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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71호

[독.계.비] 레디메이드 인생

[讀.啓.肥] [독.계.비] 코너는 ‘독서로 계명을 살찌우자’라는 목표로 독서릴레이 형식으로 꾸며가는 코너입니다. 책을 읽고 그에 대한 소감과 함께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해 주고, 그 사람은 추천받은 책을 읽고 난 후 또 다른 책을 본인이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많은 분들의 참여를 부탁드리며, 참여해 주신 분들께는 소정의 상품을 드립니다.

 

  이 달에는 이광진(언론영상학과, 4)군이 「레디메이드 인생」(<다시 읽고 싶은 한국 베스트 단편소설> 중)을 정재영(언론영상학과, 3)군에게 추천합니다.

 

  학창시절, 우리는 많은 문학작품을 읽었다. 낱말이 노래하는 아름다운 시와 현실을 꼬집는 날카로운 소설을 읽었다. 하지만 과연 그 중 기억하는 작품이 단 하나라도 있을까. 적어도 나는 없다. 우리는 시험을 잘 치기 위해 문학을 공부했고, 도서관은 책 읽는 장소가 아닌 공부하는 장소로 인식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취직’하기 위해서다. 수능 이후에 문학작품과 멀어져 전공 공부와 토익에 열중할 무렵, <레디메이드 인생>을 다시 읽게 되었다.

 

  1934년의 지식인의 실업을 배경으로 한 <레디메이드 인생>은 당시 시대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 지식인의 일화를 바탕으로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풍자한다. 그 당시 시대의 ‘지식인’이지만 실직자인 P는 생활고를 겪고 있다. 취직을 하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그 와중에 자신의 아이를 데려가라는 형의 독촉에 시달린다. 결국 P는 자신처럼 실패한 지식인이 되지 말라는 생각에 자신의 아이를 노동의 현장, 공장으로 보낸다. “레디메이드 인생이 비로소 겨우 임자를 만나 팔리었구나.”라는 마지막 한 마디는 무겁게 내려앉는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80년이 흐른 2014년과 무섭도록 닮아 있는 1934년 당시의 시대상이다. 우리 역시 ‘팔리기’위해 10년 동안 공부에 힘쓴다. 과거 채만식이 묘사한 1934년과 다를 바 없는 현실이다. 지금은 오히려 더욱 심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각종 자기계발서는 10대도 공부하고, 20대도 공부하고, 30대도, 죽을 때까지 공부하다 미치라는 말을 부르짖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취직’을 위해서다. 하지만 취업의 문턱은 높기만 하고, 우리가 바라보는 이상은 멀어져만 간다. 80년이 지나도록 우리는 여전히 취업걱정에 매달리고 있다. 과연, 우리는 왜 변하지 않은 것일까.

 

  ‘왜’라는 의문의 답은 멀지 않다. ‘공부해야 성공한다.’ 80년간 변하지 않고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사실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맞는 말도 아니다. 지식만을 주입받은 사람들은 ‘생각’하는 법을 잊었다. 시와 문학을 음미하고, 그 날카로운 은유에 감탄하는 이는 누구도 없다. 갈치 뼈를 솎아내듯 철저히 나누고 부숴서 암기할 뿐이다. 도덕과 윤리는 생활 속에서 지키는 것이 아닌, 대학수능 사회탐구영역에 지나지 않는다. 시험에 등장하지 않는 많은 미술, 음악은 이미 관심 밖이다. ‘우리의 공부’는 인간을 생각하게 만들지 않고, 그저 암기하게 만들 뿐이다. 그 결과 ‘레디메이드’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지금은 공부를 대신해 생각해야 할 때다. 도서관에 잠든 많은 인류의 보고를 열어 생각을 넓힐 때다. 우리의 미래는 지식이 열어줄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 생각의 비료는 문학이다. 시와 소설은 우리를 생각하게 만든다. 누군가에게 팔리기를 기대하는 ‘레디메이드’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문학을 바탕으로 한 생각. 그 생각으로 결정하는 삶을 우리 스스로 살아야 한다.

 

<출처: 책표지-교보문고, 인물-이광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