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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칼럼] 강제병합의 8월을 맞아-외교가 나라를 구한다

[동산칼럼] 외교가 나라를 구한다는 내용으로 일본학과 이성환 교수의 칼럼을 싣습니다. [양봉석 ybs@gw.kmu.ac.kr]

 

1910년 8월 29일, 한국은 일본의 일부가 되었다. 이날을 한국에서는 국치의 날이라 한다. 그래서 우리는 8월이 되면 100여년 전 일본의 행위에 분노하고, 독립을 선양하는 행사가 넘쳐난다. 일본에 대한 비난과 자기애적 나르시시즘으로 위안을 삼는 듯하다. 8.15를 앞둔 이명박 대통령의 뜬금없는 독도방문과 일왕에 대한 사과 요구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일본은 왜 한국을 식민지화 했으며, 한국은 왜 식민지가 되었는가. 지금까지 이에 대한 자기성찰은 많지 않았다. 우리는 식민지 관련 용어에 ‘강제’라는 수식어를 입힌다. 강제병합, 일제강점기 등이다. 이 용어의 주어는 일본이기 때문에 식민지화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은 찾을 수 없다. 피해자의 도덕적 우월만을 강조하는 것이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 했다. 요체는 왜 우리(我)는 일본(非我)에게 강요당해야 했는가이다.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이 성찰은 계속되어야 한다. 성찰없는 분노와 비난은 불행한 역사에 대한 책임 회피이다.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에게 왜 총을 맞았는가를 반추해야 한다.

  근대 이후 일본은 한반도와 일본의 안전을 동일시하는 국방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한반도가 다른 세력의 영향하에 들어가면 자국의 안전이 위협받는다고 생각했다. 한반도에 세력 확대를 꾀하는 청나라와 러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한 이유이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청일, 러일전쟁을 ‘조국방위 전쟁’이라고 하는 시각도 있다. 한반도의 확보가 자국의 안전을 도모한다는 자국중심의 왜곡된 역사관이다. 나아가 일본은 제국주의 시대에서 독립국가가 되기 위해 식민지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일병합 1년 후 일본이 열강과의 불평등조약을 해소하고 국제사회에서 명실상부하게 독립국가로 인정받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면 자국의 안전을 위한 이웃 나라의 침략이란 논리는 정당화 될 수 있을까?

  대한제국은 어떻게 대응했는가. 한국은 임진왜란 이후 일본과 전쟁을 한 적이 없다. 한반도 쟁탈을 위한 청일, 러일전쟁에서도 한국은 아무 역할을 못했다. 그 후 한국은 전쟁없이 을사조약, 병합조약 등을 통해 식민지가 되었다. 통일적인 국가체제를 가진 주권국가가 전쟁없이 식민지가 된 경우는 드물다. 아프리카와 인도 등은 통일적 주권국가 이전의 상태에서 식민지로 전락했던 것이다.

  이처럼 일본은 외교적으로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조약은 강압적인 것이었으나, 한국의 빈약한 외교력이 초래한 불행이었다. 뒤집어 말하면 외교의 성공은 독립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립화 정책, 헤이그 밀사사건 등 독립을 위해 고종이 마지막까지 주권수호외교에 매달린 이유이다. 이승만 박사가 워싱턴에서 병사 한 명 없이 미국을 상대로 독립을 쟁취하려 한 것도 외교였다.

  대한제국은 왜 외교에 국가의 운명을 걸었는가. 부국강병에 실패했기 때문이나,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에게는 외교가 국가 운명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였기 때문이다. 일본을 위협하지 않고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할 방법은 없었는가. 미, 일, 중, 러의 세력이 정립(鼎立)하는 역학구도는 불가능했는가. 러시아와 제휴하여 일본의 침략을 저지할 수는 없었을까. 상해임시정부는 국제적으로 망명정부로 인정받을 수는 없었을까.   

  해방 후의 한반도 분단도 외교 역량의 부족이 초래한 측면이 있다. 강대국과의 외교가 원활하지 못할 때 우리는 “구한말 정세와 같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외교가 한국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의미이다. 근대 100년의 역사에서 우리가 얻은 교훈이다. 나는 이를 구한말 신드롬이라 했다. 구한말 신드롬을 극복할 지혜로운 외교 사상이 필요하다. 줄타기가 아니라 주변국을 설득하고 신뢰받는 외교가 그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을 계기로 우리는 독도문제에 대한 외교력을 시험받게 될 것이다. 국제사회가 독도를 한국의 영토라 인정할 수 있는 외교력이 필요하다.

<사진출처: 매일신문>