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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94호(4월)

[Library & People] 교양교육대학 이유택 교수

[Library & People] '세계 책의 날'이 있는 4월,  동산도서관 우수 이용 고객 이신 교양교육대학 이유택 교수와의 기분 좋은 인터뷰를 싣습니다.

 

1. 도서관 웹진 이용자를 위한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우리 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에서 서양철학을 전공하고, 독일로 건너가 아욱스부르크 대학에서 역시 서양철학, 특히 독일현대철학을 공부한 다음, 현재는 교양교육대학에서 주로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말하기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2.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념이나 가치관은 무엇입니까?

특별한 가치관을 정해놓고 거기에 저를 끼워 맞추면서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좌우명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論語, 爲政篇>에 나오는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라는 공자님 말씀입니다

저는 싫건 좋건 공부를 업으로 삼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이기에 공자님의 이 말씀은 제게 매우 소중한 의미로 다가 옵니다. 제가 나름의 방식으로 풀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책을 읽되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소용이 없고, 스스로 생각은 많이 하되 남이 쓴 책을 겸허한 마음으로 읽지 않으면 매우 위험하니라.” 또한 세간에 많이 알려진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말도 학생들에게 자주 강조하는 가운데 저 자신도 유념하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제가 이해하는 식으로 풀자면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조심해서 말하고, 좋은 글을 쓰고, 제대로 판단하라는 뜻입니다. 물론 이 두 가지 좌우명 가운데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게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지는 못합니다만, 최소한 잊지는 않고 살아가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3. 교수님의 대학생활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어요?

제가 대학생이던 1980년대 초중반은 경제적 빈곤과 정치적 암울함이 지배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캠퍼스에 매캐한 최루탄 가스 냄새가 가실 날이 드물었지요. 하지만 사상적, 문화적으로는 이 시대보다 오히려 풍요로웠던 것 같습니다

요즘도 계속되고 있는 목요철학세미나에는 많은 청중이 모였습니다. 통로와 계단까지 빼곡하게 청중이 들어차서 지나다니기조차 쉽지 않을 때도 적지 않았습니다. 제가 대학 다니던 시절 목철당시에는 대명동 캠퍼스 중앙도서관 시청각실에서 열렸습니다 다양한 전공 영역의 학생들이 모여서 여러 가지 주제를 놓고 뜨겁게 토론하고 고민하던 열린 장이었습니다. 저 역시 한 명의 철학도로서 때로는 교수님들과, 때로는 동료들과 진지하고도 격렬하게 논쟁을 벌이곤 했습니다. 저는 학문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생각을 상당히 일찍부터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른바 진로와 관련한 갈등이나 고민은 별로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운명처럼 미리 정해진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구입했던 책들 속표지에 ‘Wille zur Macht’(힘에의 의지)를 적어놓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 열심히 공부해서 힘을 길러야 나중에 나와 비슷한 고민에 빠진 또 다른 나들을 만났을 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얼마나 그러면서 살고 있는지를 자문해 보면 부끄럽기만 합니다.

 

4. 매년 423일은 세계 책의 날입니다. 우리 학생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 추천 해 주시겠습니까?

얼마 전에 작고하신 신영복 선생님의 마지막 강의인 <담론>(돌베개, 2015)을 권하겠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시경>, <초사>, <주역>, <논어>, <맹자>, <노자>, <장자>, <묵자>, <한비자>와 같은 동양의 주옥같은 고전을 매우 재미있고 알기 쉽게 소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저자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담담하게 그려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지난 겨울방학 때 내리 두 번을 읽었는데 최근 몇 년 동안 이 책만큼 독서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 준 책은 없었습니다. 학생 여러분에게도 기꺼이 일독을 권합니다.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부쩍 마음의 키가 자라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 고전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인문학의 퇴조를 걱정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왜 고전을 읽고,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해 주는 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또한 인성교육과 예술교육, 학문간 융합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그것이 왜 강조되어야 하는지를 제대로 설명해 주는 분도 많지 않습니다. 이들 물음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간단하면서도 명쾌하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추상력과 나란히 상상력을 키워야 합니다. 작은 것, 사소한 문제 속에 담겨 있는 엄청난 의미를 읽어 내는 것이 상상력입니다. 작은 것은 큰 것이 다만 작게 나타났을 뿐입니다. 빙산의 몸체를 볼 수 있는 상상력을 키워야 합니다. 세상에 사소한 것은 없습니다. 다만 사소하게 나타났을 뿐입니다. (...중략...)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이 두 가지 능력, 즉 문사철의 추상력과 시서화의 상상력을 유연하게 구사하고 적절히 조화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입니다. (...중략...) 중요한 것은 추상력과 상상력 하나하나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이 둘을 적절히 배합하여 구사할 수 있는 유연함입니다. 그런 공부가 쉬운 일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그러한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고의 문제가 아니라 품성의 문제입니다. 생각하면 시적 관점과 시적 상상력이 그러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52~53)

 

5. 평소 도서관을 많이 이용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도서관을 이용 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나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 해주세요.

저도 우리 대학 도서관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도서관이야말로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 한 대학의 머리이자 심장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도서관은 대학 캠퍼스의 한 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것이겠지요. 제가 우리 대학에 들어와서 가장 좋았던 것들 중 하나는, 그 많은 책들을 직접 두 손으로 만져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 기억이 옳다면 우리 대학처럼 전면 개가식으로 도서관을 운영하는 대학은 당시만 해도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도서관과 관련하여 잊히지 않는 기억을 소개해 달라고 하시니 그동안 몇몇 친한 동료 교수님들께만 가끔 사석에서 털어 놓던 기억을 하나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제가 입대하기 전이니까 아마 1982년이 아닐까합니다. 대명동 중앙도서관 6층 외국도서 코너에서 했던 특이한 경험입니다. 당시 저는 대학에 갓 입학한 새내기이고 외국어를 잘 하지도 못했지만 단지 다른 층보다 인적이 드물고, 외국에서 온 예쁜책들을 맘껏 구경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6층을 자주 가곤했습니다

그날도 열심히 책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아래위로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 입은 어떤 남자분이 책을 몇 권 들고 오더니 책상 위에 쌓아놓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미동조차 하지 않고 꼿꼿한 자세 그대로 족히 몇 시간을 말이죠. 그 꼿꼿한 자세에서 흘러나오는 압도적인 기세(?)에 짓눌려 서가 뒤에 숨다시피 한 상태로 그 분을 계속 흘끔거렸던 기억이 삼십 여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까지 납니다. 저 분은 화장실도 안가시나... 다리를 저렇게 오래 꼬고 앉아 있는데 저리지도 않으신가... 아무튼 저는 여태 독서를 그토록 오랜 시간 집중해서 자세를 허물어뜨리지 않고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고, 그 경이로운 장면은 저의 뇌리 깊은 곳에 박혀 이후 저의 독서 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해 오고 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분이 누구인지는 지금도 알지 못하지만 아마 이미 오래 전에 퇴직한 우리 대학의 선배 교수님이시겠지요 -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하지 않을 수 없군요.

 

6. 우리 학생들이 후회 없는 대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당부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세요.

글쎄요. 제가 그런 당부를 할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만... 학생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한 가지 있긴 합니다. 그것은 바로 기계로부터의 거리두기입니다. 학생들이 앞으로 살아가게 될 세계는 오늘날보다 훨씬 더 기술문명이 발달할 것입니다. 이번에 알파고의 등장을 통해 우리 모두가 경험했듯이 미래 인류 세대는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기계의 도전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과학과 기술의 진보가 인류에게 유토피아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요즘 학생들이 스마트폰과 컴퓨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 같아서 저는 걱정입니다. 제가 평소 학생들에게 손글씨를 강조하고, 좋은 글의 필사를 강요하는 것도 학생들이 조금이나마 분산된 정신을 하나로 모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단지 그것에 지나친 의존을 하지 말고, 그것들로부터 거리를 두려고의식적으로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가급적이면 종이로 된 책을 읽고, 종이로 된 수첩에 메모하고, 번쩍거리는 모니터나 액정 화면으로부터 눈을 돌려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디지털 시대의 떠돌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아날로그적 가치의 소중함을 깨닫고, 일상 속에서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실천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