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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99호(9월)

[고문헌 산책 7] 경서통(經書筒)과 고강시권(考講試券)

[고문헌 산책] 경서통(經書筒)과 고강시권(考講試券)

 

조선시대 선비들은 그 많은 분량의 유교 경전을 어떤 방법으로 외웠을까?
경서통으로 그 방법을 알아보고, 경전 암송시험의 채점 답안지를 살펴 본다.

 

조선시대 과거시험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라고들 한다. 성리학이 사회 전반을 운영하는 절대적 핵심원리였다는 의미다. 성리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요구하였고, 관리를 선발하는 과거 시험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래서 그 많은 분량의 유교 경전을 외워야 했다.

시험의 첫 관문은 바로 경전을 잘 알고 있는지 시험을 보는 고강(考講)이었다. 일종의 구술 시험인데, 이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 만큼 과거 공부를 하면 필수 중의 필수가 유교 경전 암기였던 것이다. 그래서 수백번씩 소리내어 읽고 또 읽기를 반복하면서 외우려고 했다. 그리고 암기를 위하여 사용한 도구가 바로 이번에 소개하는 경서통이다.

 

경전암기 필수 도구, 경서통

경서통은 대나무를 쪼갠 작고 얇은 막대기 수 백개가 들어가 있는 원통을 말한다. 이 수 백개의 막대기에는 유교 경전에 나오는 구절의 글자 몇 자가 적혀 있다. 천 개에 가까운 막대기에서 하나를 뽑는다. 그리고 그 구절이 경전의 어디에 나오고 해당 글자의 다음 구절은 무엇이고 그 뜻은 무엇인지 말한다. 이 경서통은 그런 방식으로 자신이 공부한 것에 대한 테스트 용도로 사용되었다.

경서통 3점
김남석 박사(학교법인 계명대학교 이사) 기증

 

예를 들어 막대기를 뽑았다. 여기에 ‘子曰歲寒然後知’라고 적혀있다. 그러면 “이 ‘자왈세한연후지’는 <논어> 자한편에 나오는 구절이며, 다음 글자는 ‘송백지후조’이다. 뜻은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날이 추워지고 나서야 푸르른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안다’라는 뜻이다.”라고 말 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덧붙여 “이 말은 태평성세에는 소인이나 군자나 다를 바가 없지만 이해 관계나 변고를 만나면 소인과 군자의 차이를 알 수 있다는 말이며, 세상이 어지러울 때를 당해봐야 충신을 알 수 있는 것이니 배우는 사람은 이를 알고 덕을 갖추어야 한다.”라고 옛 사람의 풀이까지 더하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와 반대로 제대로 외지도 풀이도 하지 못하면 ‘그게 어디 있었더라’하면서 반성하면서 경전을 펼치고 다시 공부할 것이다.

 

고강 시험 채점 결과, 고강시권

경서통의 내용도 대략 외웠고, 시험 준비도 어느 정도 했다. 드디어 시험을 보러 간다. 어떤 시험 문제가 나올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시험관 앞으로 간다. 문제지가 시험관이 있는 장막 안으로 제출된다. 시험관의 얼굴을 볼 수 없다. 그리고 문제가 적혀서 나온다. 차례로 문제가 눈에 들어온다. <논어> 문제로 ‘樂則韶舞’, <맹자> 문제로 ‘齊人伐燕勝之’... 답해야 한다. 과목별로 차례대로 대답을 한다. 답변이 끝나자 다시 문제지는 장막 너머 시험관에게 전달된다. 어떤 점수를 받을까? 드디어 채점된 문제지가 장막을 너머 나왔다. 사서(四書) 모두 A+ 등급인 ‘순통(純通)’이다. 시험관의 확인 싸인도 있다.

응시자는 지난 준비 기간을 생각하며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경서통에서 문제를 무작위로 뽑으며 공부한 보람이 있구나.
  고강 시험에 합격했으니 이제 본 시험을 준비해야지.”

 

 채점 결과가 표기된 시험 답안지(시권)
- 유교 기본 경전인 사서(四書)시험을 보았고, 각 과목명 하단에 적힌 것이 문제이다.
- 문제 왼쪽에 적힌 작은 글씨가 채점 결과인데,
- 모두 ‘A+’에 해당한다는 순통(純通) 글자와 채점관의 싸인이 있다.

 

과거 시험 합격은 양반으로서의 신분을 유지하는 가장 정당하고 객관적인 방법이었다. 3년에 한번 정기 시험이 있었고, 문무과 시험은 61명(문과 33명, 무과 28명), 생원진사 시험은 200명(각 100명)이 최종 선발 인원이었으니,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 보다 더 어려운 관문이었다. 그러나 합격을 하면 큰 효도이고 가문의 영광이었다.

 

과거 시험 첫 관문이 바로 유교 경전 숙지 정도를 묻는 고강 시험이었다. 과거에 응시하고자 하는 유생들은 위에서 소개한 경서통을 보조 도구로 첫 관문인 고강 시험을 위하여 열심히 공부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채점 결과가 표기된 답안지(시권)를 받아들고 기쁨과 함께 다가올 본 시험 생각도 했을 것이다. 최종 합격 후 풍악을 울리며 말을 타고 서울 중심가를 행진하고, 부모와 조상이 계시는 고향으로 향하면서 친지들에게 인사드릴 상상도 하고, 관원이 되어 배운 이상을 실천하는 자신의 모습을 꿈꾸면서...


<편집위원 최경훈, 학술정보서비스팀 고문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