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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88호

[독.계.비]공허한 십자가

  [讀.啓.肥] [독.계.비] 코너는 ‘독서로 계명을 살찌우자’라는 목표로 독서릴레이 형식으로 꾸며가는 코너입니다. 책을 읽고 그에 대한 소감과 함께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해 주고, 그 사람은 추천받은 책을 읽고 난 후 또 다른 책을 본인이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많은 분들의 참여를 부탁드리며, 참여해 주신 분들께는 소정의 상품을 드립니다. 


  이 달에는 손준희(철학윤리학과, 4)에게 「무기력이 문제다」를 추천받은 허용범(경제금융학, 2)군이「공허한 십자가」유원상(경제금융학과 1)군에게 추천합니다. 

처음 책을 받아 들었을 땐 뭔가 종교적인 내용을 담은 책인 줄 알았다. 책 표지도 그러했고 제목도 자극적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십자가는 구원의 상징성을 나타냈고 그것을 모티브로 소설은 시작된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상당히 무겁게 진행된다. 소설의 주된 키워드는 사형제도이다. 나카하라와 사요코 그리고 딸 마나미가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던 어느 날 집안에 강도가 들어 마니미를 살해한다. 강도는 몇 번의 재판 끝에 사형이 확정되고 사형되었지만 가정은 송두리째가 무너지고 말았다. 그들은 강도의 사형집행만이 마나미를 위한 길이라 생각했지만 마나미가 죽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고 마음의 상처만 남았다. 사형은 무력했다. 사요코는 미치마사와 헤어지고 난 뒤 ‘사형 폐지론이라는 이름의 폭력’이라는 원고를 준비하다 사쿠조라는 노인에게 죽임을 당했다. 사쿠조가 사요코를 죽인 이유는 후미야와 사오리의 어린 시절 아이를 임신해 죽인 것을 사요코가 알고 자수를 이야기했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사오리의 아버지가 사요코를 살해 버린 것이다.

 타인의 목숨을 빼앗는 행위는 최고의 악이라 여겨졌고 고대시대 때부터 타인의 생명을 빼앗자는 똑같이 사형에 처해 목숨을 빼앗았다. 하지만 인류 최대의 가치를 보존하고 지켜야 하는 국가가 직접 나서서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은 지금도 끊이지 않는다. 이 책은 직접적으로 사형은 반드시 집행되어야 하는지는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 단지 독자들에게 질문만 던질 뿐이다.

  마지막에 나카하라 변호사라는 사람의 말이 나온다. 이것이 사형의 무력함을 주장할 수 있는 적합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인용해 보고자 한다.
 “히루카와의 사형이 집행된 이 후 뭔가 달라진 게 있었나요? 히루카와는 결국 진정한 의미의 반성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사형 판결은 그를 바꾸지 못했지요. 사형은 무력(無力) 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사람을 죽이고도 뉘우치지 않는 사람과 죄를 짓고 평생 죄의식을 가지고 속죄하는 사람, 두 사람 중 누가 더 속죄에 가까운 것일까? 의외로 간단한 이 질문이 인간의 속성, 속죄의 의미, 사형제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단지 소설을 가지고 사형제도란 것에 대해 가치 판단을 할 수 없다. 또한 책에서 나온 이야기는 분명 특수한 상황이며 이것을 일반화하는 것은 큰 위험을 안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소설을 통해 사회적으로 민감한 부분인 사형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로써는 좋은 것 같다.

<출처>

  - 표지: Yes24

  - 사진: 허용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