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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는 독후감] '햄릿'이 보여주는 미묘한 인간성에 대한 짧은 고찰

[독후감] 동산도서관에서 개설한 2011학년도 2학기 "고전인문학강좌"를 수강한 학생들의 독후감 중 우수한 독후감을 선별하여 싣습니다.
[박춘화
bom@gw.kmu.ac.kr]

햄릿

‘햄릿’이 보여주는 미묘한 인간성에 대한 짧은 고찰

 

문헌정보학과 김효주


 ‘To be or not to be.' 누구나 이 문장을 한번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 유명한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라는 문제의 문장이다. 죽느냐 사느냐. 햄릿, 그는 무엇에 대해 이리도 진지한 고민을 했던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이 문장을 알고 있지만 정작 문장의 속뜻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단순히 보여주기식 독서를 하다 보니 그들에게 햄릿은 명대사를 외친 작품 속 인물일 뿐이다. 이 강좌를 듣기 전에는 나 또한 그저 햄릿을 기억하는 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나에게 햄릿이란, 그저 좀 비극적인 주인공일 뿐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기회가 되어 듣게 된 강좌는 나만큼이나 연민을 가지게 된 햄릿에게 좀 더 많은 정을 주게 했다.

 잠시 이야기를 하자면, 햄릿만큼은 아닐지언정 평범하지만은 않은 삶을 살았다. 폭력적인 아버지 때문에 어렸을 적 어머니가 집을 나갔고, 기울어진 가세에 초등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았다. 덕분에 꿈만 보고 자라던 삶은 염세적인 현실주의자의 삶으로 변해 있었다. 인생의 꽃이라는 스무 살에는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를 돌보아야 했고 그 덕에 수능시험도 치르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학교에 들어오게 되었지만 이미 시간은 2년이 흐른 후였다. 햄릿, 너는 어땠을까? 물론 왕자라는 위치가 가져준 부유함이 경제적 궁핍함에 허덕이던 나와는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목숨을 다투는 위험한 위치였다는 점도 함께. 다만 그의 감정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의 영원한 과제인 사랑이 그것이다. 그에게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었고, 하나뿐인 어머니는 숙부와 결혼해버렸다. 햄릿에게 사랑이란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다. 쓸모없는 짐일 뿐이다. 게다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던 오필리아는 어느 새 자신을 감시하는 매가 되어있었다. 그 속에서 얼마나 고독했을 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해져 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polis, 정치적 = 사회적으로 해석)동물이다.’ 라는 말을 했다. 인간은 서로 의지하며 기대기도, 혹은 버텨주기도 하면서 함께 지내는 동물이다. 햄릿에게는 누구도 없었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힘들 텐데 가장 가까이 있어야 할 어머니마저, 사랑하는 연인마저 자신의 곁에 없었다. 햄릿은 인간으로서 지낼 수 없었던 것이다. 인간일 수 없기에 그가 죽음과 삶을 고민했을지 모른다.

 할아버지를 돌보면서 시험을 치지 못하고 친척들에게 갖은 폭언을 듣고 있었을 때, 그 때가 인생에서 가장 괴로운 암흑기였다. 사람을 믿지 못했고,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그때 내가 속해있던 세계에 내 편은 아무도 없었다. 햄릿이 그랬듯이. 적들이 가득한 곳에서 혼자 버텨내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사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었고 진지하게 죽음에 대해 생각했었다. 다시 삶을 얻게 해 준 것은 의외의 것이었다. 직접 본 적도 없는 친구의 전화 한 통이 그 순간을 멈춰주었다. 이해하지 못해도 눈물을, 마음을 들어주던 그는 아직도 삶에서 손에 꼽는 소중한 이다. 그래서 문학작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안타까웠다. 햄릿이 그렇게 고민하고 고통 받는 순간에 누군가 관심을 가졌더라면 그런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게 되었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증거가 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혼자 가진고통을 타인의 존재로 인해 사라지게 할 수 있다는 점은 인간이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부분과 일맥상통한다. 햄릿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결말을 보면서 현대사회가 떠오른 것은 우연히 아니다. 바로 현대인들이 동일한 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좌 마지막 날, 햄릿의 삶에 대해 짧게나마 이야기를 나눈 것은 잊고 있던 다짐을 깨웠다. 지난 날 받은 도움을 다른 누군가에게 되돌려 주겠다던 다짐이다. 역설적이지도 모르지만 앞으로는 다시 기억해낸 다짐으로 ‘행복한 햄릿’을 만드는 삶을 살아야겠다.

 


『史記』 - 사마천

우리는 과거로부터 얼마나 멀어졌을까

한국어문학과한 영 태
                           


 나는 한국어문학을 전공하며 4년째 다니고 있다. 나름 학과 공부를 열심히 하며 인문서적을 많이 읽었다고 자부하고, 한국어문학과 고전문학회 회장직을 맡아서 학교생활을 알차게 보낸다고 생각한다. 학과 특성상 인문학을 공부해보면 한자를 모르고서는 깊이 있는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리 국문학은 대략 3세기경 한자를 받아들여 중세보편문화의 길을 걸어 일제강점기인 근현대까지 한문의 영향 속에 살아왔다. 즉 한글이 공인되어 모든 계층이 두루 사용한 역사는 100년 정도이다. 역사를 잘 모르거나 이공계를 전공한 사람들은 새삼스러울지 모르겠다. 이렇듯 인문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한자 문화권의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

 오늘날 고전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아나톨 프랑스(1844-1924)의 말을 빌리자면 ‘고전은 누구나 그 가치를 인정하는 책이다. 하지만 누구도 읽지 않는 책이다’라고 했다. 이 말에서 현재 고전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동양의 입장에서는 고전을 다루는 데 한자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 한자 공부가 안 이루어진 상태에서 해독 불가한 글을 어떻게 읽을 수 있단 말인가? 나 역시 이 점이 공부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전에 접근하는 데 어려움은 현대인들의 선입견이다. 고전은 매우 당연한 도덕적인 것,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 생활에 공감할 수 없는 것으로만 인식한다. 이러한 요소들이 고전을 소외시킨다.

 한 때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그 말이 사라지고 인문학 서적들이 서점에서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국민적 교양서로 자리매김했다. 고전을 다시 보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인문학을 하는 나에게도 자극을 주는 분위기이다. 여기에 자극을 받고 방학 기간에 대구 향교에서 주관한 『小學』을 배웠다. 겉만 인문학도지 인문학의 기초가 되는 고전을 접한 경력은 매우 좁고, 부끄럽기 짝이 없다. 방학기간 동안에 배운 『소학』을 시작으로 동양 고전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하지만 바쁜 학교생활을 핑계로 고전은 내 마음의 도서관 책장에 꽂혀 먼지가 쌓여갔다.

 나는 교육역량강화 사업의 하나인 전공능력강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이다. 한국어문학과 고전문학회 회원과 고전문학을 연구하는 중, 도서관에서 인문고전학 강의 공지사항을 접했다. 학회원 중 동양고전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있는데, 시간이 가능한 후배와 『연구하는과』논어하는을 신청했다. 이 외 강의 중, 『열하일기하는』도 듣고 싶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신청하지 못했다.

 인문고전학 강의는 도서관 7층에서 열린다. 계명대 학생 중에 도서관 7층을 올라가 본 학생이 얼마나 될까? 나는 도서관 7층에 올라가 본 적이다. 1학년 때 도서관 근로를 한 적 있는데, 그 때 고문서 정리 작업이 7층에서 행해져서 7층을 자주 올라갔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7층에 올라갈 기회가 없었다. 인문학고전 강의를 듣기 위해 7층을 올라가는데 그 때의 근로 기억이 나면서 나도 모르게 설레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강의실에는 15명 내외의 학생들이 먼저 와서 앉아 있었다. 출석체크를 하고, 『사기』 강좌 교수님의 직역으로 집필된 『사기정선』 책을 받았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새 책을 받자마자 이 강좌를 수강한 것에 대해 나 자신에게 칭찬 해주었다.
 
 강의는 교수님 본인 소개를 시작으로 기분 좋은 출발을 했다. 내가 도서관 7층을 오랜만에 올라온 것처럼 교수님 역시 이번 강의 계기로 오랜만에 영암관을 벗어났고,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얼굴을 보고, 중문과 학생이 아닌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을 만나는 거라고 하셨다. 그래서 새롭고, 즐거운 시간을 맞이해 영광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교수님의 기운찬 모습을 보이셨고, 앉아 있는 학생들도 그 기운을 받아 강의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날은 교수님의 소개와 더불어 오늘날 『사기』의 자타 공인 일인자인 교수님의 스승님, 한자오치라는 중국학자의 소개, 그리고 『사기』 저자인 사마천 인물에 대한 매우 자세한 소개, 마지막으로 최초의 역사서인 『사기』의 개관으로 끝났다. 2시간이라는 시간은 Top 배우가 주연한 영화 한편 보는 시간처럼 흘렀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한비야의 아성을 무너뜨릴 교수님의 중국여행담이 한몫했다. 강의 중간 교수님의 목소리가 쉴 정도니 더 이상 말해 무어하랴.

  두 번째 날의 『사기』 강의는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졌다. 더불어 사료의 내용 중 중요하게 다뤄볼 문제는 교수님의 지도로 진행되었다. 같은 내용이지만 학생마다 입장이 달랐다. 『사기』를 읽고 느끼는 데에 각자의 전공 분야에 맞게 해석하고 이해한 것이다. 각자의 의견을 얘기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학생들의 다채로운 생각을 공유할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타인의 입으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이를 통해 배울 점이 많기 때문이다. 나 자신에게 엄청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다.

 세 번째 날은 그간 함께 해온 교수님과 학생과의 회식자리를 가졌다. 그 곳에서 학생들은 첫 번째 날과 마찬가지로 새 책을 선물 받았다. 이 책은 교수님의 스승님이신 한자오치가 저술한 『사기교양강의』라는 책이다. 『사기』에 대해서 자타공인 일인자가 쓴 책이니 매우 신뢰할 수 있고 뛰어난 책이라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하셨다. 음식점은 중국과 교수님이라 그런지 중국음식점이었다. 맛있는 코스 요리를 먹으며 교수님과 주제의 범위를 넓혀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교수님과 가까운 자리에 앉은 나에게는 매우 좋은 기회였다. 『사기』보다 더 중요한 교수님의 인생철학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맛있는 식사와 함께하는 강의는 더욱 더 즐거웠다.

  『사기』는 기원전 1세기경에 태사공 사마천이 편찬한 최초의 역사서이다. 중국의 오랜 역사와 그 주변 민족의 역사까지 두루 기록한 고전이란 점에서 우리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사마천에 의해서 최초로 기전체라는 역사 서술 방식이 창안되었다. 이는 우리 역사서인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사기』의 영향을 받은 것을 생각해볼 때 매우 의미 있는 업적인 것이다. 김부식의 서문과 『삼국사기』의 구성을 보면 『사기』의 영향이 지대한 것을 알 수 있다. 『사기』는 총 130권으로 <本紀>, <表>, <書>, <世家>, <列傳> 다섯 부분으로 나뉜다. 『사기』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그 목적은 사마천이 밝힌 바,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구명하고 고금의 변화를 관통하는 원리를 밝혀 스스로 독자적인 이론과 체계를 이루려는 것”이다. 구성을 보면 알 수 있듯, <열전>에 많은 비중을 두었는데, 이를 보아 『사기』 최대의 목적은 사마천 스스로 독자적인 이론과 체계를 이루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아버지의 가업을 잇기 위한 사마천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첫날 교수님은 사마천의 인물에 대해서 매우 상세히 설명해주셨다. 사마천은 20세 이전에 경전에 통달했고, 그 후 천하 각지를 遊歷하는 기행에 나섰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고 양분이 되어 『사기』 저술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사기』의 저술은 기원전 104년, 사마천의 나이 42세 때 시작되었다. 그러던 중 ‘이릉 사건’이라는 큰 위기를 맞이한다. 『사기』가 완성되기 전이 던 그는 죽음에 직면한다. 무제에게 상소를 올린 것이 미움을 사 사형을 선고 받은 것이다. 사마천은 미움을 살 것을 알면서도 정의에 굳은 목소리를 당당히 내 비친 것이다. 사형을 선고 받은 사마천은 자신의 신념이 담긴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서 궁형을 감수한다. 궁형의 치욕은 오로지 『사기』 완성을 향한 일념으로 견딜 수 있었다. 교수님은 이러한 사마천의 꿋꿋한 기상을 높이 샀다.

  사마천은 공자를 <세가>에 엮어 왕과 같은 범주에 넣어 그를 극찬하였다. 이처럼 사마천은 공자 외에 몇몇 인물을 기리었다. 그런데 이러한 인물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에게는 자신의 기구한 운명에 좌절하지 않고 신념을 꿋꿋이 지켜가는 굳센 마음가짐이 있다. 이를 살펴보면 <공자세가>의 공자는 자신의 道가 세상에 통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시대가 그를 알아주지 못한다. 그렇다고 공자는 궁핍한 생활에 치여 자신을 알아주지도 않은 곳에 빌붙는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백이열전>의 백이와 숙제의 지조, <오자서열전>의 오자서의 굳은 일념, <맹상군열전>의 맹상군의 명성, <굴원가생열전>의 굴원의 충심, <자객열전>의 자객 5명의 뜻, 모두 배울 점이 많다.
 
  교수님 자신도 위의 인물들의 정신을 본받아 세상을 살아간다고 하셨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높은 지위의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한 행동들을 지양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런 떳떳한 삶을 지향하셨다. 이렇듯 고전에는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많은 가르침을 준다.
 
 『사기』는 분명 역사서이다. 그래서 문학을 전공하는 내가 얼마나 잘 읽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사기』는 딱딱한 역사서가 아니었다. 전기문학을 읽는 느낌을 주었다. 『사기』는 문학작품으로서도 전혀 손색이 없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이야기이고, 문학, 철학을 담고 있는 교양서이다. 인생의 의미에서부터 처세까지 등등의 삶에 있어서 깊이 있는 사색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특히, <공자세가>에서 ‘정치란 무엇입니까?’ 하고 묻는 대목이 나온다. 그에 대한 여러 답이 있지만 하나를 인용하면 ‘정치란 먼 데 있는 사람을 찾아오게 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 있습니다.’라고 공자는 답한다. 오늘날 세계는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 유럽의 위기가 세계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이 고통은 각국의 서민들이 고스란히 안는다. 지금 한국은 ‘분노의 시대’라고 할 정도로 국민들은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한 나라의 정치는 경제만 잘 해결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자본주의 논리에 빠져서 인문학이 가지고 있는 삶의 본질을 잊어가고 있다. 돈만 쫒는, 가치전도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어느 시대건 고통을 수반한 삶을 사는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사는 데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는 시대가 오늘날 현대 사회가 아닐까하고 생각해 본다. 과거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발달된 과학문명을 이루었고, 앞으로 더욱 발전할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살고 있진 않은가? 얼마 전 이슈가 된 국민 MC의 은퇴식 연설이 떠오른다. 그는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 잠정 은퇴를 선언하였다. 그리고 교수님께서 매 수업마다 강조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人文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있는 여기서 깊이 있는 사색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인문이라고……. 인문고전의 가치를 재발견한 뜻 깊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