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계비] 저자: 채사장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1"를 읽고
[讀.啓.肥(독. 계. 비)]는 ‘독서로 계명을 살찌우자’라는 목표로 릴레이 독서 추천 형식으로 꾸며가는 코너입니다. 책을 읽고 그에 대한 소감과 함께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해 주고, 그 사람은 추천받은 책을 읽고 난 후 또 다른 책을 본인이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김지연(사회복지학)양에게서「침묵의 봄」를 추천받은 송세경(광고홍보학과)양이 손동우(사회학과)군에게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1」를 추천합니다.
제 1장, 역사. '직선적 시간관과 원형적 시간관'. 직선적 시간관은 시간이 하나의 방향성을 가진 채로 앞으로 나아간다는 관점이다.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흘러간다는 아주 상식적이고 직관적인 생각이다. "직선적 시간관에서 시간의 흐름의 방향은 일관된 하나의 방향성만을 유지한다. 탁자 위에 있던 유리컵이 깨졌다고 가정해 보면. 이 상황에서 떨어져 깨진 유리컵이 다시 들러붙어 탁자 위에 그대로 올려져 있을 수는 없죠. 이렇게 뒤로 감기는 되지 않고 앞을 재생만 가능한 특성을, 우리는 '시간의 불가역적 성질'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나온 시간의 불가역적 성질이라는 것은 직선적 시간관을 설명하는 핵심적 개념이다. 이 말만 봤을 때 너무 직관적이고, 당연해 보이는 직선적 시간관이지만, 이에 당위성에 반하는 견해가 존재한다. 시간은 순환한다는 관점의 '원형적 시간관'이다. 원형적 시간관의 가까운 사례로 우리의 일상을 들 수 있다. 자고 깨고 일어나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자고 일어나 다음날 같은 일과를 다시 반복하는 일상을 순환적 시간관의 단편적인 예시로 들 수 있다. 계절의 변화와 반복도 좋은 예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차이점은, 직선적 시간관이 하는 말이다. "역사는 끝없이 발전해 간다." '직선적 시간관은, 과거로의 회귀를 인정하지 않는다. 역사는 과거를 지나서 현재를 거치고, 현재를 거쳐 미래로 나아가며, 그 나아감은 어제, 즉 과거보다 변화된 오늘이며 현재이고, 오늘보다 변화된 내일이며 미래이다. 기술과 문명은 절대 후퇴하지 않고 앞으로 발전해 나간다.' 라는 게 직선적 시간관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인데, 인류의 발전과 진보에 대한 낙관이 특징이라 서구 사상의 근간이 된다고 한다. 직선적 시간관은 인류의 역사관을 설명하는 틀이 되며, 물질문명의 발전 설명에 맞는 느낌이다. 하지만 원형적 시간관에서 하는 말은, "역사는 발전과 진보를 지속하지 않는다. 대신 발전과 퇴보를 반복한다."이다. 직선적 시간관과는 다르게, 주로 동양적 역사관의 특징에서 나타난다. 동양에서 혁명은, 언제나 왕의 성씨가 바뀌는 역성혁명일 뿐, 백성들의 삶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발전하거나 변화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볼 때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직선적 시간관과는 다르게 정신적인 면을 설명할 때 맞는 것 같다.
내 의견을 말하자면 나는 직선적 시간관이 더 맞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나도 시간은 앞으로 쭉 나아간다고 생각하지 다시 돌아온다고 생각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원형적 시간관의 예시를 좀 더 들자면, 월화수목금토일이 지나가면 다시 월화수목금토일이 오고, 1월, 2월, 3월하고 12월이 지나가면 다시 1월이 오고. 하지만 애초에 세상에 그런 시간 개념은 없다.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생활하기 위해 날을 정해 그렇게 이름을 붙여 생활하는 거지, 원래 그런 개념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자고 깨고 일하고 비슷한 일과를 반복하며 살아가는 것 같아도, 사실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우리는 하루하루 너무나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일어나는 시간도 다 조금씩 다를 것이고, 밥을 먹는 시간, 하루에 자는 시간. 우리가 로봇이 아닌 이상 인간들은 조금씩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조금씩 더 발전해 가는 것이다. 또한, 이 세상이 원형적 시간관에 가깝다면 우리는 왜 좋은 미래를 선망하고 바라고, 좋지 않은 과거는 지우고 싶어 하고 후회하는가. 우리가 지금 사는 삶은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현재이듯이. 우리는 과거나 미래로 절대 갈 수 없다. 현재 기준에서 말이다. 과거 기준에서 봤을 땐 현재가 미래가 되고, 미래 기준에서 봤을 때 현재가 미래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현재는 현재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절대 과거나 미래로 도달할 수 없다. 미래로 가는 현재만 계속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형적 시간관에서 주장하는 "역사는 발전과 퇴보를 반복한다."라는 말이 모순인 것이 어떤 것이 발전이고 어떤 것이 퇴보인지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인간 관점에서 우리가 4차 산업 혁명까지 오고, 인공 지능이 발전하고, 인간들이 편리하고 쾌적한 삶을 살며 많은 것을 누리고 산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연, 즉 지구의 처지에서 봤을 때는 이 또한 얼마나 자연 파괴적이며 퇴보에 해당하는 시간일까.
또한 1장 역사, '원시 공산사회' 중에서. "여보게 A.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네 그려. 우리가 고기를 먹고 싶을 때면 내가 맘모스도 유인하고 그랬었지. 말 나온 김에 옛정을 생각해서 곡식 좀 같이 먹지." A는 B와 함께 도우며 생활했던 과거를 떠올렸고, B를 거절할 수 없었다. A가 말했다. "그래, 그때는 참 즐거웠지. 여기 곡식이 있네. 그런데 오늘 내가 조금 피곤하니 화장실 청소 좀 부탁하네." 지시 관계가 발생했다. "현재 A는 지시할 수 있는 위치에 서있고, B는 어쩔 수 없이 지시에 따라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생각해 보자. 어떻게 겉보기에 비슷한 A가 B에 지시 내릴 수 있게 되었을까? 이유는 A가 가진 생산물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A의 생산물은 어디서 온 것인가? A가 가진 생산수단에서 왔다. 즉, 생산수단을 소유하면 생산물을 소유하게 되고, 그 생산물을 이용해서 권력을 얻게 된다. 생산물과 생산수단은 단순한 물질이다. 그런데 그런 물질이 비물질적인 사회적 관계로서의 권력관계를 발생 시킨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원시공산제는 수렵 선물경제를 기술하는 한 방식으로, 인류의 첫 사회제도로 간주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 생긴 말로 하자면 갑과 을의 관계가 생긴 첫 단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갑과 을의 관계가 생긴다고 가정하면, 대부분은 돈 때문에 생기는 것일 거다. 대한민국은 자본주의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보통 연인 관계에서 갑을 관계가 생긴다. 연인 관계에서 갑을 관계는 대체 왜 생기는 것일까? 하니, 사람의 마음은 절대 같을 수 없다. 아무리 비슷해 보인다고 해도, 하나하나 다 따져보면 0.00001%라도 어느 한쪽이 더 마음이 크고, 어느 한쪽이 마음이 더 적을 것이다. 때문에 거기서 생각하는 조금의 차이로 더 적은 쪽이 사랑을 더 갈구하게 되고, 더 좋아하니까 더 희생하며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갑을 관계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내가 가지고 있지 않거나 없는 것을 상대방이 가지고 있으므로 내가 그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희생하는 것. 그게 갑을 관계가 생기게 되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관계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사회생활이나 그냥 일상 속 모든 관계에서 갑을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 게 더 어려운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니 참 인간관계도 어렵고 복잡하지만 그런데도 인간들이 다 관계를 지어 살아가고, 원하는 것을 얻으며 여러 사람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점이 신기한 것 같다.
이렇게 역사에 관한 책 내용, 약 두 목차만 봤는데도 책 내용과 연관해 드는 생각이 정말 많았고, 책 내용으로 인해 세상에 대해 더 폭넓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나에게 넓고 얕은 지식을 주기에 충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나에게 많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기 때문에, 또래 다른 친구들에게도 이 책을 추천해 주고 싶다.
출처: 책 표지-교보문고, 사진-송세경
편집위원: 김지영(학술정보지원팀)
출처: https://dslib.tistory.com/1090 [동산도서관 웹진:티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