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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자 수기 공모 당선작

   <2007 동산도서관 페스티벌 이용자 수기공모 - 최우수작>

나의 레종데트르, 도서관

경영학과 강 준 욱   

 

산천은 온통 고까옷을 빼입고 저마다 아름다움을 경쟁한다. 회색빛 아스팔트를 벗어나면 짙은 흙내 가득한 대지가 있고 그 위로 적색의 단풍이 소복하게 쌓인다. 그중에 하나를 지그시 주워 ‘무진기행’에 끼운다. 수면제를 품고 있는 바람이 내게도 스친다. 가을이다. 어느새 오후 여섯 시가 되면 날이 저무는 계절이 되었다. 나는 오늘도 불그레한 건물을 향해 힘찬 걸음을 내디딘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회전문을 보며 사유한다. 회전문 앞이 무의 현실이라면 이상향의 도서관을 통해 유를 창조하여 현실로 복귀하는 것, BONUS INTRA MELIOR EXI 의 객체로서 존재하는 도서관, 그 도서관이 바로 나의 레종데트르다.

 

도서관에서 많은 지식 활동이 이루어진다. 어떤 이는 토익 공부를 하고 있고 다른 이는 공무원 공부를 한다. 나는 가방에서 ‘88만원의 세대’를 꺼내 읽는다. 제각기 방법은 다르지만 지적 욕구의 충족이라는 개념에서 살펴 볼 때 모두 같은 목적을 달성키 위한 구체적 수단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도서관은 그의 자식들을 차별하지 않는다. 입시 시험을 준비하는 자식이 고전 소설을 읽는 자식보다 열등할 리 만무하다. 어머니, 도서관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푼다. 자신을 통해서 지식의 갈망을 만족하고 부차적인 혜익을 얻는 자식들에게 시공간을 초월한 배려의 따스한 기운으로 그들을 감싼다. 자식이란 것이 대개가 그렇듯 극진한 어미의 마음을 모른 채 지내기가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미는 능소화 떨어지고 설국의 계절이 와도 여전히 마음 씀씀이를 줄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꽤 많은 책을 소장하고 있다. 이사하기 전에는 1,500권 정도의 책이 있었으나 지금은 300권 정도만 남아있다. 엄밀하게 따지면 나의 책이 아니라 ‘어머니’와 나의 책이다. 이사를 하면서 소장 권수가 극히 줄어든 것은 남 줘 버리거나, 분실했기 때문이리라. 책 좋아하는 어머니를 둔 덕택에 자연스레 독서에 대한 취미가 밝았던 나는 스물 안팎이 되었을 때 책 모으는 재미에도 푹 빠져 버렸다. 시월에 구입한 책이 스무권을 넘으니 그 수집욕이 염려될 만큼 크다. 책을 살 때 몇 가지 나름의 원칙이 있다. 양장본을 살 것, 표지에 현혹되지 말 것, 서문을 볼 것, 번역이 잘 된 책을 살 것 등.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번역과 관련된 문제이다. 예를 들어 ‘삼국지’의 경우 이문열, 황석영, 장정일, 리동혁 등 수많은 역자에 의해 번역되었다. 역자에 따라 그 내용도 각양각색이다. 어떤 책에서 기술되지 않은 부분이 다른 책에서는 상세히 씌인 경우도 잦다. 이럴 때 나는 주저하지 않고 도서관에 간다. 직접 보고 비교하는 것만큼 최상의 방법도 없다. 특히나 고전 문학의 경우, 대표적으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은 수많은 번역본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 대학 도서관에서 비교를 통해 옥석을 가릴 수 있다. 나는 책을 구매할 때 주로 온라인을 이용한다. 온라인이란 것이 배송기간이 하루, 이틀 걸릴 때도 있지만 사흘, 나흘을 넘어 기약없이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에도 도서관에 소장된 책을 미리 읽어봄으로써 기다림의 지루함을 해소한다. 간혹 서적 중에서 영상 자료가 함께 나온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영상 자료-영화-가 더불어 출시되었다. 이 경우 도서관을 통해 개인의 추가적인 구입 없이도 해당 자료를 열람할 수 있다. 어디 이뿐이랴, 개인이 전부를 소장하기에는 서적의 종류가 겉가량으로 보아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고도의 배경지식이 요구되는 책 한 권을 ‘먹기’위해 그의 요구가 되는 책들을 모두 구입하는 것은 현실적인 제약이 뒤따른다. 도서관은 사분사분하게 수저를 챙겨준다. ‘먹기’ 쉬우라고.

 

날 참 좋다는 내 말에 “날 좋은 날에 책은 읽어 무어하냐?” 는 친구의 가드락한 말에 일리가 있다. 허나 소풍이라도 가는 것이 어떠냐는 고견에는 동조를 하지 못한다. 나는 책 속에 끼워 둔 단풍의 색을 닮은 사각의 건물에 처박힌 것이 아니다. 도서관은 허브다. 나는 이 곳에서 수많은 저자의 세계를 탐험하고 대가로 지적 욕구의 배부름을 얻는다. 지난 4년 간의 대학 생활을 통해 체득한 것 중 가장 으뜸이 되는 것은 비판적 사고다. 이것이 가능한 까닭은 도서관이 있기 때문이다. 끝없는 지적 욕구의 충족과 비판적 사고의 근간으로서 존재하는 도서관은 나의 어미요, 나의 레종데트르다.

(704-701) 대구광역시 달서구 신당동 1000번지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Tel.053-580-5702(ARS)  Fax.053-580-5700  E-mail.ckh@kmu.ac.kr

<사진출처: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