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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는 독후감] 공자, 그대의 그림자를 알다

[내가 쓰는 독후감] 동산도서관에서 개설한 2011학년도 2학기 “고전인문학강좌”를 수강한 학생들의 독후감 중 우수한 독후감을 선별하여 싣습니다.
[박춘화 bom@gw.kmu.ac.kr

 

공자, 그대의 그림자를 알다 

심리학과 정광민

  요즘 인문고전 읽기 열풍이 한창이다. 인문고전 읽기는 유행이나 열풍처럼 단기간에 이목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습관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문고전은 우리에게 과거를 돌이켜보고 미래를 내다보게 한다. 대부분의 베스트셀러는 대부분 길어야 3~4년 정도 영향력이 지속되는 도라지라고 한다면, 인문·고전은 수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서도 영향을 미치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가는 데 근원적 밑바탕이 되는 산삼과도 같은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이처럼 평생 읽는 책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인문고전 읽기를 항상 도전해오고 있지만 왠지 어렵고 혼자 읽기에는 힘들다고 생각해서 포기한 적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 학교에서 인문고전 강좌가 열려 어떻게 인문고전을 읽는지, 다른 사람들과 읽고 토론해보면서 인문고전 읽기에 쉽게 흥미를 붙일 거라고 생각했다.
  
  논어강좌는 세 번(3주)에 나누어 논어와 공자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솔직히 3주 동안 논어와 공자에 대해 알았다고는 할 수 없고 공자의 그림자정도 알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간 첫 시간에는 주로 시청각 자료를 이용해 공자에 대해 알아보았다. 아직 논어 책에 대해 학생들이 읽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공자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이야기 해보고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는지 생각을 나누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자는 학자이고, 공자의 말은 거의 옳은 말이고 따라야 한다는 모범적인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간혹 다른 의견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공자에 관련하여 중국에 직접 가서 촬영한 관련 비디오를 보았다. 솔직히 비디오는 너무 어려운 내용이고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아서 대충 흐름만을 파악했다. 그리고 다음 시간에는 서로 책을 읽고 와서 생각을 나누고 토론하기로 했다.

  첫 시간에 나는 글쓴이 데만세 크릴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 논어의 글쓴이 데만세 크릴은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어 책 등을 공부하며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몰두하며 중국 사람들도 하기 힘든 것을 공부했다는 것에 놀라웠다. 역시 좋아하는 사람을 따라갈 자는 없는 것 같았다. 이러한 사람들은 대학가는 목적부터 다를 것이다. 아니 교육, 공부의 목적부터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 책 10장 개혁가에서도 ‘공자는 정치권력의 행사도, 실제적인 개혁을 단행하는 것도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유일한 실제적인 방법으로서, 교육을 통해 그런 인물을 양성하는 방향을 택하였다. 공자는 ‘유’라는 집단에게 붓과 채을 무기와 방패로 주었으며, 인류애란 명분으로 인류애를 위해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 용감하게 나아가 앉아 있는 강자를 대체하라는 사명을 부여했다.’ 라는 말이 있다. 이들에게는 공부할 목적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왜 교육받고, 공부하는지 목적부터가 명확하지 않다. 그저 남들 하는 대로 하기 바쁜 것이다. 책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대할 것인가, 그것을 읽고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는 지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공부는 자신 스스로가 공부하고 알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교수님이, 책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가르쳐주길 원한다. 그러나 책과 교수님의 이야기는 그 분들의 생각일 뿐, 우리가 다시 생각해보고 동의하는 것은 받아들이고, 아닌 것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두 번째 시간에는 서로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부분이나 감명 깊었던 부분에 대해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와 비슷한 부분을 인상 깊게 읽었다는 사람도 있었고, 반대로 다른 사람이 감명 깊어했던 부분이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으며,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의문이 드는 부분도 있었다. 나는 책의 초반 2장 공자에 관한 資料에서 ‘공자처럼 일단 한 문화의 영웅이 되면, 그의 생애에 실제 있었던 사건에 근거를 두었다기보다는 말하는 사람의 포부와 신념을 토대로 꾸며진 수많은 이야기에 그 이름이 등장하게 마련이다.’ 라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나는 책에 나온 글이나 교수님, 전문가들이 한 말을 좋다고만 생각하고, 그대로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 글을 읽으면서 모든 글 그냥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비판적 읽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항상 우리 과 박권생 교수님께서도 ‘책 읽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떠올랐다. 맞다. 우리는 책을 그대로 다 받아들이고 있다. 모든 지식은 저울대 위에 올려봐야 한다. 책에 있는 것을 믿을 수 있으면 여기 있는 모든 책은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까? 라는 의문이 생기기 마련이다. 내 생각에 책에 질문을 던지며 읽어야 하는 것 같다. 내가 인정할 수 있는지, 모르는 것, 궁금한 것 묵혀두지 말고 묻고 찾아봐야한다. 공자도 길가다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이 있으면 세워 다시 불러보라 한다고 한다. 그러고는 ‘내가 다시 해볼게요.’ 라고 하며 따라 한다는 일화가 있다. 우리도 책을 읽을 때 읽으면서 한 번 느끼고, 정리하면서 한 번 더 깨닫고, 마지막으로 발표를 통해 그 지식과 느낌을 체화하는 과정이 되어야 비로소 자신의 몸에 벤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리고 논어처럼 오래된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묵은 것일수록 새롭게 읽어야 하는 것 같다. 오래된 글이, 그 당시를 이해하는 것 뿐 만 아니라 현재 우리에게,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며, 어떤 부분을 활용하고 도움을 받을지에 대해서 말이다.

  마지막 시간은 서로 각자 한 장씩 맡아 정리해 그것을 이야기 해주며 한 권을 훑어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뜻밖에도 우리는 맛있는 다과와 함께 책 전반에 대해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졌다. 먼저, 각 장을 맡은 사람이 장을 요약하고 설명하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하고 다른 학생들도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궁금한 것을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다. 모두들 자신이 맡은 부분을 잘 준비해왔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오히려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다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점이 너무 아쉬웠다. 솔직히 말해 논어강좌에 배우려는 마음가짐으로 왔다. 즉, 누군가 나에게 지식 넣어주기만을 바랐다. 이것이 잘못된 줄 알지만 22년간을 그렇게 살아와서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이번 강좌에서 스스로 알아가고 찾아가고 이에 대한 나의 입장을 찾아가며 책을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크게 깨달았다. 나는 앞으로 교육 일을 할 것인데, 이 때 책 위주로 설명하는 수업보다는 책은 읽어오고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수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대해 이야기 하려면 책을 읽는 것은 물론, 생각도 해보고 자신의 의견도 정리해봐야 한다. 그리고 그냥 책을 보는 것보다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기억에 오래남고 재밌고 거부감이 적기 때문이다. ‘30년 동안 교사로 일하면서 1명만 바꾸어도 성공한 일이다.’ 라는 말이 있다. 이처럼 교육은 우주를 바꾸는 일이며 가장 위대한 일이다. 현재 야간 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번 강좌가 학생으로서는 물론 교사로서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하는지도 생각해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논어와 공자가 어렵고 딱딱한 책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책에 한자가 너무 많아 읽다가 포기한 적이 많았다. 그 때마다 교수님께서 ‘모르는 것은 그 즉시 해결하라.’는 말을 되새기며 계속 책을 읽어 나갔다. 앞으로도 책을 읽다 한문, 영어, 모르는 것이 나와 막힐 때는 책을 덮기보다는 지는 내 앞에 지금 호랑이가 잎 벌리고 있고, 이것을 해결 하지 못하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글을 읽을 것이다. 글은 외상이 없기 때문이다. 책을 읽을 때도, 공부할 때도 죽을 각오로 할 생각이다. 공부는 하는 만큼 배로 돌아온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논어는 물론 다른 인문고전 책도 많이 읽어볼 것이다.


 

『장자』를 읽고

                                                                        중국어문학과 유지혜

  인문학 고전 강좌의 『장자』를 듣게 된 것은 항상 어렵게만 느껴지는 옛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미리 들어 봄으로써 친근감을 갖고자 함이었다. 또 한 가지는 개인적으로 동양의 철학은 무언가 읽을수록 무언가 아리송하고 스스로 미궁에 빠지는 듯한 느낌이 있었고 그것을 풀어 보고 싶었다. 그런데 세 번의 강좌를 통해 알게 된 장자는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알가는 재미를 더해주는 깊이 있는 생각의 소유자였다.
 
  장자의 철학사상은 游자로 연결되어 있는데,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자유의 세계가 광활함을 보여주는 글자이다. 장자의 책속에서 游가 주는 자유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大鵬이야기」를 통해서 이다. 깊은 바다에 鯤이라는 물고기가 어느 날 변하여 鵬이라는 새가 되는데 그 길이는 몇 천리나 되는 장대한 크기의 새이다. 이 새가 날 때, 엄청난 추진력으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그 바람을 타고 남쪽을 향해 여섯 달 동안을 날아간다는 내용이다. 짧은 이야기 구조이지만 그 속에는 지금의 내가 희망하는 바가 담겨 있다.

  鯤은 물고기 뱃속의 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무엇이 될지 모르는 무한한 가능성이 담겨진 하나의 알이 변화를 거쳐 하늘을 드리우고 날아가는 거대한 새가 된다. 자신이 지닌 하나의 세계를 깨고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가는 붕새를 보면서 내 안에도 알로 된 하나의 세계가 존재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이 알이라는 세계를 깨뜨리기 위해 거치게 되는 투쟁이나 아픔이 앞으로의 길에 놓여있는 것도 알 수 있다.

  장자의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헤르만 헤세의 철학과도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헤세의『데미안』에서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라는 내용이 있다. 자아를 둘러싼 세계를 깨고 그 과정에서 오는 고통을 넘어서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헤세도 장자를 읽고 ‘그 사상이 가장 명료하고 매력이 있다’라고 했는데, ‘장자의 초월적 자유가 헤세에게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고기가 새가 되면서 아무런 대가 없이 자유를 얻지는 않았을 것이다. 변화를 거치면서 물고기의 비늘이 벗겨지고, 그 자리에 날개가 돋기까지의 시간이 견디기 어렵고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유를 위해서 꼭 필요했을 것이다. 이야기에서는 鯤의 변화는 자세히 기록되지 않았지만 바다를 진동시키며 하늘로 올라 간 붕새는 지난날의 성장통을 딛고 자아를 초월한 성숙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붕새는 그 자신이 하나의 세상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자신의 날개로 바람을 일으키고 하늘을 드리우고 날아가는 끝이 없는 크기의 새가 자연과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무엇도 거칠 것이 없이 자유를 만끽하는 붕새는 우리에게 현실에만 안주하는 인간이 아닌 이상을 지닌 자유로운 새가 되라고 용기를 심어 준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듣고 『장자』에 등장하는 매미와 새끼 비둘기는 비웃었다. “우리는 한껏 날아 보아야 겨우 느릅나무나 다목 나무에 이를 뿐이고, 어떤 때는 거기에도 못 미쳐 땅에 내려앉고 마는데, 구만리를 날아 남쪽으로 가다니.” 라며 자신들의 한계를 직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도 매미와 비둘기 같을 때가 많은 것 같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 일의 결과를 계산해보고 가능여부를 논하기를 반복하다 지레 겁을 먹고 관둘 때가 많다. 하지만 꿈은 불가능해 보이는 이상을 열망하며 믿어 버리는 단순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이리저리 따지는 것은 자신의 시각으로 제한해 버리는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장자가 지닌 인생과 우주에 대한 통찰력이 시대를 뛰어넘어 신선하게 다가온다. 마치 구름을 탄 신선이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높은 하늘로 올라가도록 여행을 권하는 것 같았다. 학기 말 한창 시험기간이고 바쁠 때이지만 잠시 마음을 비우고 장자를 따라 자유롭게 생각의 자유를 누빌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다. 더불어 장자의 호탕함과 큰 기상을 따라 앞으로의 대학생활을 멋지게 해나가기를 기대해본다.



<사진출처: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