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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호(12월)

[고문헌 산책 10] 역대군신도상(歷代君臣圖像)

[고문헌 산책] 역대군신도상(歷代君臣圖像)

 

역사 속 인물의 얼굴이 수록된 고문헌

  역사는 인물의 역사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역사를 이야기하려면 인물이 중심이 된다. 그 역사의 끝자락과 시작점을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들에게 역사 속 인물의 모습은 다양한 방식으로 다가온다. 모두가 좋아한다는 화폐의 모델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광장의 동상 등으로.

  초중등학교에 가면 건물의 좌우로 세종대왕과 이순신의 동상을 볼 수 있다. 형상이 있기 때문에 그 인물이 살았던 시대의 역사와 그 속에서 주인공이 보여준 모습을 알게 되면서, 우리는 보고 배우려고 한다. 그래서 학교에 동상이 있는 것이다. 그분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고 지켜낸 그 정신을 기리고, 가르침대로 살아 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다. 문자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형상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더욱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고문헌 가운데 이렇게 역사 속 인물의 형상을 담고 있는 것으로 <역대군신도상(歷代君臣圖像)>이 있다. 책 제목은 역사 속 임금과 신하의 인물상을 모은 것으로 풀이된다.

 

중종의 명으로 편찬된 중국 역사 속 인물 초상 판화집

  이 책은 조선 11대 국왕이었던 중종의 명으로 편찬되었다. 1525년 8월 27일, 중종은 홍문관에 공자의 초상 1폭과 역대 군신의 초상을 내리면서, 인물의 사적을 간략히 기록하고 찬양하는 詩를 짓도록 명했다. 이와 함께 대제학에게는 책의 편찬 취지를 설명하는 서문을 짓도록 했다. 이렇게 시작된 지 9개월 만에 책은 완성되어 신하들에게 내려졌다. 혼란의 역사를 거치다 보니 지금 이 책은 7종 정도가 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문 중 유비 부분

 

  이 책 속에는 우리가 잘 아는 유비, 제갈량, 조조, 당태종 등 중국 역사 속 인물 108명(임금 40명, 신하 68명)이 수록되어 있다. 시각적으로 인물의 얼굴을 보게 되면 그 사람의 마음을 찾고 그 사람을 직접 만나는 효과를 얻게 되기 때문에 본받고 배우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편찬 취지를 설명한 서문에도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사람은 남의 선한 행적을 들으면 누구나 부러워하며 따르려 하고, 선하지 못한 행적을 들으면 침을 뱉고 욕하며 멸시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직접 봐야지만 같아지길 생각하고 자신을 반성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圖를 인하여 像을 보고 像을 인하여 마음을 찾는다면, 본받고 경계할 만한 것들이 책을 펴면 눈에 선명하여 마치 직접 그 사람을 만나 본 것과 같고 그 사람과 동행한 것과 같으니, 같아지길 생각하고, 따르고 고치는 것이 더욱 깊고 절실하며 매우 분명할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역대군신도상>은 책에 수록된 인물을 보면서 선과 불선을 알고, 행적을 본받고 경계하기 위하여 만든 교육용 성격이 강한 책이다.

 

우리는 무후(武后)의 악을 알고서 다투어 그 상(像)을 지우고 더럽혔다

  이 책이 교육에서 활용된 학습 사례가 김춘택(1670-1717)의 문집인 <북헌거사집>에 수록되어 있다. 김춘택의 집에는 오래 전부터 이 책이 있었다. 그러다가 1716년 춘삼월에 오래 전부터 집에 있던 이 책을 보수하면서 <개장군신도상서(改粧君臣圖像序)>라는 글을 쓴다. 이 글에는 어릴 적에 할아버지인 김만중이 이 책으로 집안 자제들을 가르쳤던 일을 회상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 그 일부를 옮겨 본다.

   “내가 어렸을 때 늘 서포 선생의 곁에서 이 책을 보았는데, ...(중략)...공자와 맹자에 이르러 성현이 거기에 있게 되면 양손으로 들어 올리고는 우리들에게 절을 하도록 하였는데, 절을 마치고 보면 측천무후를 들고 있었다. 선생이 크게 웃으며 “사람이고서 어떻게 측천무후에게 절을 할 수 있느냐?”며 조롱하듯 꾸짖고는 부끄럽고 분하여 울고 난 연후에 그쳤다. 우리는 무후의 악을 알고서 다투어 그 상을 지우고 더럽혔다.” 

  위와 같이 이 책은 선을 따르고 불선을 경계하는 교육 교재로 활용되었는데, 불선한 인물에 대하여 경계하고 반성하는 것이 그 도상을 더럽히는 것으로 표출된 것이 눈길을 끈다. 악으로 규정된 사람의 그림에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혹시나 자신의 내면에 그런 악의 씨앗과 열매는 없는지를 살피라는 원래 의미와는 거리가 있는 모습으로 보여진다. 실제로 동산도서관에 있는 책은 물론, 강릉 선교장에 있는 책에도 아래와 같이 측천무후의 도상은 훼손되어 있다.


동산도서관본(좌)과 강릉 선교장본(우)훼손된 측천무후 부분


  이 책은 중종에 의해 편찬되어 여기에 수록된 인물은 그 만큼 권위가 부여되었다고 봐야 한다. 곧 중국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이면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대표 인물이 되어 역사 속에서 끊임없는 대화의 친숙한 대상으로 자리잡았던 것이다. 왕에 의하여 한번 정해 졌으니 빼거나 더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의문이 생긴다. 바로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도 여기에 수록할 만큼 존경 받을 위인이 있었을 것인데, 왜 중국 역사 속의 인물만 수록되었을까?’라는 의문이다. 고구려의 양만춘 장군은 당태종의 한쪽 눈을 멀게 하면서 당나라의 침입을 물리치고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연개소문에 복종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였고, 고려의 서희는 거란 대군의 침입에 서경 이북의 땅을 떼어주자던 조정의 중론을 물리치고 외교 담판으로 오히려 압록강 유역의 강동 6주를 무혈로 획득하였다. 태조 이성계는 지옥과도 같았던 고려 말의 혼란을 극복하고 조선을 건국했으며, 세종대왕은 백성을 위하여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조선을 반석에 올려 놓았다. 우리 역사 속에 위인도 무수히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에는 중국 역사 속의 인물만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인물 도상을 구할 수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천자의 나라가 아니라 제후국인 조선의 인물이 여기에 수록되는 것은 격에 맞지 않다고 생각해서였을까? 그러고 보니 ‘동(東)’, ‘동국(東國)’, ‘해동(海東)’, ‘청구(靑丘)’란 말이 붙은 것들이 꽤나 있다. 이 말들은 우리나라를 주인공으로 할 때 앞에 붙는 말들로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본 당대 시각의 반영이라 생각된다. 아마도 우리나라 군신을 수록하고자 하였다면 별책으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으나 그 단계까지 나가지는 못하였다. 만약에 별책으로 만들어졌다면, 아마도 책 제목은 <동국역대군신도상>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역대 성군이나 명신들의 인물도가 그 당시 함께 제작되어 지금 전하고 있다면 아마도 세종대왕의 실제 모습도 우리가 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든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란 노래가 생각난다.

  2016년이 마무리되고 있다. ‘마무리하고 있다.’고 표현할 만큼 자기 주도적 한 해를 살지 못한 우리들이 많기에 마무리되고 있는 것 같다. 100명까지는 무리일 것이고, 우리 역사 속에서 먼저 살다 크고 작은 흔적을 남기고 가신 분들 가운데 보고 배워야 할 선인(善人)과 반성해야 할 불선인(不善人)을 한 명씩 꼽아보면 어떨까? 그리고 선정한 인물에게서 배워야 할 좋은 점과 나에게도 혹시 있지는 않은지 돌이켜 반성해야 할 좋지 않은 점은 무엇인지, 한 해가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에 잠시 멈추어 서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편집위원 최경훈, 학술정보서비스팀 고문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