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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97호(7월)

[고문헌산책 5]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문헌 산책] 삼국사기(三國史記)

 

우리나라 고대사를 알려주는 최고(最古)의 관찬 역사서 '삼국사기(三國史記)',

1711년 10월, 숙종이 아들 연잉군 이금(李昑)에게 하사하다.


<삼국사기>란?

<삼국사기>, 많이 익숙하게 들어 본 책이다. 1145년에 김부식이 주관하여 편찬한 신라・고구려・백제라는 고대 삼국의 역사서 정도로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삼국사기>에 대해서는 그 당시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 여러 나라(가야, 부여, 발해 등)가 있었음에도 삼국으로 한정함으로써 고려 이전 우리나라 역사의 시공간을 축소시켰다거나, 신라 중심의 역사 기술이라는 등의 한계도 지적된다. 그러나 현재 전하는 가장 오래된 우리 역사서로 "이 책이 없었다면 우리나라 고대사 1천년을 잃어버렸을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책이다.

 

동산도서관에 있는 <삼국사기>는?

출판된 책이 모두 팔리고 나면 수요에 따라 다시 책을 찍는 것과 같이 <삼국사기>는 1145년에 편찬된 이후 몇 차례 출판이 이루어졌다. 지금까지 알려진 출판은 고려시대에 두 차례, 조선시대에 세 차례해서 모두 다섯 차례이다. 동산도서관에 있는 <삼국사기>는 그 가운데 다섯 번째로 간행된 것이다. 1711년에 국립출판사인 교서관에서 우리나라의 대표 발명품인 금속활자로 찍었으니 300여 년 이전의 국가 출판물이다.
그런데 동산도서관의 <삼국사기>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바로 책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조선 21대 국왕인 영조이며, 그 책을 준 사람이 바로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숙종이라는 점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우리나라 역사 공부하라고 준 책인 것이다.

책을 한 번 넘겨보자. 책을 펼치면 아래 사진이다. 오른쪽 면은 책 표지의 안 쪽인데, 1711년 당시 국왕의 비서실인 승정원의 우승지 허윤(許玧, 1645-1729)이 처리한 문서 1장이 있다. 문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원문)
강희오십년십월초오일 / 내사연잉군금삼국사기일건 / 명제사 은 / 우승지 신허[화압]
康熙五十年十月初五日 / 內賜延礽君昑三國史記一件 / 命除謝 恩 / 右承旨 臣許[花押]

(해석)
중국의 강희황제가 즉위한 후 50년이 되는 해(1711)의 10월 5일에 / 

연잉군 이금에게 삼국사기 1건을 내려주니 / 감사의 예는 올리지 마라 / 
우승지인 신하 허윤이 담당하여 처리하다 [서명] 

 

연잉군이 조심스레 찍은 자신의 도장

다시 위 사진의 왼쪽을 보자. 책이 시작되는 면이다. 모두 5개의 도장이 찍혀 있다. 책에 날인되는 도장을 장서인(藏書印)이라고 한다. 자신 소유의 책이라는 표시를 위해 찍는다. 이 도장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임금의 도장(옥새)이다. 나머지 도장들은 한참 후대에 날인된 소장자들의 도장이다. 

그런데, 한 장을 더 넘기면 도장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이 책을 받았던 연잉군의 도장이다. 연잉군(영조)은 왜 한 장 넘겨서 자신의 책이라는 도장을 찍었을까? 아마도 부친이며 국왕의 도장인 옥새와 같은 면에 찍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삼국사기>는 10권이 한 셋트이다. 이 10권 가운데 임금의 도장은 맨 앞 권에만 찍혀 있고, 두 번째 권부터는 옥새가 없다. 당연히 연잉군도 임금의 도장이 없으니 두 번째 권부터는 책의 맨 첫 장에 자신의 도장을 찍었다. 바로 연잉군이 아버지이며 임금인 숙종이 내린 책에 대한 태도가 말이 아닌 흔적으로 고스란히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은 부분은 그냥 넘어갈 수도 있지만, 존비귀천의 엄격한 구분과 질서를 중시하는 조선이라는 사회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연잉군은 무수리 출신의 후궁의 몸에서 태어났고, 당시 장희빈의 아들이 세자(경종)였다. 자신은 왕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는 신분이었다. 그런 연잉군이 아버지로부터 우리나라 고대사를 담은 <삼국사기>를 받은 것이다. 책을 하사 받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참으로 궁금하다.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하면서 감사와 경건한 마음으로 첫 권은 임금의 옥쇄가 있는 면을 피하여 다음 장에 자신의 도장을 찍고, 다음 책부터는 임금의 도장이 없으니 맨 첫 장에 자신의 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소중한 그 책을 열심히 읽었을 것이다. 실제로 <승정원일기>에는 영조 시기에 <삼국사기>의 기록이 증가한다.

 

동산도서관 <삼국사기>의 가치

<삼국사기>는 우리나라 고대사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책이다. 동산도서관의 <삼국사기>는 책이 편찬된 지 560여 년이 지난 1711년에 궁궐에서 간행된 책이며, 국왕인 숙종이 아들인 연잉군(후일 영조)에게 하사한 책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그리고 책을 하사 받은 연잉군의 소유라는 도장이 날인되어 있다는 점도 가치를 더한다.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은 임금의 도장인 어보가 찍힌 면을 피해 한 장을 넘겨서 자신의 도장을 찍었다는 것을 통하여 아버지(국왕)을 대하는 연잉군의 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삼국사기>를 통하여 한 장을 넘겨 임금의 도장과 같은 면에 도장 찍는 것을 피한 18세의 연잉군을 만나 보았다. 조선 국왕 가운데 가장 긴 재위기간(52년)을 자랑하고, 조선의 르네상스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영조. 그 이면에는 일상의 모습이 담긴 이 책에서 보여주는 겸손과 질서와 원칙을 중시하는 의식이 바탕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편집위원 최경훈, 학술정보서비스팀 고문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