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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칼럼] '누구도 탓하지 않는 학교'를 위하여

[동산칼럼]에는 우리 대학 사회복지학과 장승옥 교수의 칼럼을 싣습니다. 
[양봉석 
ybs@gw.kmu.ac.kr]

  최근 학교폭력으로 인해 자살한 대구중학생이 남긴 파장을 계기로 살펴본 학교폭력은 새롭게 등장한 문제는 아니지만 중·고생 자살사건이 학교폭력과 왕따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될 정도로 문제의 양상이 심각하다. 학교폭력에 대한 보도 대부분은 가해 학생들에 대한 분노, 우리나라 교육현실에 대한 비판, 그리고 이런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자조의 목소리로 가득 차 있다. 학교폭력을 이대로 두고 볼 수 없다는 여론과 함께 다양한 대책이 나오고 있다. 긴급한 상황의 경찰지원, 학생에 대한 인성교육과 상담 강화, 심리치료기관의 확충 등도 강구되어야 하는 대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은 얼마나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요즘 인터넷에서는 중․고등학생들의 또 다른 교복으로 자리 잡은 ‘00페이스’라는 아웃도어 브랜드의 점퍼를 어떤 모델로 착용하느냐에 따라 왕(일진)-신하-평민-노예(왕따) 등으로 계급이 나눠진다는 소위 ‘00페이스 계급도’라는 패딩 관련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 어른들도 쉽게 구입하거나 입지 못하는 수십만원의 고가 브랜드의 점퍼를 입지 못하면,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게 되고, 소위 잘나가는 일진은 일진대로 고가의 점퍼나 옷, 신발 등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힘이 약한 친구들의 돈을 착취하는 악순환이 브랜드 패팅으로 상징화된다는 이야기이다. 한 아웃도어 브랜드의 패딩이 중고생의 교복이 된 것은 한국사회의 교육이 산으로 올라가서라는 우스개를 보면서도 웃을 수만은 없다. 학교사회복지에 관심을 가지고 가르치면서 그동안 방문했던 몇몇 학교의 학생들의 모습, 그리고 그 현장에서 헌신하는 교육복지사들의 모습이 떠오르고 이들에게 과연 나는 제대로 된 자문과 평가를 해왔는가 하는 반성도 하게 되었다.

 학교폭력 문제에 대해 비난의 대상을 찾아 처벌하려는 우리의 관점은 바꾸어야 한다.   만일우리가 ‘누구도 탓하지 않고,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무과실주의 학교(no-fault school) 환경을 조성하는데 비난의 대상을 찾는 것만큼 학생들은 자존감을 가지고 학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동안 청소년문제에 대응하는 우리의 관점은 누구의 탓인가를 찾으려는 노력이었다.  ‘교사가 학생에게 관심이 없고 어떻게 대처할 지 모른다’, ‘지나친 학습경쟁 때문이다’, ‘부모들이 자녀를 통제하지 못한다’ 또는 ‘몇몇 가해학생의 잘못된 인성 탓이다’ 등 누군가 비난할 대상을 찾으려 했다. 만일 누구도 비난할 대상을 찾지 못한다면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되어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올까 두려워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학교폭력의 징후가 발견되면 누구도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거나, 극단적인 방식의 처벌로 몰아가고 또는 제멋대로 행동하도록 방관하기 쉽다. 이제는 평소에 학생들에게 귀 기울여 주고 관심을 갖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방식으로 노력을 시작해야 할 때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지나친 경쟁으로 인해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다. 실수를 하게 되면 비난일색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자신만의 의견을 내기를 꺼린다. 대부분의 시간을 실수할까 초조해 하고, 틀릴까봐 걱정을 하면서 시한폭탄 같은 분노를 감추면서 지낸다. 그러나 학생들이 실수를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 학생들이 자유롭게 실수할 수 있고 누군가 잘못을 하더라도 비난하기 보다는 잘못을 고치도록 도와주는 지원군이 있다고 믿는 학교 환경이라면 학생들은 신체적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이런 학교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은 공격성을 자신에게 돌려 자살을 하거나 타인에게 향하여 극단적인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학교에서 끼리끼리 모이는 무리가 있고 서로 다른 소집단간에는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서로 다르다는 것은 누군가가 틀린 게 아니고, 오히려 갈등을 조정하는 과정이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갈등의 존재를 인정하고, 갈등상황에 대해 충분한 논의하여 다른 사람이나 집단을 수용하는 경험을 거치게 된다면 지금과 같은 폭력적인 방식은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서로 합의를 도출하려 노력한다면 학교에 갈등은 존재하지만 함께 지내기에 불편하지는 않은 장소가 된다. 이 과정에서 학교의 구성원들은 서로가 존중받아야 할 존재임을 인정하고, 서로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게 된다. 비록 갈등이 생겨 일이 잘못되었더라도 비난할 대상을 찾기보다는 구성원들이 함께 어떻게 고쳐갈 것인가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잘못하거나 실수해도 괜찮다는 마음이 있다면, 어린아이들처럼 새롭게 도전하고 독창적인 것을 만들어 내면서 자신만의 개성을 찾고 각자에 맞는 성장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학생들이 학교가는 것이 신나는 일이 될 수 있도록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무과실주의 학교환경을 만드는 일에 마음을 모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