


조선시대 국왕의 도장을 '옥새'라고 한다. 
옥새는 한 종류가 아니라, 외교문서, 관직 임용장(교지), 국왕 하사품 등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었다.

국왕의 도장 가운데, 하사품에는 ‘선사지기(宣賜之記)’가 새겨진 도장이 사용되었다.
이 도장은 가로와 세로 모두 8cm 정도 되는 정사각형 도장이며, 
세종 때인 1440년에 제도가 마련되어 정착되었다. 
임금이 하사하는 책의 첫 장 오른쪽 윗부분에 도장을 찍었다.
펼친 면으로 보면, 왼쪽 상단에 도장이 찍히고,
오른쪽에는 언제, 누구에게, 무엇을 하사하는지 내용을 적은 문서가 기록된다.

임금이 신하에게 하사했던 책을 ‘내사본’이라 부르는데,
동산도서관에는 임금이 신하에게 하사했던 내사본이 여러 권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빠른 것이 1585년에 하사된 『초결백운가』라는 책이다.

1585년 성혼에게 하사되었던 『초결백운가』, 왼쪽의 도장과 오른쪽의 고문서가 있다


『초결백운가』는 한자의 서체 가운데, 빨리 쓰기 위해 획을 생략하여 흘려 쓰는 초서(草書)를 배우기 위한 책이다. 초서는 조선시대 글을 배우는 사람이면 누구나 학습해야 하는 것으로 『초결백운가』는 많은 학습자들이 애용하였고, 돌이나 나무에 새겨 많이 간행되었다.

동산도서관의 『초결백운가』에도 임금의 도장이 찍혀 있다.
임금의 도장이 찍히는 것은 책의 출발지가 임금(궁궐)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도장의 오른쪽 면에는 책을 하사한 연도와 받는 사람에 대한 문서가 있고, 
해당 업무를 맡은 관원인 좌부승지 이(李) 아무개의 결재 싸인이 있다.
책을 받은 사람은 아주 유명한 사람인 성혼(成渾, 1535~1598)이다.

1585년 5월에 문서를 작성하고 결재한 후, 임금의 도장인 옥새를 찍어 성혼에게 하사했다.
성혼은 명에 따라 책을 받아 갔을 것이다.
그런데 7년 뒤의 큰 전쟁(임진왜란)을 비롯하여 병자호란 등 전쟁이 일어났고, 그 와중에 책을 잃어 버렸다.

그러나 그로부터 70여 년이 지난 1666년에 외손자가 되는 윤선거(1610~1669)가 이 책을 다시 찾게 된다.
윤선거는 외할아버지의 책을 찾게 된 것에 감격하였고, 그 사연을 적어서 책의 끝에 붙였다. 
이 책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같은 책을 가져오면 교환해 주겠다는 말을 했고,
그에게 같은 『초결백운가』를 주고 외할아버지가 임금(선조)에게 받았던 책을 찾아온 것이다.

책의 끝에 붙인 윤선거의 친필 발문


그 사람이 이 책을 전란의 와중에 지켜내지 못했다면 사라졌을 것인데,
다행히도 그 책을 잘 보관해서 원래의 주인 후손에게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잘 관리되고 있다.

 

<편집위원: 최경훈, 학술정보서비스팀 고문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